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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계시록 1:7의 예수님과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 연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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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태복음 24장 30절 연구

요한계시록 1장 7절과 마찬가지로 다니엘 7장 13-14절과 스가랴 12장 10절을 결합한 형태로 인용한 구절이 있다. 그것은 곧 마태복음 24장 30절이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마태복음 24장 29-31절(막 13:24-27; 눅 21:25-28)은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하신 설교이다.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b)의 배경은 “그 ‘인자 같은 이’”의 즉위식이다(단 7:13). “인자가…. 오는 것”이 공개적인 재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좌에 앉으실 예수님 개인의 이동에 대한 묘사이다.[1] 마태복음 24장 30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명시하지 않지만, 다니엘 7장 13절과 예수님의 승천 사건(행 1:19-11)과 함께 고려할 때,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께로 이동하심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24장 29-31절은 다니엘 7장 13절만 아니라 요엘 2장 28절과 스가랴 12장 10절과 신명기 4장 32절과 신명기 30장 4절 등 다섯 개의 구약 본문을 배경으로 한다.[2] 스가랴 12장 10절은 앞서 이미 논의하였으니 이제 마태복음 24장 31b절과 신명기 4장 32절과 30장 4절에 집중하여 보자.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 31b).

하늘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신 4:32)

네 쫓겨 간 자들이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신 30:4).

마태복음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혈통적 회복이 아닌 모든 족속의 구원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기에, 마태복음 24장 31b절의 “그의 택하신 자들”의 출처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모든 족속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족속’을 통해서 구원의 보편성을, ‘그의 택하신 자들’을 통해 구원의 특수성을 각각 찾아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마태복음의 이어지는 본문은 24장 32-33절의 무화과나무 비유인데, 그 나무의 잎사귀가 나오면 여름이 시작되는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 파괴(마 24:1-2)등으로 예루살렘의 멸망에 의한 혈통적 이스라엘의 종말이 도래한다. 그 말씀은 이스라엘의 혈통적 후손들의 회복을 예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3]

마태복음 24장 29-31절의 배경이 되는 5개의 구약 본문들 가운데 우리가 아직 다루지 않은 구절이 있다. 그것은 곧 요엘 2장 28절이다. 이 구절의 주제는 우주적 붕괴로 예수님의 초림이 아니라 재림을 뜻하는 것이라고 이해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본문은 사도 베드로에 의해서 예수님의 초림 사건으로 해석되었다(행 2:19-20).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요엘 2장 28-32절은 바로 사도행전 2장 17-21절 배경 본문이 되는데, 그 본문은 크게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성령의 부어짐을 통한 환상, 꿈, 예언(욜 2:28-32/ 행2:17-18). ② 우주적 붕괴의 언어를 통한 심판(욜 2:30-31/ 행 2:19-20). ③ 남은 자의 구원(욜 2:32/ 행 2:21). 언뜻 보면, ① 항과 ③ 항은 예수님의 초림 또는 초림부터 재림을, ②항은 예수님의 재림을 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②항의 기사와 징조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이미 성취되었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셨다”라고 선포한다(행 2:22). 그 점에 대해서 이필찬은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님의 사역은 구원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심판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참고. 요 1:12; 3:18). 베드로는 요엘서의 종말적 기대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 뿐만 아니라, 오순절 사건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종말적 성취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한다. 이런 맥락에서 베드로가 ‘기사와 이적’의 구체적 내용으로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의 발생과 ‘해와 달’과 같은 천체의 파괴적 변화(욜 2:30-31)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는 그런 내용들을 인용함으로써 종말의 도래로 말미암은 심판의 속성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4]

예수님의 감람산 설교(마 24:29-31)는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그의 승천으로 완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즉위식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고 즉위식의 주인공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가운데 성령으로 이 땅 위에 그의 교회 공동체를 세우시고 통치하시면서 모든 족속 가운데 그의 택하신 자들을 불러 모으신다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이 본문 말씀(마 24:29-31)의 성취 기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의 탄생부터 완성까지의 전 역사이다.

5. 마태복음 26장 24절 연구

마태복음 26장 24절은 마태복음 24장 30절과 평행 관계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 26:64).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 끌려가 대제사장과 대화를 주고받으셨다(마 26:56-68; 막 14:53-65; 눅 22:66-71). 예수님은 그 대화를 통해서 그가 곧 그 즉위식의 주인공임을 밝히셨다(마 26:56-68 막 14:53-65 눅 22:66-71).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고 당신에게 명령하니 우리에게 말하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요?”(마26:63, 쉬운성경)라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 26:64).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됨으로써 마침내 다니엘이 보았던 그의 즉위식(단 7:13-15)이 마침내 완료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이 후”(마 26:64)는 예수님 자신의 “재림 이후”가 아니라 “승천 이후”다. 그리하여, 그는 메시아 왕국의 왕으로서 그의 백성 될 자들을 창조하고 모으신다.[5] 예수께서 대제사장에게 답하신 말씀(마 26:64)은 다니엘 7장 13절과 함께 시편 110편 1절(“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의 통합 인용으로 구성되었다. [복음기도신문]


[1] Criaig L. Blomberg, 『신약의 구약사용시리즈, 마태. 마가복음』, 244. (참고: R.T. France,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TNTC. (Grand Rapids: Eerdman. 1985) 343-344; N.T. Wright,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Minneapolis: Fortress. 1996) 360-365; 마26:36-56의 주석을 보라).

[2] 이필찬, 『백투예루살렘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3). 100.

[3] 앞의 책, 105.

[4] 앞의 책, 92.

[5] 김세윤, 『“그 ‘사람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서울: 엠마오, 1992),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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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 전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관련기사]

대체신학 이슈와 계시록 1:7의 예수님과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 연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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