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시간에 이어서 Dane Ortlund 목사님의 책 “Gentle and Lowly”의 리뷰를 이어갑니다. 저자는 성경 말씀과 청교도들의 깊은 묵상의 글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찬란한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고 감탄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Grace to Korea 독자분들께서도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더 깊이 묵상함으로 또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분을 더욱더 사랑하고,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동력을 얻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시간 마태복음 11:29절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묵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직접 그분의 마음 깊은 곳, 즉, 자신이 과연 어떠한 구원자인지 숨김없이 계시해 주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그리고 이 마음은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깨닫고 참회하며 그리스도께 울부짖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주님의 그 온유하고 겸손하신 마음은 우리의 사랑스러움이 다 말라버렸다 생각이 들 때에도 변함없으며,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으며, 영원한 것입니다. 자,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한복음 13장 1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다른 세 명의 복음서 저자보다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 마지막 유월절의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공생애를 마치신 예수님은 이제 “때가 이른 줄 아시고”(요13:1) 오직 제자들과 다락방에서 따로 시간을 보내시며 이제 곧 홀로 남겨질 그들에게 집중적으로 강론하시며 위로하시며 사랑을 나누셨습니다. 흔히 “다락방 강론(The Upper Room Discourse)”이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13–16장은 불과 몇 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곧 있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을 위한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요한복음 13장 1절은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이제 곧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은 우리의 사랑과 같지 않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사랑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우리가 배신당하기 전까지만 사랑한다. 하지만 그분은 가까운 친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로의 행보를 멈추지 않으셨다. 우리는 우리가 버려지기 전까지만 사랑한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자신을 버리시며 사랑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치까지만 사랑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끝까지 사랑하신다.”(198쪽)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다
예수님께서는 곧 자신의 마지막이 임박하고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공생애의 마지막 긴 터널에 다다르셨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 순간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돌아보며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그리고 이제 예수님의 앞에 놓인 그 길을 바라보며 예수께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저자인 Dane은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걸어가신 그 고난의 십자가와 그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께서 생애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시기 직전까지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의 공생애 3년은 꽃길이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가시밭길과 같은 3년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 곤고해지실 만큼 쉴 틈 없이 사역하시고 어떤 때에는 굶주리셨고 머리를 두실 곳도 마땅치 않으셨으며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오해와 비난을 받으셨고 자신이 자라온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셨으며 공개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고발당하고 업신여김과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더한다고 할지라도 이제 곧 예수님께서 마주하실 일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읽었지만 유한한 인간의 마음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통하여 일어난 십자가 위의 그 모든 어마어마한 일들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아담 이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죄인들이 범죄 했던 음란한 생각들, 증오의 마음들, 하나님을 모욕했던 불경한 마음들은 마치 밤하늘의 셀 수 없는 별과 같습니다. 사막의 모래알을 다 센다 할지라도 부족한 죄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거룩하시며 죄를 그저 없었던 일로 치부할 수 없으신 공의의 하나님의 진노가 그 모든 하나하나의 죄 위에 쌓여집니다. 마치 에베레스트산 위에 다시 에베레스트산이 쌓이듯 셀 수 없이 겹겹이 쌓여집니다. 그리고 그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농축된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진노가 십자가 위, 죄 없고 절대적으로 공의한 하나님의 독생자에게 단 한 번에 쏟아집니다. 과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까?
성부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사53:6). 그 모든 진노의 잔을 삼키시는 무죄한, 그리고 거룩하신 그리스도를 묵상해 보십시오. 저자는, 예수님께서 겪으신 그 처절한 육신의 고통은 그 수많은 죄를 향한 심판과 진노를 감내하신 예수님의 정신적인 고통에 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내하신 그 마음의 고통은 그 육신의 고통을 압도하고도 남는 것이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죄와는 섞이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형언할 수 없는 우리의 죄의 무게와 심판을 받으시는 그 순간에 어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시22:1; 마27:46) 외치지 아니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지구상에 누가 그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구원자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셨습니다(갈3:13)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셨습니다(사53:4) 그러므로 이제는 천국의 문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열렸습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다’의 의미입니다. 이 사랑은 영원히 실패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다 – 자기 사람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
지구상에 걸었던 모든 사람 중에 죄가 없었던 단 한 분께서 왜 이 모든 것을 인내하고 감내하셔야 했습니까? 요한복음 13장 1절은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유월절 예수께서 제자들과 시간을 보내시기 전 우리에게 자기 사람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인도해 줍니다. 그 끔찍한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마주한 우리의 구원자는 저와 여러분을 향한 사랑을 끝까지 정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한순간 신기루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클라이맥스가 지나면 서서히 식는 사랑도 아닙니다. 이 사랑은 끝까지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이 사랑은 모든 사람들, 즉, 믿는 자, 믿지 않는 자들을 전부 어우르는 사랑이 아니라고 언급합니다. 이 특별한 사랑은 본문 말씀처럼 오직 “자기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사랑입니다. 자기 사람들은 입술로만 “주여 주여” 고백하고 삶에 회개의 열매가 없는 가짜들이 아닙니다. 자기 사람들이 아닌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자비 없는 심판관이십니다. 지옥의 창조자이신 그분께 구원받지 못한 모든 죄인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살후1:9) 받게 될 것입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바로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그리스도께 회개함으로 나아오십시오.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의 따르는 거듭난 제자들, 진짜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특별한 사랑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들이 받을 죄의 대가를 이미 십자가 위에서 다 치르셨습니다. 저자는 ‘천로역정’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신학자 존 번연의 글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도와줍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랑받는 것 또한 흔한 일이다. 하지만 만왕의 왕,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영광의 왕의 되신다. 하지만 그분의 사랑을 받는 자들을 성경이 어떻게 묘사하는가? 그들은 죄인이고, 원수이며, 더러우며, 먼지이고, 재이며, 벌레이고, 안개이며, 불결하고, 불경하며, 어리석고, 허물이 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분 안에 있는 사랑은 그분의 존재에 필수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셔서 그리스도는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만약 단 한 순간도 사랑하시지 않으신다면 그분의 존재가 멈춰질지도 모른다.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사랑은 사랑받는 대상으로부터 어떤 조공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분의 사랑은 어떤 종류의 도움이나 의존 없이 그 자체로 그 사랑으로부터 행동하신다. 이렇듯 주님이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기로 마음에 정하셨다.” (Bunyan, works, 2:16-17)
맺음말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사람이신 여러분을 위해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저자는 이 챕터를 마치며 우리가 분명히 생각해 봐야 할 질문들을 던져줍니다. “이것이 여러분께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합니까?”(204쪽). Dane은 첫째로 예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이 진리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한다고 말합니다. 존 번연의 글처럼. 우리의 구원자께서 우리를 피로 사셨고 우리는 그의 소유가 됐습니다. 한번 소유가 된 여러분은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둘째로 저자는, 이 진리가 우리의 현재 또한 지켜준다고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끝까지 사랑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여러분을 지켜줄 것입니다. 17세기 ‘청교도의 황태자’라고 불리던 신학자 존 오웬의 말처럼, “이 지구상에는 가난하고, 약하고, 비천한 신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온 세상보다 더 크고 귀하게 상 주시기 때문이다.” (Owen, Communion with God, 218). 또한 이 사랑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실패하지 않는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다시 한번 존 번연의 글로 저자는 챕터를 마칩니다. “그분을 당신을 끝까지 사랑하실 것이다. 당신의 삶 끝까지, 당신의 죄 끝까지, 당신의 마주하는 유혹 끝까지, 그리고 당신의 두려움 끝까지” 이 진리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심령 가운데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마침표에 더해서 제가 소망하는 것은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저와 여러분이 닮기를 원합니다. 이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실패하지 않는 사랑, 세상이 기브 앤 테이크라고 외칠 때 오직 주기만 하는 사랑.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의 형제자매들에게 실천하고 또한 세상에 있는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진리를 선포함으로 실천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기도신문]
박성준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