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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온유하고 겸손하니(3) – 천국에서 울려 퍼지는 당신을 향한 기도 소리

unsplash의 Deb Dowd

지금까지 Dane Ortlund 목사님의 책 “Gentle and Lowly”의 각 장을 리뷰해보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의 마음을 더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더 깊어지기 위해서는 화려한 조명이나 은은한 백그라운드 뮤직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이 누구신지 더 깊이 알아갈 때, 그 깊이에 비례해서 여러분의 예배 또한 깊어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과 믿음의 선진들의 글들에 집중한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더 깊은 예배와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가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믿지 않는 나의 가족을 위해서, 혹은 병상에 누워있는 나의 친구를 위해서, 혹은 해외 선교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선교사님을 위해서, 혹은 교회의 목사님, 장로님들을 위해서, 혹은 죄에 힘들어하거나 삶의 고난 가운데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애통하는 심령으로 기도해보셨습니까?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 그런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 그 사람을 향한 여러분의 마음은 차고 올라 하나님 앞에서 쏟아집니다. 나의 형제자매를 위한 그 간절한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그대로 부어집니다.

이처럼, 지금 이 순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구원받은 죄인인 당신을 향한 끊임없는 간절한 기도가 성부 하나님 앞에서 부어지고 있습니다. 그 기도 가운데 당신을 향한 그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당신을 향해 등을 돌린다고 해도 당신을 향한 이 간구는 절대 멈추지 않습니다. 이 기도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을 구원하셔서 성부 하나님과 당신 사이에 단 한 분의 중보자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천국의 보좌 우편에서 당신을 향한 기도 소리가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이번 리뷰의 주제는 바로 당신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는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 

종교개혁을 통해서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구원의 분명한 영광의 진리들은 놀라울 만큼의 회복을 이루었습니다.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저와 여러분은 이 구원의 진리에 매일매일 감격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지만 저자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여러분을 위해 행하신 그 놀라운 사역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만큼 그리스도께서 바로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을 위해 행하고 계시는 사역에 감사하십니까?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얼 하고 계십니까? 혹시 우리가 구원받기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이제 과거에 성취가 되었으니 지금 예수께서는 특별히 아무일도 하고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말씀합니까? 말씀은 지금 이 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간구하고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는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저자는 이 둘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깊이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투영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앞에 예와 같이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간절히 기도할 때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듯이 예수님의 간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중보자의 기도는 바로 간구하는 대상을 향한 중보자의 마음입니다. 저자는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골고다 언덕에서 한껏 정점으로 불타올랐다가 승천하신 지금은 어느정도 식은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계실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택하신 백성들을 향해 이끌려 있다. 그리고 자기 사람들을 향한 현재 그리스도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바로 그들을 대신해서 끊임없이 간구하시는 그분의 중보기도이다.”(79쪽)

중보자와 중보기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중보기도’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한 분,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딤전2:5)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마치 선수를 대표해서 구단과 협상을 담당하는 스포츠 에이전트와 같이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가운데에 계시며 양쪽에는 성부 하나님과 신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누군가 한번 쯤은 질문해봤을 물음을 던집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왜 우리를 위해 중보하셔야 합니까? 결국엔 우리가 완전히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았습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중보하시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성취하지 않으셨습니까? 다 이루신 것이 아닙니까?”(79쪽)

맞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어떤 부족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까?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간구를 통해 그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고 이제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는 그 대속 사역이 매 순간순간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과거에 예수께서는 지금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그 일을 이루셨고 현재에는 과거에 행하신 그 일을 간구하고 계시는 것이다.”(79쪽)

무슨 말입니까? 천국의 법정에서 예수께서 성취하신 십자가 대속 사역을 통한 우리의 구원을 계속해서 ‘새로고침’하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이루시고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 사건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리마인드’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성경이 그리스도의 중보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역사는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8:33-34절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저자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중보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영원한 파멸에서 건져주신 주님의 구원이 죄인인 우리에게 더욱더 개인적인 구원으로 다가올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다면, 자칫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 놀라운 은혜의 구원이 그저 먼 나라 얘기, 남의 얘기, 교회에서만 듣는 얘기로 치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고 허물과 죄로 죽었을 때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던(롬5:8)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기도를 통해 매 순간 계속해서 부어지고 있습니다. 단 한순간도 멈춰지지 않고 하늘 보좌 우편에서 여러분을 위해 그리스도의 마음이 담긴 기도가 기꺼이 부어지고 있습니다. 

온전히 구원하시다!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저자는 ‘천로역정’으로 우리에게 유명한 청교도 존 번연의 책 ‘그리스도, 온전한 구원자’을 소개합니다. 존 번연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묵상하면서 쓴 이 책에서 그가 집중한 구절 중에 하나는 바로 이 히브리서 7:25절 말씀입니다.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 말씀에서 ‘온전히’라는 헬라어 단어는 ‘광범위하게’ ‘철저하게’ ‘끝까지’ ‘완전히’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온전히 구원하시다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의미는 바로 예수님은 우리를 완전히, 온전하게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하게 마지막 끝까지 구원하실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어느 한 부분만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대부분을 구원하시지만 조금 남겨 두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영혼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는 온전한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의 온전한 구원자 되시는 분은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시며(히7:24), 죽음이 없으신 분입니다(히7:23).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완전하게 용서해 주셨다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 깊숙한 한 곳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나 이외는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의 그 어두운 곳은 너무 추악해서 도저히 회복이 불가하다고 생각하시진 않으십니까? 저자는 다시 한번 이 ‘온전히’ 구원하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과, 회복은 우리의 영혼 안에 가장 어두운 곳, 나의 가장 수치스러운 그곳, 가장 많이 패배하는 그곳까지 미친다. 더 나아가서 그렇게 얼룩진 모든 죄가 머무는 곳이 나의 구원자의 사랑이 가장 다다르기를 원하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그분은 우리를 온전히 아시며 그러므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신다. 우리는 구원자의 사랑과 보살핌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는 죄를 지을 수 없다”(83쪽).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히7:25절의 마지막은 우리에게 그 구원자는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놀라운 대속과 부활과 구원의 역사가 중보기도를 통해 성부 하나님 앞에서 되뇌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온전한 구원이라는 것이며 우리의 구원자는 온전하신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확실한 수 있습니다. 저자는 칼빈의 글을 인용합니다.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성부의 눈을 우리의 죄에서 돌려 자신의 온전한 공의함으로 고정시키신다. 그리고 중보를 통해서 아버지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화목하게 하시어 죄인을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나아올 수 있게 돕는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2.16.16). 

죄인이 단번에 구원을 받아 영화롭게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온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테지만 이 땅에서 우리는 여전히 육신에 갇혀 죄를 짓는 죄인들입니다. 여전히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하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주님께 순종하며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마지막까지 중보의 힘으로 이끌어주실 분이 바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온전한 구원자가 되십니다.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진리입니까? 우리의 심령이 가난하고 힘들 때, 죄로 인해 좌절할 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투영한 그분의 간구가 우리에게 이 같은 위로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을 기념하며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의 역사로 인해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 또한 잊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부활하시는 데에서 그치지 아니하시고 지금 현재 여러분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도 성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자신의 자녀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의 마음으로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은 단 한치의 주저 없이 독생자의 간구에 영원한 기쁨으로 응답하시어 죄인인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사귐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죄는 끝까지 갔다. 하지만 그분의 구원이 끝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그의 구원은 항상 우리의 죄를 압도하며 앞서간다. 왜냐하면 그분은 항상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이다”(85쪽). 

박성준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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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온유하고 겸손하니(2) –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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