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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복음과 신경다양성

Unsplash의 Milad Fakurian on

2023년에 나는 처음으로 내가 신경다양성[자폐스펙트럼장애, 지적스펙트럼,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학습장애, 사회소통장애 등을 뇌신경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름으로, 즉 생물 다양성으로 인식하는 관점_역자 주] 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늦게 진단받은 고도로 가려진 AuDHDer[ADHD와 Autism(자폐증)을 모두 가진 사람_역자 주]로서, 나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때까지 진단받지 않은 ADHD와 자폐증을 같이 앓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처음에 발견한 건 우리 집 아이들의 신경다양성이었다. 그러다가 마치 빵가루를 따라가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따라가다 보니 결국에는 나도 어느 날 같은 진단을 받은 것이다. 나와 비슷한 경우가 호주에는 수도 없이 많다. 그 해는 막내 아이의 자폐증 진단으로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곱 식구인 우리 가족은 무슨 드래곤볼을 모으기라도 하듯, 2023년 말이 되자 일곱 명 중 무려 여섯 명이 무언가 뇌 관련 진단을 받았다. 말 그대로 거의 완전체를 갖춘 셈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신경다양성” 폭발은 단지 집에서 끝나지 않았고 소셜미디어 피드에도 스며들었다. 알고리즘이 신경다양성 관련 콘텐츠를 갑자기 쏟아내기 시작했다.

신경다양성 인플루언서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하여 모든 형태의 신경다양성을 옹호하고, 교육하고, 심지어 기뻐하기까지 하면서 인터넷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신경다양성은 일반적인 뇌 기능과 크게 다른 뇌 배선의 모든 변형을 포괄하는 포괄적인 용어이다. 독서장애, 실용장애, 계산장애, 틱장애, 강박장애, 감각처리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및 기타 등등, 수많은 뇌에 기반을 둔 차이가 다 신경다양성 범주에 속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ADHD와 자폐증은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주목을 받는다. #ADHD 해시태그 검색은 그 증세를 진단 받은 날 올린 수많은 글을 띄워줄 것이다. 종종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주 만나는 이야기는 마침내 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이 진단은 수천 명의 성인이 자신의 전체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마침내 의미 있는 방식으로 바라보게 하는 열쇠가 되었다. 한때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문제 많은 학생들에게 붙는 꼬리표로 여겨졌던 이 진단이 일종의 구원 이야기가 되었고,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정체성에 중요한 구성 요소로까지 자리 잡았다.

일종의 구원 이야기

우리는 지금 각종 라벨에 붙은 낙인을 벗어던지는 문화적 순간을 살고 있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신경다양성에 대한 연구와 인식이 계속 증가하면서 문화적 풍경까지 바뀌었다. 지금은 신경다양성을 지닌 개인에 대한 전례 없는 유행과 긍정성이 넘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사회로 하여금 나 자신과 이웃의 뇌 기반 차이를 포용하고, 기뻐하고, 또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역사하고 있다.

나 자신의 진단 여정과 더불어 비슷한 길을 걸어온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신경다양성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와 회심 간증 사이에는 매우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에게 진단은 단지 종이에 적힌 병명 그 이상이다. 그것은 삶이 왜 힘든지에 대한 설명이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열어주는 열쇠이다. 또한 공통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연합된 커뮤니티에 들어가라는 초대장이기도 하다. 복음을 통해서 느꼈던 감정적 반향을 나는 신경다양성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다시 체험했다.

진정한 복음은 창조, 타락, 구원, 회복이라는 성경의 서사 전반에 걸쳐서 드러난다. 이 위대한 구원 이야기와 신경다양성을 수용하는 이야기 사이의 유사점을 알아차리면 진단이 당사자에게 왜 그토록 중요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두 이야기 사이의 유사점(그리고 대조점)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복음을 감사하는 새로운 방법까지 제공한다. 구원 역사라는 맥락에서 신경다양성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 즉시 신경다양성에 대해 말하는 다양한 방식을 교차 검토함으로 이 중요한 주제를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회복을 바라봄

진단을 받고 몇 달 동안 나는 책과 치료사, 다른 신경발달장애인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다 나의 새로운 면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다. 물론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항상 똑같은 사람이었고, 그날 받은 진단은 단지 내가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킨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점이야말로 신경발달장애의 이상한 역설 중 하나이다. 어떤 면에서는 진단이 바꾼 건 아무것도 없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변화 중 하나는 이제 내가 신경발달장애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제대로 설명할 어휘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삶이 왜 힘든지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로드맵도 받았다. 물론, 그게 대단히 포괄적인 건 아니다. 자폐증과 ADHD 진단이 사용 설명서와 함께 오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내게 있어서 진단은 약물, 기술 습득, 전략, 지원, 치료, 코칭 그룹, 자기 옹호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나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뇌 속에 자리 잡은 독특한 강점과 도전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진단은 나를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했다. 단지 생존하는 게 아니라 번창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 이 경험은 회심과 비슷하다. 내가 가진 특정한 죄의 경향과 약점이 내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삶이 갑자기 쉬워지지도 않았다. 나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또 이후에도 죄에 시달리는 세상에서 사는 죄인이다. 하지만 복음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구원에 대한 확실한 소망과 삶의 모든 고난과 상처로부터 영원한 휴식을 주었다.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미래에 있을 최종 회복에 대한 약속을 받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회복 사역에도 동참한다. 예수님의 통치 아래에서 살면서 우리는 죄를 죽이는 법을 배운다. 내가 있는 장소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정복함으로 창조물을 올바르고 질서 있게 만든다. 하나님의 회복 사역을 수행하는 것이다.

신경다양성에 관한 대화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이런 “회복 감정”이다. 기독교 공동체와 신경다양성 공동체 모두 다 일종의 회복을 추구한다. 문제는 진정한 회복이 어떤 모습이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신경다양성은 이상적 형태에서 벗어난 무언가로 여겨졌다. 자폐증과 ADHD 뇌는 문제가 있고 최적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회복의 의미는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신경다양성이 없는 사람처럼 기능하도록 돕는 치료법과 완치법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문화는 결핍에 근거한 신경다양성에 대한 이해에서 벗어나 대신 “신경 긍정(neuro affirming)” 관점으로 이동 중이다. 이러한 이해는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결함이 있다는 기존 생각을 거부한다. 대신에 “결핍”이라는 개념을 “차이”로 대체한다. 강조점은 신경다양성이 인간 다양성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라는 것이다. 신경다양성을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수용해야 할 차이로 바라보는 것이다. 신경 긍정의 관점에서 회복은 이제 신경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의 사회 접근 또는 완전 참여를 막는 장벽의 제거로 바뀌었다. 이러한 장벽은 보통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 놀이터, 쇼핑센터, 엔터테인먼트 및 레저 단지, 정부, 심지어 교회에도 존재한다.

신경다양성과 관련하여 결함이 무엇이고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질병, 장애,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관점에서 회복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 성경이 몇 가지 지침을 제공하는 건 사실이지만, 완전한 답을 준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 교리는 지나치게 단순한 낙관론을 경계하도록 한다. 이건 마치 신경 긍정 문화가 단지 차이라는 라벨을 붙이는 것으로 지나치게 상황을 단순화하는 것을 경고하는 것과 비슷하다. 성경이 신경다양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언급하는 건 없지만, 회복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창세기 3:15에서 처음 약속된 하나님의 회복 사역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절정에 달했다. 하나님은 지금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을 자신을 향해 회복시키고 있다. 우리는 오늘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 회복된 창조 세계에서 회복된 존재로 영원히 살 날을 기대하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회복된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신경다양성 공간에서 일어나는 많은 소음이 평범한 신경을 가진 사람(neurotypical, “신경전형인“)을 인류의 “황금 표준”으로 보는 게 옳은가 여부에 관해서이다. “이상적인 인간”이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회복이 개인 변화에서 오는지, 아니면 사회 변화에서 오는지 알 길이 없다. 신경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이 (치료나 치유법을 통해서) 신경전형인의 사회 패턴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과연 회복일까? 아니면 신경전형인의 사회가 신경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사회 패턴을 수정하는 게 회복일까?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지만, 복음은 우리의 관심을 훨씬 더 크고 더 중요한 주제에 집중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초월한다.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황금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람의 신경 유형에 관계없이, 그들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본받음으로써 하나님의 회복에 참여할 수 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신경학 및 생물학 분야에서 인류의 이상이나 규범에 대한 모든 답을 알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더불어서 사람들 간의 차이점을 환영하고 포용하는 데 보다 더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진단과 성화

진단은 내게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고, 더 기능적이고, 더 자각적인 나 자신으로 가는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성화를 위한 도구였다. 항상 어렵기만 한 영성 훈련이 갑자기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뇌와 생물학을 더 잘 이해함으로써 나는 경건함을 추구하면서 뇌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뇌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도구와 전략을 활용하게 되었다. ADHD 때문에 각성제를 복용한 후 처음으로 성경을 읽었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교회 아이로 자랐고 성경에 대해 평소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상상도 한 적 없는 새로운 명확함으로 성경을 읽었다. 약물은 설교와 성경 공부에 더 집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건강한 감각 추구 및 회피 행동 수용과 신경계 조절은 성령의 열매 안에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거부에 대한 민감성,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완벽주의에 대한 내 뇌의 자연스러운 경향을 이해하면서 나는 예수님께 더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이 이미 무한한 수준에서 내게 필요한 모든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수록 나는 더 겸손해졌고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

신경다양성에 대한 우리 문화의 점진적 수용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여전히 어느 정도 냉소주의와 이해 부족이 있는 것 같다. 신경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는 오로지 예수님만이 옳게 정의하시기 때문이다(갈 3:28). 또한 생물학에 근거하여 죄를 수용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몸 안에 사는 영혼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하신 몸 안에서 존재한다. 뇌는 그 몸 안에 있는 기관이며,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가진다. 마찬가지로 뇌는 타락 이후로 모든 창조물에 스며든 것과 동일한 부패와 쇠퇴의 영향을 받는다. 고유한 나의 몸과 하나님이 주신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그 안에서 가장 잘 사는 법을 배우면서, 나는 성화라는 측면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신경다양성을 잘못 이해하는 데는 적어도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신경다양성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지나치게 수용함으로 복음 정체성을 버릴 위험이 있다. 하지만 복음을 이유로 타인의 신경다양성 경험을 무효화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부정적인 영적 의미를 내포한 과도한 교정이다. 신경다양성에 대한 건강한 관점은 복음을 무효화하지 않으면서 그 경험을 검증하는 것이다. 정상 신경 사회에서 사는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세상에 맞게 나 자신을 바꾸거나 나에게 맞게 세상을 바꾸는 것 중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 나는 모든 창조물의 주님을 신뢰한다. 그의 섭리로, 인간이 생물학과 심리학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효과적인 치료법, 지원 및 사회생활 시스템을 개발함에 따라, 우리는 정상 신경이든 신경발달장애가 있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잘 살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 하나님은 오늘도 만물을 회복하고 계신다. 그는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나를 회복시키고, 그의 성령으로 가득 찬 공동체가 은혜와 진리 안에서 함께 살고, 세상에서 빛을 내며 공동체 생활을 하도록 회복시키신다. 그리고 머지않아 모든 것이 바로잡힐 새로운 회복된 세상을 세우기 위해 그분은 다시 오실 것이다.

신경다양성에 관한 성경적 사고

지난 몇 년 동안 가족과 함께 한 여정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만들었다.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성경 색인에 ADHD나 ASD(자폐스펙트럼장애)는 없다. 그 주제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성경 구절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모든 삶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더 큰 이야기 속에서 진단, 지원, 수용의 경험까지 함께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우리는 신경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을 사랑하고, 환영하고, 포용해야 한다. 세상이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을 제공하는 게 복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는 교회마다 다르겠지만, 시작은 동일할 것이다. 예수님처럼 신경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경다양성을 지닌 그리스도인은 문화가 신경다양성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을 무조건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성경에 비추어 검증해야 한다. 진실이면 받아들이지만, 아니면 버려야 한다. 신경다양성에 대한 지식의 본체는 하나님이 주시는 일반 은혜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만 참일 수 있다. 신경다양성에 대한 성경적 사고를 돕는 자료는 거의 없다. 앞으로 이 주제를 기독교의 관점에서 다루는 더 많은 콘텐츠가 나오기를 소망한다.

신경다양성이 있는 남편과 결혼하여 신경다양성이 있는 자녀를 키우는 신경다양성이 있는 여성으로서 복음이 내 경험을 어떻게 형성하고 알려주는지 배우면서 나는 예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영광스러운 복음이 주는 부요함을 더욱 분명하게 체험했다. 진단 덕분에 나는 더 명확하게 내 삶을 바라보며 항해하게 되었다. 나는 그 점에 감사한다. 하지만 더 감사하는 건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소망이다. 오늘도 정상 신경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나는 피할 수 없는 기쁨과 어려움을 만난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회복된 세상에서 회복된 사람으로 살 그날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The Gospel and Neurodiversity

로라 헐리(Laura Hurley) | 오스트레일리아 Saltbush Evangelical Church의 담임목사인 남편 Brendan과 함께 주님을 섬기고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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