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평화연구소 룰라 쿠리 만수르 소장, ‘화해의 시급성’ 제안
끝없는 분쟁과 살상이 난무하는 이스라엘-가자 지역에서 지난해 10월 7일 촉발된 중동 전쟁이 1주년을 지나면서 사태의 종결을 위한 화해와 용서가 시급하다는 팔레스타인 출신 그리스도인의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10월 인천에서 열린 제4차 로잔대회에 참석해 ‘분쟁의 땅에서 평화 구축하기’란 주제로 희망의 이야기를 전한 팔레스타인 출신의 이스라엘 국적의 기독교 법률가이자 신학자인 룰라 쿠리 만수르(Rula Khoury Mansour) 나사렛평화연구소 소장이 ‘화해의 시급함’을 주장했다.
‘10월 7일 이후 1년 뒤 로잔대회의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글에서 룰라 소장은 진정한 화해는 법적 정의를 뛰어 넘어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는데 있다며,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른 진실, 용서, 정의가 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의 갈등은 사람들이 진실에 대한 독점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며 이러한 틀에 갖혀 있는 한 우리는 비난과 복수의 순환에 갖힐 뿐이며, ‘진실 소유’에서 ‘진실 탐구’로 자세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치유는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겪은 고통을 인정할 때, 비로소 피해 의식과 분노를 넘어 역사를 상호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용서는 과거를 없었던 일로 치부하거나 정의를 포기하지 않을 때 적대적인 상대와 화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며, ‘적’을 인간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화해의 맥락에서 정의는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회복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책임을 지게 하며 깨어진 것을 고침으로써 치유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화해를 위해 교회는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다리 역할을 하며 양쪽을 서로 가까이 하나님께로 이끄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룰라 쿠리 만수르 소장은 나사렛평화연구소의 설립자로 나사렛복음주의대학교(NEC)의 화해 신학, 평화 연구 및 기독교윤리학 교수이다. 1995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법학 학사 취득 이후 변호사와 10년 이상 검사로 일하며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출신 최초로 나사렛검찰청의 부청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8년 영국 옥스퍼드선교연구센터에서 평화학 및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7년 텔아비브 대학교에서 시작된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유대-아랍 협력상을 수상했다.
다음은 룰라 소장이 나사렛평화연구소 웹사이트에 공개한 기고문 전문이다.
‘10월 7일 이후 1년 후 로잔대회의 고찰
이스라엘-가자 전쟁 1주년을 돌아보며,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질문들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며, 나사렛평화연구소에서 우리가 개인과 공동체를 평화 구축자로서 힘을 싣는 일을 한다.
이 깊은 성찰과 무거운 마음으로 나는 이 현실을 안고 서울로 향했다. 202개국에서 온 5200명 이상의 지도자들이 모인 제4차 로잔대회에서 연설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 성지에서 계속되는 고통과 분열 속에서도 희망과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 전체 패널에서 내가 강연한 주제는 ‘화해 – 분열된 지역에서 교회의 책임’이었다. 우크라이나,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온 세 명의 다른 패널들과 함께 우리는 우리의 평화 구축 여정을 나누기 위해 초대되었다. 이 세계적인 모임 앞에서 나는 내 이야기뿐 아니라 고향인 성지와 중동의 사람들, 즉 가자지구, 서안지구, 이스라엘, 레바논의 사람들을 대표한다는 무게를 느꼈다. 이들은 내가 기억하는 한 계속되는 갈등을 겪어 왔다. (지난해) 10월 7일에 발발한 최근의 전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참혹함이 가까이 다가왔다.
(로잔대회) 강연에서 나는 법학도 학생으로서 그리고 검사로서 평화 구축 여정을 시작했다고 나누었다. 법적 수단을 통해 정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다. 법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마음을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화해는 법적 틀을 넘어,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을 통해 나는 진실, 용서, 정의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어떻게 우리의 상처받은 땅에 치유를 가져올 수 있을지 더 깊이 연구하게 됐다.
화해의 네 가지 기둥
강연에서 나는 나사렛평화연구소에서 우리의 사역을 이끄는 화해의 핵심 요소들, 즉 공유된 진실, 용서, 정의 그리고 공유된 미래를 강조했다. 이러한 원칙들은 진정한 치유와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이 원칙들은 악을 선으로 극복하는 하나님의 전략을 나타내며,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진실을 거짓보다 중요하게 여기며, 용서와 정의를 복수보다, 사랑을 증오보다 우선하고, 배제보다 포용을 장려하는 것이다.
갈등 속에서 모두가 진실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결국 우리는 비난과 복수의 순환에 갇히게 된다. 진실을 공유하려면 ‘진실 소유’에서 ‘진실 추구’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전체 상황을 알지 못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의 관점이 우리의 신념이나 정체성을 도전할 때에도 그것을 기꺼이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치유는 정직함에서 시작된다. 진실 위원회는 치유가 진실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되며, 이를 위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겪은 고통을 인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운 역사를 직시하고, 피해 의식과 분노를 부추기는 서사를 넘어, 공유된 서사로 나아가거나 최소한 다양한 역사를 상호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용서는 종종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대량 학살 이후에 사람들에게 용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쾌하게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절대 잊지 말고, 절대 용서하지 말라”는 문구가 그들의 고통을 존중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방식에 집착하는 것은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들 뿐이다. 용서는 과거를 없었던 일로 치부하거나 정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용서는 정의를 높이며 진실을 말하고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용서는 적대감과 화해를 잇는 다리이며, “적”을 다시 인간으로 인식하게 시작한다.
증오와 트라우마가 깊은 우리 상황에서 용서는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선택이다. 용서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하나님 나라 전략의 일부이다.
화해의 맥락에서 정의는 존엄성과 권리를 회복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깨어진 것을 회복함으로써 치유를 촉진한다. 진정한 화해는 구조적인 불의에 맞서고, 갈등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며, 모든 당사자에게 공정한 해결책 보장을 요구한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는 공허하고, 용서가 없으면 정의는 싸움에서 또 다른 무기가 된다. 국가 차원에서 치유를 촉진한 나라의 경우, 복원된 정의는 다음 세 가지 주요 목표를 달성한다. 즉 잔학 행위를 문서화하고, 희생자들의 고통을 인정하며,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화해를 모색하는 것이다.
진정한 도전은 공유된 미래를 구상하는 데 있다. 현재, 배제와 분리가 성지의 삶을 지배하고 있으며, 양측의 과격한 그룹들은 자신들을 순수한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모두를 포용하며, 진정한 화해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갈등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고 정의로운 해결책을 위해 노력한 후, 치유는 과거의 고통을 현재의 현실과 화해시키는 데서 시작되며, 개인적, 공동체적, 정치적 행동을 통해 계속된다.
화해는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해지고, 과거의 상처가 더 이상 관계를 규정하지 않는 공유된 미래를 상상한다. 이를 위해 고통과 잘못을 인정하고 존엄성을 회복하며,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는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상징적, 물질적)이 필요하다. 이는 진정한 치유와 의미 있는 사회 변화를 우사과와 상징적 및 물질적 보상을 요구한다.
교회의 역할과 앞으로 나아갈 길
이러한 화해의 비전은 전쟁이 고조되고 증오와 극단주의의 목소리가 양측에서 더욱 커짐에 따라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갈등은 단지 땅이나 고대의 주장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복잡성에 갇혀 비극을 겪고 존엄성과 안전, 그리고 집을 갈망하는 진짜 사람들, 즉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뿌리 깊은 고통과 폭력의 맥락에서 역사적 화해는 사치가 아니라 절대적인 필수 조건이다. 화해가 없다면 폭력의 순환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기독교에서 화해는 신성한 명령이다. 우리는 깨어진 곳에 발을 들이고, 불의를 직면하며, 가장 어두운 곳에 희망을 가져오는 회복과 치유의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다. 교회의 역할은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다리 역할을 하여 양쪽을 서로 가까이, 그리고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이다. 이 사명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화해의 사랑을 행동으로 구현하며, 상처가 치유되고, 원수가 사랑받고, 희망이 지속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반영하게 된다.
이러한 평화의 비전을 공유하는 지도자들과 만남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교회는 모든 대륙에 걸쳐 있는 세상에서 ‘치유의 힘’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우리는 서로의 짐을 나누어야 한다. 이는 성지에 있는 교회의 책임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소명이다. 나는 이번 대회의 마지막 발언에서 전 세계 교회 가족에게 중동 지역의 교회와 함께 가자지구, 서안지구, 이스라엘, 레바논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는 함께 진실을 추구하고, 용서를 구하며, 전쟁을 끝내고 현재 진행중인 갈등의 정의로운 해결을 옹호해야 한다.
폭풍 속의 희망
서울에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으로 돌아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파괴된 현장, 인명 살상, 부상자와 피난민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만연한 공포 등 무겁고 가슴 아픈 짐을 짊어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에 나는 화해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고통에 둘러싸여 있을 때 희망을 잃기 쉽지만,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전달자로 부름받았다. 설령 그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에도 말이다. 우리는 그 틈새에 서서 우리의 가장 깊은 신념에 도전할 때에도 진실을 말하고,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보이는 곳에 용서를 베풀며, 존엄성을 회복하고, 관계를 치유하는 정의를 추구하도록 부름받았다. 이것이 바로 화해의 일이며, 결코 쉬운 길은 아니지만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다.
우리 주변에서 갈등이 격화될 때에도 화해의 일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소명이 우리 존재의 깊숙한 내면에 새겨져 있다는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분이다. 하나님과 함께 골짜기를 걸을 때, 신실한 자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그분의 구속의 능력을 목격하는 데서 깊고 지속적인 기쁨이 있다. 이 여정 속에서 우리는 고통이 단순히 견뎌야 할 시련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을 형성하는 사명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작은 빛들이 어둠을 뚫고 나아갈 수 있음을 알며 작은 승리들을 붙잡고 기뻐해야 한다. [복음기도신문]
룰라 쿠리 만수르(Rula Khoury Mansour) 나사렛평화연구소 소장.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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