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獻身)하는 사람, 김순희 전도사
진리가 결론되어 사는 삶을 천국 가는 그날까지 누리길 소망하며
실제 나이보다 족히 십년 이상은 더 젊어 보이는 삶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운동이나 식습관 또는 시간관리 등을 통한 철저한 자기관리도 아니고, 안팎으로 드러나는 개성적인 스타일도 아니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고 고운 모습의 김순희 전도사(맑은교회)는 단 한 가지만을 말한다.“날마다 죽는 것이요. 죽어야 제대로 사니까요.” 너무 익숙한, 그리하여 더욱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전해지는 그 의미에 대한 묵상과 나눔으로 세 시간이 훌쩍 넘는 인터뷰는 처음부터의 시작이 곧, 결론이 되었다.
-‘죽어야 산다.’그 말의 실체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상황과 조건에 대하여 그것들이 실체가 아님을, 말씀 앞에서 날마다 죽는 훈련으로서만 결론 나게 하는 훈련들을 주께서 많이 시키셨습니다. 내가 죽어야, 비로소 주께서 일하시는 경험들을 알게 하신 거지요. 마태복음 8장은 풍랑 속에 있는 배 위에서 제자들과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그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풍랑이 일자마자 즉시 주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절망하고 포기하여 “주여, 죽게 되었나이다.” 라고 호소할 때 비로소 주께서 일하셨지요. 내 현실 자체가 아니라 오로지 말씀 앞에서만 해결 받으려는 것이 곧 내가 죽는 훈련임을 깨달았습니다. 여러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움직이지 않고 말씀기도하면서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즉각 해결되는 경우도 있고 오래오래 기다려야 할 때도 많습니다.”
– 오로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만 움직이셨던 구체적인 사례를 듣고 싶습니다.
“대표적으로 ‘집’ 에 관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입니다. 집을 얻으러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아무런 말씀도 주지 않으시고 침묵하시고 계셨거든요. 결국 이사 갈 집이 없어 기도원에서 한 달 동안 온 가족이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말씀기도를 했지요. 그런데도 주께서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기도원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되자 5평짜리 오피스텔에서 온 가족이 8개월 동안 지냈습니다. 동네에 24시간 문을 열어둔 교회가 있어서 그곳에서 종일 기도했습니다. 이사야를 묵상하는 중 주께서 우리를 ‘밀실’에 피해 있게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지요. 이해되지 않는 속에서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왜 네가 받은 영적인 복은 가볍게 여기느냐!”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내 영혼이 복음을 만나게 되어 가나안 땅에 와 있는데도, 내 육체는 여전히 눈에 보이는 가나안 땅을 구했던 것을요. 예쁘고 좋은 집에 살고 싶은 묵은 욕심을 보았고, 그 욕심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집도 없는 가장 낮은 자로 두신 이 상황이 ‘밀실’ 이었음을 깨달았지요. 사단의 공격을 최소한으로 피할 수 있는, 교만할 수 없는 자리로요.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순복하자, 비로소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주님이 해결해 주실 때까지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야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영적 성장이 큰 수확이셨을 듯 합니다.
“암담한 상황에서 더욱 말씀과 기도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지요. 은혜를 좇으며 달렸지만 막상 집 문제에 봉착하여 쉽게 해결을 보지 못하니 사단의 참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영적전쟁의 치열한 전쟁터는 마음속이더군요. 그 모든 문제들로부터 이미 ‘죽은’ 자였으면 수월했을 텐데 죽음이 실제가 되지 못했으니 어려웠던 거지요. 죽는 것이 실제가 되었으면 누리면서 달렸을 겁니다. 진리가 결론되어 살기 위해 세상에 손해 보는 것이 많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오늘은 손해 보는 것 같았지만 내일이 되어보니 절대 손해가 아닌 삶이었습니다. 오피스텔에 8개월 머무르면서 이모저모의 타격이 고스란히 메워지는 것을 보게 하셨거든요. 믿고, 진리가 결론되게 하는 것. 그것이 곧 말씀대로 사는 일상임을 확증하는 시간이었지요.”
– 그렇게 순전히 말씀으로만 살게 된 계기가 있으셨겠지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큰 교회에서 전도사로 10년을 사역했으면서도 제 자신이 정말 복음을 살아내는 삶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저 성경책 꺼내 읽고 심방가면 당연히 기도하고 힘들어지면 하나님을 좀 더 부르며 살았기 때문에 제 자신은 별 문제 없다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총체적인 복음 앞에 서서 비로소 주님과 연합되자 그 전과 그 후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지요. 기도24.365를 통해 꾸준히 열방을 놓고 기도하던 중 점차 비몽사몽해지는 시간들을 반복하면서 내 경험과 힘을 의지하던 기도가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보았습니다. 회개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지요. 그러던 중 열왕기하 10장 15절 말씀을 통해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때서야 손을 내밀어 주의 손을 비로소 잡았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경험을 겪고 며칠 지나지 않아 큰 어려움을 당했지요. 너무 암담하여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부터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고 말씀하셨고 어떻게 어디에서 구해야 하나, 기도할 때 한마음교회 안에 있는 열방기도센터를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날마다 출근하듯 그곳에 가서 6개월 동안 말씀기도를 했습니다. 암울한 제 현실을 두고 기도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진리가 결론이므로 믿음으로 열방을 위해서만 기도했습니다. 사단의 참소가 이어졌지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그리하면 그 위에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 그것이 결론이다” 선포하며 기도했습니다. 결국 믿음으로 기도함으로서 주님의 선하고 신실하신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았지요. 그 후 한일장신대 느헤미야 기도를 통하여 나의 할 일을 주께서는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을 통하여 “열방을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고 말씀하셨지요. 십자가의 생명을 아는 이들이 할 일은 곧 기도로서 열방을 풀어놓아 다니게 하는 것임을 깨닫고 기쁨으로 ‘아멘’ 하고 화답했습니다. 또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열방을 흥왕케 하는 자” 라는 것을. 그 한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과 순종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증인으로서의 개인적 삶이 이웃과 공동체로 확장되는 사역이 펼쳐지고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어떠신지요.
“2년 전부터 순회기도팀으로 섬기면서 느헤미아 기도가 행해지는 곳이면 어느 곳이던지 인도하시는 대로 가고 있습니다. 가기 전에는 옛 사람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고 몸이 아파지고 관계의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기만 하면 영광의 자리였습니다. 생명이 사는 것을 보게 되니까요. 한 교회가, 한 영혼인 것이죠. 가정을 두고 떠날 때 사단의 참소가 내면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말씀과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하는 주의 손을 다시 붙잡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나도 나를 못 살리고, 가정도 나를 못 살리는 것임을. 오로지 진리가 결론임을. 1907년 평양 대부흥이 일기 전에도 사경회 이후 각 사람이 ‘나’ 자신을 연보하는 결단을 내리고 행했던 사실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회개 이후, 당연한 수순으로 헌신이 뒤따랐던 것이지요. 헌신, 그것은 곧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쉽지 않는 것이지요.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라며 몸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직한 헌신이 아닙니다. 마음이 진정으로 가면 당연히 몸이 가게 마련이니까요. 마음을 드리는 증거가 곧, ‘몸을 드림’ 입니다. 저를 부르시는 곳이면 그 어디든지 달려가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지요. 주님이 실제 되는 그 기도의 자리에 자주 서고 보니 더욱 더 바뀌는 나의 모습이 곧 주께 받는 별도의 축복입니다.”
– 많은 기도의 현장을 섬기셨을 텐데 그곳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듣고 싶습니다.
“수도 없이 많지요. 김제의 Y교회에서는 하루에 15시간을 기도하면서도 전혀 피곤하지가 않더군요. 그때 아무 것도 모르고 참여하신 사역자 한 분이 계셨는데 그 기도의 자리에 대한 충격으로 사역 방향을 전환하시겠다고 선포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읽고 그대로 묵상하고 그대로 올려드리는 ‘말씀기도 자체에, 그리고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 드러나는 ‘복음’ 에 대하여 강한 도전을 받은 거지요. 유능한 설교자로 살아오면서 그것이 문제인 줄 몰랐는데 이제 말씀대로만 전하고 살아내는 설교자가 되겠다고 결단하고 선포한 것입니다. 목포의 한 작은 섬에서는 한 목회자 가정의 가치관이 바꾸고 질서가 바로 세워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참석하기로 한 일반 성도들의 발길이 막히더니 사모님과 장모님과 처제, 그리고 섬기게 된 네 명이 함께 기도하면서 ‘남편을 남편으로, 사위를 사위로’ 세우는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거지요. 그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목회자 가정을 먼저 회복시키신 겁니다. 2월달에 다녀왔던 러시아의 로스토프 소망교회에서도 동일했습니다. 많은 현지인들이 느헤미야52 기도에 참석했는데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그것이 장애가 아님을, 주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주님의 마음’ 만 안다면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한국의 텔레비전을 통하여 치유집회를 많이 보고 그것이 곧 복음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님을 깨닫고 선포한 일들이 일어난 거지요. 기도만 하고 말씀은 빈약한 채 은사만 추구하던 자신들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비로소 인식하고 비전을 세우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 다른 계획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좇으며 살아가시는 그 삶 속에 기도제목이 있으신가요?
“어떤 일을 시키실지 모르지만 말씀하시면 늘 ‘아멘’ 으로 화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같이 이 길을 걸으니 참 좋은데, 이젠 26살 아들도 같이 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이 기도의 삶을 함께 누렸으면 참 좋겠습니다. 또한 확실하게 그 부르심의 끝자리를 보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진리가 결론되어 사는 이 삶을 천국 가는 그날까지 나와, 내 가족과, 많은 이들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사진 허혜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