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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영혼이 돌아오는 일에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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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울진의 어촌마을에서 교회의 연합을 꿈꾼다 6월 10일 영해면 예주문화예술회관에서 뮤지컬‘스틸’문화집회 추진 – 윤석진 집사(원구교회)

– 원래 영덕이 고향인가요? “수도권에서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경북 영덕은 개인적으로나 집안에서 어떤 연고가 없 는 지역입니다. 다만 주님이 인도해 오신 곳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복음 앞에 선 이 후 믿음으로 살 것을 결단 했는데 그 이후 어떻게 살아야할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순종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 그렇군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셨는지요. “전에는 직장을 다니며 수입도 안정적이며, 나름 괜찮은 삶을 살았죠. 그러다가 복음을 만났고 제 삶이 완전히 변하게 되었어요. 복음 앞에 설 때쯤 선교사로 헌신했는데 먹고 사는 문제들 때문에 주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어요. 모든 것을 내게 맡기고 너는 오 직 부르심에 집중하라는 마음 주셔서 이후 직장도 그만두고 선교훈련을 받는 일에 집중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 분들은 왜 꼭 회사까지 그만두고 그렇게 살려고 하느냐 말렸는 데… 주님이 하셨어요. 이후 주님의 공급하심 가운데 살게 되었고, 2009년 상반기에 6개월 간의 복음사관학교 공동체 훈련을 마친 뒤인 그해 9월 주님이 이곳 영덕으로 인도해 주 셨어요.”
– 과정들이 쉽지는 않았겠네요. 주님이 인도해 오신 과정을 나눠 주세요. “공동체 훈련을 마치고 어떻게 선교적 존재로 살 것인지를 놓고 기도중일때 어떤 분을 통해 영덕으로 내려와 살 것을 권유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주님이 부르시는 곳은 어디든 OK 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주님이 확신을 주지 않으시니깐 움직일 수 없더라구요. 부르신 곳이 맞는지 확증을 기다리던 중 아버지께서 말씀을 통해 먼저 확증을 받으셨어요. 이사 야를 계속 묵상하고 계시는데 계속 ‘구원’에 관한 말씀을 주시는 거에요. ‘그래.. 구원해주 시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말씀을 나중에 거꾸로 읽어 보니 ‘원구’ 인거에요. 그때 저 희에게 허락된 곳이 바로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마을이었거든요. ‘아! 주님의 사인이구 나’ 확신하게 되어서 바로 이사 하게 되었죠.(웃음) 주님이 얼마나 위트 있으신 분인지 경 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그와 같은 결정에 앞서 어떻게 복음 앞에 서게 되셨는지 더 알고 싶네요. “저는 5살 때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어요. 그저 명목상 그리스도인이었죠. 선데 이 크리스챤으로 거의 습관적으로 교회에 왔다 갔다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을 보게 되었어요. 동생은 대중음악 작곡가로 제법 인정받고 있었죠. 그런데 제가 볼 때엔 방 탕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늘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염려되던 동생이 180도 변한 모습을 보게 됐어요. 새 사람이 된 것처럼 술 담배부터 하루아침에 끊으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았는데, 그때 동생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죠. 제 마음속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질문이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가?’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두렵 더군요. 그때까지 저는 교회도 잘 안 나가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중 동생의 소개로 복음학 교에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어느 날 저에게도 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결혼 후 6개월쯤 되 었던 시기였는데 어떻게 아내와 함께 복음학교에 지원하였고 총체적 복음을 듣게 되었습 니다. 교회를 수십 년 다녔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복음을 모르는 것이 불행자라는 확 신이 들었어요. 이후 신앙생활에 열정은 많아졌는데 삶은 별로 변한 게 없었어요. 습관화 된 죄 하나 이기지 못했거든요.”
– 총체적인 복음 앞에 선 이후 또 다른 절망의 시간을 보내셨군요. “복음학교 이후, 직장을 다니며 복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던 때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회 사에서 억울한 상황을 당하게 됐습니다. 같은 부서 상사의 탈법적인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분과 함께 저도 회사를 퇴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됐죠. 이일로 인해 사람에 대한 실망만큼이나 내 자신에 대한 절망이 컸습니다. 이게 아닌데… 복음에 합당 하지 않다는 죄책감에 몇 개월을 그렇게 보냈어요. 음란함, 자위행위 등이 슬그머니 다시 들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이래서는 안되겠다 기도하며 몸부림치는 중에 다시 복음 앞 에 서게 된 것이죠. 내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복음 앞에 서면서 내 가 바로 십자가에 죽어야 할 죄인인 것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십자가를 통과하고 나서야 선교라는 주제가 내 귀에 들렸어요. 이 복음이 분명 나를 위해 주신 것이 사실로 여겨지니까 헌신이니 대가 지불이니 다른 말이 필요 없게 되더군요. 앞으로의 삶은 주님 께 드려져야 한다고 확정되니깐 선교사로의 헌신에 바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이후 주 님이 책임져 주시는 삶을 살게 되었어요.”
– 지금 영덕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처음에는 복음과 기도의 가치를 두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으로 연합하자는 의미로 공 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부모님 가정과 저희 가정, 그리고 동일한 믿음의 길을 걷 기로 한 한 형제 가정, 그렇게 세 가정이 모여 생활 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함께 살면서 단순히 같이 사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관계하고 행하는 것에 서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더군요. ‘지체와의 관계에서 십자가로 대한다는 의 미는 이해나 용납 정도가 아니라 나에 대해 완전히 죽는 것이다. 죽기까지 사랑하지 못한 다면 십자가에 넘겼다는 말은 결코 하지 말라.’ 지금도 여전히 이 말이 제 마음 속에 깊이 남아 있어요. 십자가로 연합한다는 의미를 말이죠.  공동체의 삶은 같이 먹고, 호흡하고, 은혜를 나누는 게 전부에요. 특별히 어떤 사역을 하 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매일 예배하고 말씀기도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우리를 향한 부르 심이 우리 공동체 만이 아니라 실제 모든 교회를 향한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더욱 보게 되 었어요. 이 지역 안에도 우리와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람 들을 찾아 다니며 은혜를 나누었죠. 그러면서 말씀기도 모임. 화요중보모임 등 공식적인 기도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지역교회들을 찾아 다니며 느헤미야 52기도를 소개하고 순 회기도팀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저희 공동체의 이름이 필요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복음기도연합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 복음기도연합은 지역 교회를 섬기는 사역 공동체로 이해하면 될까요? “교회와 교회가 서로 연합할 수 있도록 고임돌로 사용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에요. 그 안에서 우리의 부르심이 주님 오실 그날을 앞당기는 것임을 깨닫게 되기를 기대하죠. 성 도들의 연합이 단순히 어떤 날 함께 모여 운동하는 정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해요. 주님의 몸된 교회의 본질을 함께 발견하자는 것이죠. 연합을 위한 연합이 아니라, 연합해야만 하는 공동체로 저희를 빚으시는 것 같아요. 최근 교회 행사에 참석 하면서 갑자기 율동을 준비해야 했던 적이 있어요. 함께 섬기면서 무엇보다 마음을 여니깐 서로 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누군가 우리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시거나 우리 스스로 눈에 아무 열매가 없어 보일 때는 잠깐 어려운 순간도 있긴 해요. 그런데 무 슨 취급을 받든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요. 뺨을 맞아도 감사할 일이죠.”
– 최근 지역교회 안에 구체적인 성과가 있나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성과라고 할 수는 없지만, 6월 10일 영해면 예주문화예술회관에서 경북 영덕북부지역 교회 목회자연합회 주최로 열리는 연합집회는 이런 움직임의 한 결과일 수 있어요. 이날 은 호세아서를 배경으로 한 ‘스틸’이라는 뮤지컬을 지역 성도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집 회가 될 거예요. 이는 무엇보다 지역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복음을 들려 줘야한다는 생각 에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재정과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 에요. 함께 사는 형제는 재정이 모자라면 자동차 팔고, 냉장고라도 팔겠다고 하더군요. 어떤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결코 아깝지 않다는 거에요. 한 영혼이 돌아오는 일인데 무엇 이 아깝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사실 없어요. 다만 주님이 알려주시는 만큼 순종하려구 요. 교회를 계속 찾아가 복음을 나누고 우주적 교회로서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을 위해 복 음과 기도로 깨어있도록 계속 무엇이든 섬기고 싶은 마음이에요. 주님만 기대합니다.”
영덕=엄윤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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