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주의해야 할 점
우리는 지금까지 그녀의 음악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제 기독교 관점에서 그녀의 음악에서 주의와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측면을 평가하자.
1. 언어
당연한 것부터 시작하자. 욕설, 비속어, 건전하지 못한 말. 언어에 관한 한 처음 네 장의 앨범은 무해했다. 하지만 ‘Taylor’s Versions of Speak Now’와 ‘Red’가 발매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에서 욕설과 나쁜 언어가 엄청나게 증가했음을 알려주는 그래프가 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예는 포함되지 않았다.)
언어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당연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건전하지 못한 말이 뇌에 각인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이 부분에서 일관성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사실상 요즘 나오는 모든 영화나 TV 쇼가 다 나쁜 말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쁜 언어를 노래에서 듣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훨씬 더 친밀하다. 머리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입으로 가는 길이 더 짧다. 분명히 말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지금 노골적인 언어가 나오는 TV 쇼와 영화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단지 노래에 대해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2. 비성경적 주제
오늘날 대부분의 음악가들처럼 테일러 스위프트도 비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독교의 가르침과 두드러지게 다른 몇 개를 지적하겠다.
반항적 독립
앞에서 보았듯 어떤 노래에서 테일러는 낭만적인 관계에서 행복을 찾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 다른 노래에서는, 특히 2017년 앨범 ‘Reputation’에서는 자신만의 강렬한 독립적 페르소나를 선보인다.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전부이다. 그 시절 음악에서 그녀는 자신이 가졌던 거의 모든 관계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멍들고 화상을 입은 후에 반격한다. “당신의 흔적은 사라졌어. 마침내 깨끗해진 것 같아”라고 노래한다. 구원이 마침내 내면에서 발견되었다는 거짓말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단다.
Eras 투어를 통해서 앨범 Reputation 시대가 시작될 때 모든 이미지가 뱀처럼 변했다. 심지어 의상조차 뱀으로 뒤덮인다. 팬들이 그녀를 뱀이라고 부르게 된 카니예 웨스트의 참사를 불러왔고, 그녀는 그것을 “새로운 테일러”의 상징으로 재활용했다. 결국, 이것은 우리가 에덴동산에서 만나는 반항적인 독립이다. 뱀이 하와에게 뭐라고 하는가? “당신은 하나님이 필요 없어. 아담도 필요 없어. 당신에게 필요한 건 여기에 다 있어.”
용서가 아니라 복수
또 다른 주제는 용서 대신 복수를 하자는 것이다. 특히 “Bad Blood”나 “Look What You Made Me Do” 같은 노래에서 그렇다. 나는 “End Game”에 나오는 이 가사를 좋아한다. “나는 도끼를 묻었지만, 어디에 두었는지 지도를 가지고 있어.” 용서에 대한 설교에서 이 가사는 인용할 만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다 겪는 어려움이 아닌가? 테일러는 얼마든지 어긋난 관계에서 벗어나거나, 깨진 우정을 극복할 수 있다. 음악 산업계 사람들의 잘못이 초래한 여파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회복이나 화해에 대해 노래하지 않는다.
스위프트가 빠진 함정은 관계를 도구화하는 오늘날의 경향이다. 관계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판단 기준은 관계가 자아실현, 자기 자신을 찾고 발견하며 진실되게 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는가의 여부이다. 자기표현을 방해하거나 정체성 감각을 어지럽히거나, 나의 자유를 침해하는 순간, 그것은 나쁜 관계로 규정된다. 이런 환경에서 관계는 진정한 동반자 형성과 우정에 필요한 자기희생이 부족하기 때문에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관계는 단지 우리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나님을 향해 성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상황이 나빠지면 계속 악화라는 길을 걸을 뿐, 개선을 향해 위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마법 영성
스위프트의 음악 중에서 특히 “Willow”에 나타나는 마법 영성(Wiccan Spirituality)의 요소를 언급하지 않는 건 지금 내 입장에서 책임 회피와 다르지 않다. 뮤직 비디오에서 그녀는 마녀 무리와 함께 숲 속에서 후드를 두른 채 등장한다. 스위프트의 대부분 음악에서 이런 영성이 지배적인 건 아니다. 따라서 정말로 그 영성에 헌신해서라기보다는 단지 미적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그녀가 의존하는 영성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오늘날 인기를 얻고 있는 사이비 영성 또는 사이비 종교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녀는 사이비 방식으로 “카르마”를 노래하며, 심지어 카르마를 남자친구, 심지어 신이라고까지 주장한다.
반교회 사고방식
테일러의 노래 중에는 교회를 위선자 멍청이들로 가득 찬 곳으로 묘사하는 게 있다. “But Daddy I Love Him”에서 그녀는 “그녀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려하는 사람들을 “판단력 있는 놈들”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그들의 기도를 거부하고 “야생적인 소년과 모든 야성적인 기쁨”과 함께 길을 떠난다.
방금 이 사람들이 당신을 키운다는 것을 알았어.
사실은 당신을 가두기 위해서
일요일 최고의 옷을 입은 사라들(Sarahs)과 한나들(Hannahs)
진주를 움켜쥐고 한숨 쉬며 “이게 뭐야”라고 하지
방금 이 사람들이 당신을 구원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어.
왜냐하면 그들은 당신을 미워하기 때문이지.
“Guilty as Sin”이라는 또 다른 노래는 교회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상징을 사용해서 비판의 강도를 한층 더 날카롭게 만든다. 물론, 이런 종류의 교회 때리기가 새로운 일은 아니다. 마돈나와 다른 가수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포괄적인 우려를 하도록 만든다.
3. 성 혁명 이데올로기
테일러 스위프트는 성 혁명이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모든 내용을 공유한다. 그녀가 배우자에 대한 신실함, 결혼, 그리고 자녀를 갈망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모든 종류의 성적 관행과 행동을 찬양한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60년대 이후로 컨트리를 포함한 거의 모든 팝과 록 음악은 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에서 벗어났다.
스위프트의 초기 음악은 이 부분에 있어서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앨범 ‘1989’에 이르러서 LGBT+ 문제에 대한 언급(“Welcome to New York”)과 훨씬 더 많은 성적 대상화(“Wildest Dreams”와 “Blank Space”)가 등장한다. Reputation과 Lover에 이르면 더 노골적인 성적 취향이 등장한다. 그리고 주의하라. 성적 암시가 항상 가사에만 있는 건 아니다. 뮤직 비디오나 라이브 공연에서는 더 많은 내용이 나온다. 최근 노래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Eras 투어를 위한 하나의 상징적인 패러디 쇼가 되었다.
스위프트가 음악을 사용하여 성 혁명의 이념을 전파한 가장 좋은 예는 2019년 노래 “You Need to Calm Down”이다. LGBT+를 옹호하기 위해서 동성애라는 단어의 철자도 틀린 채 피켓을 든 시골 사람들 무리와 무지개의 화려한 세상을 대조하는 뮤직 비디오가 만들어졌다. 여기 나오는 GLAAD와 관련된 언어유희는 게이 및 레즈비언 명예 훼손에 대항하는 동맹(Gay and Lesbian Alliance Against Defamation)을 말한다.
왜 화가 났어?
너도 얼마든지 GLAAD가 될 수 있는데? (당신도 GLAAD가 될 수 있어요)
퍼레이드 하는 거리에는 햇살이 비치지만
당신은 차라리 암흑의 시대에 있는 게 낫겠어
그 피켓을 만드는 데에만 밤새 걸렸을 거 아니야
“암흑시대에 있다”는 대사는 성 혁명 이념의 주요 교리를 나타낸다. 점점 더 많은 성적 자유와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수용함에 따라 인간이 도덕적으로 진보한다는 주장이다.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그녀는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야 한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끔찍한 1950년대 세상”으로 되돌리려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한다. 만약 당신이 섹스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혼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테일러에게 당신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있는 편견에 사로잡힌 시골뜨기 증오자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다. 당신의 관점이 아무리 철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 뿌리를 두고 있더라도,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하나는 확실하다. 그녀는 당신이나 당신의 관점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스위프트의 영웅 중에서 우리는 후기 근대의 타락과 성 혁명의 헛된 약속의 사례를 만난다. “The Last Great American Dynasty”는 지난 세기 후반에 살았던 부유한 사교계 명사인 레베카 하크니스에 대한 이야기로, 그녀의 삶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녀는 뻔뻔스러움으로 악명을 얻었다. 타락한 삶, 계속되는 망가진 관계, 죽을 때까지 자식들은 그녀와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런데도 테일러는 하크니스를 존경한다. 그녀가 보인 대담함, 그리고 타인들의 험담을 참아내는 의지력 때문이다.
이 주제에서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비록 변태와 타락을 찬양하는 테일러이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녀에게 불공평할 것이다. 테일러는 그런 것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The Archer”에서 “내 영웅은 모두 혼자 죽는다”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Illicit Affairs”에서 성적 만족을 주는 우상이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을 실망시킬 거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불법적인 불륜의 특징이지
그리고 비밀스러운 만남과 훔친 시선
그들은 단 한 번 진실을 보여주지
하지만 그리고는 거짓말하고, 거짓말하고, 또 거짓말하지
수 백만 번이나
성적 방종에 대한 이런 노래 중 일부는 고립이나 굴욕, 또는 거짓말과 헛된 약속에 대한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녀의 성적 윤리를 비난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이 가져다주는 환멸을 묘사하는 그녀의 정직함은 칭찬하고 싶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을 들어야 하는가?
이제 여러분은 아마 궁금할 것이다. 이봐, 트레빈, 테일러 스위프트의 모든 앨범을 휴대폰에서 삭제하라는 거야? 십 대 자녀에게 그녀의 음악을 금지하라는 거야? 아니면 욕설이 안 나오는 “깨끗한” 노래만 듣도록 하라는 거야?
내가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규칙을 제시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성령이 아니다. 나는 여러분의 양심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다. 테일러의 음악을 충분히 들은 지금 만약에 내 딸이 테일러 스위프트를 좋아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지고 말하고자 한다. 자녀들이 좋아했던 다른 아티스트와 관련해서 그들과 나눈 비슷한 대화를 바탕으로 내 생각을 말하겠다. 자, 시작하자.
첫째, 어린 마음은 쉽게 영향 받는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 여러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가장 크게 히트한 곡을 내가 지금 연주한다면, 여러분은 그 노래의 모든 가사를 다 외울 것이다.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래도 다 기억할 것이다. 다섯 살에서 스무 살 사이에 듣는 음악은 평생 따라다닌다. 그러니 아이들의 삶 전체에 걸쳐서 울려 퍼질 사운드트랙이 될 만한 노래가 무엇이 되어야할 지를 자문해보라. 머리와 마음 사이에는 지름길이 닦여져 있다.
둘째,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보라. 아이들이 같이 음악을 듣자고 한다면, 절대로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몇 년 전, 우리 아들은 랩퍼 NF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내가 평생 들었던 것보다 더 많은 기독교 랩을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아주 많은 K-pop을 들었다. K-pop 팬이어서가 아니라 내 딸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딸이 즐기는 것을 나도 함께 즐기고 싶었다. 만약에 당신의 딸이 이미 테일러를 좋아하거나 좋아하고 싶어 한다면 그녀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딸을 아끼기 때문에라도 테일러의 음악에 익숙해져야 한다.
셋째, 음악에 대해 정기적으로 이야기하라. 함께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 플레이리스트에 노래가 나올 때, 함께 차를 타고 있을 때, 자녀가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고 싶어 할 때,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라. 솔직한 인상을 말하라. 주저하지 말라. 좋은 점, 싫은 점,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나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라. 가사에 관해서, 음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 그리고 그 음악을 통해서 드러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라. 음악이 드러내는 로맨스나 관계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려주자. 음악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든지 예술성, 성경, 그리고 사회가 기독교와 일치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등에 대한 좋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기독교 음악에도 분별력이 필요하다!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기독교 라디오가 성경적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중요한 건 세속 예술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이며, 아름답고 불경스러운지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자신을 선하고 아름답고 참된 예술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재능 있는 작곡가들이 있으며, 그들의 음악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음악은 강력한 연결 지점이 될 수 있다.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이다. 자녀의 음악 취향에 유창한 사람이 되어라. 최소한 대화는 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몇 가지 지침을 정하라. 우리집 경우에 노골적인 가사가 들어간 곡은 금지이다.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기에 그런 단어가 마음에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노골적인 가사를 피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휴대폰이나 음악 구독에 내장된 컨트롤을 사용하여 해당 음악을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얼마든지 듣고 싶은 것을 다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유튜브나 Spotify 또는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하는 경우에 이런 통제는 더 힘들어진다. 중요한 건 아이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다. 우리 가족의 경우에 우리는 모두 다 다음 사실에 동의했다. “노골적인 가사가 나오는 노래는 안 돼. 우리의 마음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인상에 의해서 만들어져. 우리는 입술로 예수님을 공경하고 싶어. 욕설이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 그 목표가 더 어려워질 뿐이지 쉬워지지 않아.”
물론 노골적으로 성적인 노래도 금물이다. 나는 비틀즈 팬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The White Album에 담긴 끔찍한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를 같이 부르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절대로 그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순전히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끔찍한 노래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맥클리모어(Macklemore)의 “Same Love”처럼 동성 결혼을 주장하는 노래나 레이기 가가의 “Born This Way”, 테일러 스위프트의 “You Need to Calm Down” 같이 분명한 의도가 담긴 노래는 그냥 걸러야 한다. (주의하라. 테일러의 이 노래는 너무 중독성이 강해서 단 두 번 들었는데도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섯째, 금단의 과일을 실제보다 더 금지된 것으로 만들지 말라. 노골적인 노래나 성적인 노래에 지나친 신비감을 줄 필요가 없다. 그런 경우에 아이들은 숨어서 어떻게든 들을 것이다. 왜 특정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지 설명하는 게 훨씬 낫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 중에서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자신이나 가족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적절하지 않은 노래는 모두 제외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내가 들어도 괜찮은 노래는 여기 있어. 네가 듣고 싶어 하는 노래가 다른 게 있다면, 그런데 그게 금지된 거라면, 우리 앉아서 같이 듣고 토론하면 어떨까? 그러면 왜 그 노래가 네 머릿속에 있지 않기를 바라는지 설명해 줄게.”
지금까지 자녀의 음악 선택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면, 부모로서 실패한 것 같거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해한다. 스스로를 꾸짖지 말라.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경계를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부모를 반길 거라고 생각한다.
딸이 테일러의 열렬한 팬이 된 이후라고 해도 대화를 포기하지 말라. 현실적이고 솔직하게 말하라. 대화의 목표를 재구성해야 한다. 특정 노래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딸의 머릿속과 마음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금지된 노래의 매력을 더하는 방식으로 “금지”하지 말라. 특정 노래가 예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좋지 않은 이유,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지는 믿음의 범위를 지나치게 벗어난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세 가지를 추천하겠다. 내가 쓴 This Is Our Time에 나온 갈망-거짓-빛의 구조이다. 그녀의 노래에 담긴 깊은 갈망과 동경을 살펴보라.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심어놓은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 속에 만든 구멍의 일부이며, 모든 인류를 특징짓는 안식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로 드러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행복을 원한다. 선을 원한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원한다.
다음으로, 그녀가 갈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빠지는 거짓말을 살펴보라. 남자가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다는 거짓말, 성적 자유가 결혼 생활에서의 성적 충실보다 낫다는 거짓말, 성경적 성에 대한 관점이 생명이 아니라 억압이라는 거짓말, 복수가 용서보다 더 큰 만족을 준다는 거짓말, 명예와 재산에서 인정과 수용을 찾을 수 있다는 거짓말. 그 모든 갈망을 살펴본 다음에 거기에 관한 거짓말을 조사하라.
그런 다음에 테일러 스위프트의 말에 복음의 빛을 비추라. 살아있는 말씀과 그녀의 말을 접촉시키라. 복음은 가장 깊은 갈망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가장 깊은 거짓말을 폭로한다. 복음이 어떻게 테일러 스위프트를 압도하고 반대하는지 보여주라. 그리고 복음이 어떻게 그녀의 가장 깊은 갈망을 충족시키는지를 보여주라. 갈증을 해소하려고 마시는 오염된 우물 대신에 복음이 어떻게 살아있는 물로 그녀의 갈증을 채우는지 보여주라.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모든 열망, 인정과 수용에 대한 모든 갈망, 행복과 성취에 대한 모든 갈망, 언젠가 상처가 치유되고 고통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모든 희망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오로지 그의 피를 통해서만 오는 용서, 그리고 믿음을 통한 은혜로 하나님의 가족에 속함으로써만 그녀는 모든 갈망을 채울 수 있다.
‘하나님, 이제 어쩌지요?’
테일러는 가장 최근 앨범에서 무대 공연에 대해서 노래한다. “상처받은 마음으로도 할 수 있다면 자신이 훌륭하다는 걸 알죠.” 테일러 스위프트의 현상은 그녀가 매우 성공적으로 포착하고 표현하는 젊은 세대의 상심을 음악이라는 차원을 넘어서까지 보지 못한다면 이해할 수 없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두 번째 그래미상을 수상한 테일러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 하나님, 이제 어쩌지요?” 이건 마치 산 정상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런, 겨우 이거였어? 이제는 어쩌지?” 하는 것과 똑같다. 지상에서 볼 때, 스위프트가 산 정상에 도달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정상에서 그녀는 의도치 않은 기도를 입술에 담고 말았다. “하나님, 이제 어쩌지요?”
테일러 스위프트가 새로운 인생을 맞도록 함께 기도하자. 기억하라. 주님의 팔은 구원하기에 결코 작지 않다. 그러니 테일러 스위프트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기도하자.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우리 자녀들이 반짝이는 별처럼(“보석처럼”이 더 나은 말이다!) 빛나도록, 그들에게 인도와 지혜, 그리고 분별력을 달라고 함께 기도하자. [복음기도신문]
원제: The Songs of Taylor Swift: A Christian Cultural Appraisal
트레빈 왁스 Trevin Wax | 트레빈 왁스는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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