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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칼럼] 장도칼과 면도칼

unsplash의 Herrmann Stamm

일본의 새 총리가 탄생 되었다. 「이시바 시게루」는 자민당 총재로서 총리가 되었다. 나는 즉시 일본의 친구인 미와 노부오 목사에게 문자를 보내어,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신앙의 여정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답이 오기를,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주일학교 교사> 출신이다!’라는 것이다. 주일학교 교사는 자신의 신앙을 확실히 가지고 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이나,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신앙지도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분이다. 들리는 말로는 4대째 크리스천이라고 한다. 그는 증조부, 조부 그리고 부모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받고 교회에서 매주 주일학교 교사로 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그 어려운 정치판에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자신의 신앙을 지켜오고 있었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도 주일학교 교사 출신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을 점령하고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고, <내선일체>를 주장하면서 모든 국민에게 신사참배를 하라 했고, 모든 기독교 학교와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했었다. 그때 평양신학교와 숭실전문학교 등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폐교되었다. 그리고 모든 교회들이 일본의 군국주의의 정책에 굴복했을 때, 만주에는 한부선 선교사, 평안북도에는 이기선 목사를 중심으로 주기철, 한상동, 주남선, 손명복, 손양원, 이인재 등이 신사참배에 항거하다가 5년 또는 6년의 형기 중에 순교하거나, 해방 후 산 순교자로 출옥했다. 그런데 그 당시 일본 내에서도 올곧은 신앙의 사람들은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사람도 있었다. 특히 일본의 개혁파 교회 목사와 성도들은 신앙의 절개를 지킨 사람들이었다. 한국교회가 일제 강점기 시에 신사참배를 어쩔 수 없이 했다지만, 이미 신앙의 절개를 팔아먹은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신앙의 여정과 주일학교 교사 출신이라는 데에 마음에 평안이 왔다. 일본의 기독교는 연약하기 짝이 없다. 일본은 신도(神道)가 99%이고, 기독교는 불과 0.5% 수준이다. 반면에 한국은 남산에서 서울 야경을 보면 온통 붉은 십자가로 가득하다. 그러나 일본은 동경이나, 교토나, 고배,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도 눈을 씻고 봐도 교회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소수의 기독교회, 소수의 성도들이지만, 그들이 사회와 문화, 국민정신에 끼친 영향력은 매우 크다. 가령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꼬>나 <우찌무라 간조>는 일본교회와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특히 <가가와 도요히꼬>는 일본의 개혁파 신학교와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후, 그는 노동운동과 사회복지 사업에도 크게 일했다. 아울러 그는 고배 빈민가에 생활하면서 그의 신학적 훈련과 실천으로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로 부상한다. 그는 1928년 <백만인 구령 운동>이라는 복음주의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이 운동은 1932년 <하나님 나라 운동(The Kingdom of God Movement)>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우찌무라 간조의 저서들도 한국말로 번역되었고, 나는 그의 <로마서 강해>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필자는 1980년대부터 일본을 출입하면서 많은 개혁파 교회 지도자들과 사귈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고배 개혁파 신학교 교장 하시모토 목사님이다. 그는 필자에게 몇 년 선배로서 암스텔담 뿌라야 대학교 연구교수로 있었고, 후일 나와는 특별한 관계였다. 그는 정통 개혁주의 교의 학자로서 일본의 제국주의가 저지른 과거의 죄악을 진심으로 여러 번 사죄했었다. 내가 제암리 감리교회로 그를 모시고 갔을 때, 일본 군경이 저지른 당시의 죄악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사죄했었다. 그리고 헌금함 앞에 이르자, 그는 내게 「우리같이 더러운 돈도 헌금 할 수 있을까요?」 하면서 여비를 제외하고 모든 돈을 헌금함에 넣었다. 일본의 양심은 하시모토 목사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잘 알려진 오야마 레이지(尾山令仁) 목사님이시다. 그는 독립개혁주의 교회 목사로서 동경성서 그리스도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이고 신학자였다. 그는 100여 권이 넘는 저서를 남기고 잡지 <요군(洋群)>을 매달 발행했다. 나의 글들이 3년 동안 그 잡지에 실렸고, 그 후 단행본으로 책을 내어 주었다. 나의 글이 실린 첫 페이지는 반드시 한반도 지도를 넣고 오른쪽은 <동해>라고 표기해 주었다. 나는 그의 교회에 두 차례 집회했었고, 그도 수십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일본의 죄상을 사죄하고 또 사죄하면서 제암리교회를 재건해 주었다. 이른바 양심적인 일본인이었다.

40여 년 전, 나는 하시모토 교장을 총신에 초청해서 강연을 시켰다. 그때 하시모토 교장은 “한국교회가 코끼리 만큼 크다면, 일본교회는 벼룩처럼 작다”고 말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이 끝나자 우리나라 선교학의 대부이신 조동진 박사는 그에게 “한국교회가 장도칼이면, 일본교회는 면도칼입니다!”라고 응수했었다. 사실 한국교회는 해방과 건국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교회가 엄청나게 부흥된 것은 사실이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예배만 잘 모일 뿐, 교회의 지도자들이 국가와 민족 그리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데 실패했다.

물론 목회자나 장로나 집사들 가운데 아름다운 신앙의 간증을 가진 분들도 많고, 정치, 경제, 법조, 사회, 문화, 예술 분야에 기독교 세계관과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회의원 절반이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신자들과 구별이 안되는 삶을 살고 있다. 기독교인이기 전에 양심을 버린 사람들이 많고, 국가와 사회에 조롱거리가 많은 것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조동진 박사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한국교회가 <장도칼>이면, 일본교회는 <면도칼>이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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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 |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40여년간 목회자, 설교자로 활동해왔으며, 최근 다양한 국내외 시사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조명한 칼럼으로 시대를 깨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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