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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전도자의 면도날: 회의론자를 바꿀 강력한 질문

Unsplash의 Stefan Heinemann

당신은 혹시 코뿔소 또는 고슴도치가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코뿔소처럼 일단 머리부터 들이박으며 돌진하는 걸 좋아한다. 한편으로는 몸을 둥글게 말며 기회를 노리는 고슴도치처럼 일단 안전한 곳으로 물러서는 사람도 있다. 이 둘이 매우 달라 보이지만 뾰족한 무기가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회의론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회의론자 중에는 진지하게 호기심을 보이며 기꺼이 듣다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답을 듣고도 마치 그 대답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때때로 회의론자는 고슴도치이다. 그들의 가시는 전도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는 데 사용된다. 당신은 코뿔소를 만날 수도 있다. 당신을 쫓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다가오는 사람이 바로 코뿔소이다. 두 경우 모두 다 회의론자들이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이다.

가시 돋친 질문의 다양성과 모호성 때문에 선의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가던 그리스도인은 종종 조언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그룹 메시지를 보낸다. 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답을 구체화하기도 하고 조언을 받아서 회의론자들과의 효율적인 소통에 필요한 매력적인 답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는 회의론자에게 돌아와서 일주일 동안 애써서 만든 답을 전달한다. 그리고 회의론자의 인생이 바뀌는 극적인 순간을 간절히 기대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아예 신경 자체를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질문의 중요성 자체를 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는 언제 답을 들었냐는 듯 또 다른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뿐이다. 당신에게는 조언자들에게 또 한 번의 그룹 메시지를 보낼 일이 생겼다. 

애매한 질문에 쉬지 않고 대답하는 건 힘든 일이다. 광범위한 주제에 정통해야 할 뿐 아니라 틈새 질문에까지 답할 수 있어야 해서다. 그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더 나은 방법이 없는 걸까?

인식론적 면도날: 철학 지름길

철학자들은 지식 체계를 다루기 위한 지름길을 확립했다. 그리고 그것을 인식론적 면도날이라고 부른다. 면도날의 기능은 불필요한 설명 정보를 깎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도구 중 가장 유명한 게 오컴의 면도날이다. “실체가 불필요한 내용으로 덧입혀져서는 안 된다.”[1] 쉬운 말로, 더 간단한 설명이 있는 경우에 굳이 불필요한 부분을 설명에 추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사용하면 불필요하게 복잡한 각종 해결책을 깎아낼 수 있다.

회의론자는 그리스도인과의 대화에서 인식론적 면도날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칼 세이건이 자주 쓰는 말을 한번 생각해 보라. “엄청난 주장에는 엄청난 증거가 필요하다.” 히친스의 면도날은 또 어떤가? “증거 없이 주장되는 내용은 얼마든지 증거 없이도 기각될 수 있다.” 깎아내고 깎아내서 딱 한 문장만 남긴 것이다. 인식론적 면도날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가만이 이해하는 영역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는 것이다. 신무신론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주장에 일일이 대답하기보다는 아예 대답해야 할 내용의 양을 줄였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이 면도날을 위선적인 방식으로 적용했다.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특히 히친스의 경우에는 면도날 그 자체를 하나의 주장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면도날의 역할은 어떤 주장의 나쁜 부분을 깎아내는 것이지, 아예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다 깎아내는 게 아님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인식론적 면도날 사용방식은 말 그대로 오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몽매주의에 빠진 행태였다.

전도자의 면도날

보다 더 생산적인 대화를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우리도 우리만의 면도날을 적용할 수 있다. “내가 이 질문에 답한다면, 당신은 오늘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최소한 그들은 잠시 멈추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면도날이 가진 아름다움이다. 여기에는 무장 해제의 효과가 있다. 회의론자에게 자기반성을 촉구한다. 그들의 동기가 순수한가? 그들이 진영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가? 아니면 그들에게 이건 단지 스포츠에 불과할까?

회의론자가 아니라고 말하면, 부드러운 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니, 왜 안 되죠?” 그들의 다음 말이 중요하다. 당신은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이제 나오는 말이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 하지 않는 진짜 이유에 가깝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전도자의 면도날을 사용하면 코뿔소의 뿔이나 고슴도치의 척추까지 깎아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신무신론자들이 저지르는 것과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이 면도날을 쓰는 이유는 대화를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이 질문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거만한 태도로 정신 분석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회의론자의 방어적인 가시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 괴로움을 주는 원인을 찾아내어 부드럽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주장 중 어떤 부분이 그들을 힘들게 하는지, 우리는 비로소 그들의 진짜 속내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면도날을 쓴다고 해서 당신이 회의론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의론자들이 결코 멸망하는 죄 많은 인류의 상태를 합리적으로 넘어설 수 없다는 바울의 말을 믿어야 한다(고전 1:18-20). 호전적이거나 무관심한 회의론자의 날카로운 질문을 끝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더욱 모호한 추측을 부추길 뿐이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대화하기

이 면도날을 사용함으로 우리는 변증의 최종 목표, 전도의 최종 목표를 강조한다. 우리가 바라는 건 믿지 않는 자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목표는 논리적인 주장에 대한 승인이 아니다. 상대가 충성하는 대상을 바꾸는 것이다.

한 번의 대화에서 전도자의 면도날을 몇 번이나 사용해도 된다. 고슴도치는 가시가 많고 코뿔소는 여러 번 돌진할 수 있다. 당신의 질문에 상대는 수도 없이 ‘아니오’ 하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면도날의 요점이다. 대답할 필요가 없는 내용은 깎아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예’라는 대답이 나올지 모른다. 심지어 “아니요… 나는 이제 예수님을 믿어요!” 하는 대답을 만날지도 모른다. [복음기도신문]


[1] Pedro Domingos, “The Role of Occam’s Razor in Knowledge Discovery,” Data Mining and Knowledge Discovery 3(1999): 409; John McFadden, Life is Simple: How Occam’s Razor Set Science Free and Unlocked the Universe(London: John Murray, 2021), xi-xii. 오컴은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신학이나 변증적 토론을 위해 면도날을 쓰지는 않았다. 그는 순수한 이성 추구에 전념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를 증명한다고 믿었다. Commentary on the Sentences of Peter Lombard에서 오컴은 “자명한(문자 그대로, 그 자체로 알려진) 것, 경험으로 알려진 것, 또는 성경의 권위로 증명된 경우가 아니면 그 어떤 것도 타당한 이유 없이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Sent. I, dist.30, q.1).

원제: The Evangelist’s Razor: A Powerful Question for Sceptics

조아쉬 아놀드(Joash Arnold) | AFES에서 일한다. Monash University의 기독교 학생 연합에서 사역하고 있으며 멜버른 시와 세계 선교를 위한 설교자 훈련에 열정을 쏟고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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