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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칼럼] 우리 앞에 주어진 주의 교양과 훈계

Unsplash의 Daniel Bernard

이상규의 성경묵상8

엡 5:22~6:4

에베소서 5장 22절에서 6장 4절까지는 가정생활 대헌장으로 불리는 말씀입니다. 가정생활, 부부관계를 설교한 후에는 자녀교육에 대해 설교하는데, 그 본문이 6장 4절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저는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어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말씀이 이 본문이었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주의 교양과 훈계로”(ἐν παιδείᾳ καὶ νουθεσίᾳ κυρίου)라는 바울의 권면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는 주의 ‘교양’이 ‘파이데이아’(παιδείᾳ)이고, ‘훈계’가 ‘누떼시아’(νουθεσίᾳ)인데,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개역성경에서는 이를 ‘교양’과 ‘교훈’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근년의 개역개정판에서는 ‘교훈’과 ‘훈계’로 번역했습니다. 어떤 번역을 취하던 교양(교훈)과 훈계라는 개념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영어성경 새흠정역(NKJV)에서는 training and admonition으로, 새국제역(NIV)에서는 training and instruction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런가하면 NLT에서는 discipline과 instruction으로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면 혼란은 더욱 가중됩니다.

어떤 이들은 이 두 단어가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 이사일의(二詞一意)로 간주합니다(Koppe, Bertram). 그러나 일반적으로 파이데이아는 ‘바로잡음’ 혹은 ‘훈련’(training) 혹은 ‘훈육’(discipline)의 의미로 해석해 왔고, 반면에 누떼시아는 ‘책망’(instruction)이나 ‘훈계’(admonition)라는 의미로 해석해 왔습니다. 이런 해석 또한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아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실제로 바울이 가르쳤던 본문의 의미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갔습니다. 두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두 용어가 사용되던 1세기 헬라로마적 상황으로 돌아가는 일이 좋을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면서, 아비들에게 “주의 파이데이아로 양육하라”고 말했을 때, 이 파이데이아는 직업 훈련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가르침을 의미했습니다. 1세기 당시 파이데이아는 자유시민(free Greek citizen)으로써 필요한 총체적인 개발을 의미했습니다.

이것이 교양학과(artes liberales)라고 불리는 자유시민을 위한 교육인데, 이것은 노예들을 위한 직업 혹은 기술교육(artis servilis)과 구별됩니다. 즉 파이데이아는 직업 교육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교육, 곧 균형 있게 교육받은 교양인을 위한 교육을 의미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교양(학)’이라고 말하는 단어(liberal arts)가 나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르네상스기의 인문주의자들은 파이데이아를 ‘인문학’(studia humanitatis)으로 번역했던 것입니다. 노예가 아니라 헬라의 자유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문화, 역사, 문학, 음악, 과학, 예술을 배워야 하는데, 이를 파이데이아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파이데이아를 ‘교훈’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교양’으로 번역했던 개역성경 번역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바울이 파이데이아에 덧붙여 “주의”(κυρίου, of the Lord)라는 속격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문법적으로 ‘주님께 속한’이란 의미이지만 이방 헬라인이나 로마인들이 그들의 자녀가 자유시민으로 양육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듯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으로 필요한 모든 면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즉 이 문맥, 곧 ‘주의 파이데이아’는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가르침(교양)을 의미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누떼시아’는 무엇일까요?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습관’(habits) 혹은 ‘훈육’(discipline)으로 번역되는데, 잘 훈련된 바른 삶을 의미했습니다. 즉 누떼시아라는 단어는 몸과 마음의 습관을 개발하여 위기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평소에 소방훈련을 잘 받은 소방관은 훈련받은 바처럼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런 일상의 훈련을 누떼시아라고 불렀습니다. 경찰이나 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상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훈련, 그 훈련으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습관화된 훈련(practiced habit-formed discipline)을 1세기 당시 사회에서 누떼시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울이 덧붙여 말한 ‘주의’ 누떼시아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으로써 의와 경건과 거룩에 이르도록 훈련하되 이것이 습관화 되도록 자녀들을 훈련시켜야 한다는 점을 의미했습니다. 이 시대의 풍조에 저항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훈련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서 바울은 언약자손들을 위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파이데이아와 누떼시아입니다. 그것이 ‘교양’과 ‘훈련’이다. 부모들은 자식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교양’을 함양하되,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합당한 삶을 ‘훈련’하여 그것이 습관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이 본문의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가르침이 파이데이아, 곧 교양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그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대처하도록 하는 훈련을 누떼시아아고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주의 교양으로 가르치고 훈련해야 할 책임이 우리 앞에 주어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상규 교수 | 전 고신대 교수. 현 백석대 석좌교수. 교회사가로 한국교회 사료 발굴에 기여했으며, 한국장로교신학회 회장과 개혁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교회와 개혁신학> 등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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