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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칼럼] 실개천으로 변해버린 루디아 세례터에서 소망하는 것

그리스 이야기 (3)

부족한 사람인 필자가 몸 담고 있는 단체의 국제동원 책임을 맡은 적이 있다. 틈만 나면 동원가 그룹에 참석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 선교적 관점으로 성경 읽기는 지금도 나의 삶과 사역에 적용하고 있다.

흩어진 조각 그림을 맞추듯 사방에 널브러진 돌들과 땅속에서 찾아낸 유물들로, 과거의 흔적을 부분적으로나마 복원하고 발굴하는 빌립보 유적지에서, 한 사람의 생애를 반추한다는 것이 어리석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대 빌립보 지역 발굴 터에는 잠시 머물다간 바울 사도의 흔적이 깊은 끌로 다듬은 판화 속 그림 모양이 곳곳에 스며져 있다.

빌립보 교회, 바울의 전도로 강가에서 기도하던 루디아 일행과 점치던 여종,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을 지키던 옥지기가 회개하게 되고 결국은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태동부터 심상치 않은 일들을 겪으면서 깊은 밤 지하 감옥에서 부른 찬송의 영롱한 열매처럼 교회는 은혜 가운데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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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흔히들 바울 사도의 사역을 자비량 사역(tent maker)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는 제법 오랫동안 머문 고린도와 에베소 사역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본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쫓기듯이 새로운 사역지로 이동을 해야만 했다. 예나 지금이나 먼 여행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돈이 필요로 했고 그리고 소모되었다. 바울 사도 역시 많은 사역비가 필요로 했을 터인데 그 여비들은 다 어디에서 생긴 것인가?

빌립보 교회는 바울 사도께서 필요할 때마다(빌 4:15.18) 그리고 옥중에서 순교할 때까지 사역비와 위로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빌립보서는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이기도 하지만 선교사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간절함이 묻어 있는 바울 사도의 선교편지이기도 했다. 빌립보 교회의 이러한 전통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섬김의 정신은 전승되어 안디옥의 유명한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가 로마로 죽음의 여행을 할 때 이곳 빌립보에 들러 교우들의 뜨거운 사랑과 위로를 받았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Ἰγνάτιος Ἀντιοχείας)는 기독교의 속사도 6인 중 한 사람이며 순교자로서 안디옥의 주교이다. 그는 안디옥에서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도중에 일곱 편의 서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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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이렇게 은혜로웠던 빌립보 교회와 빌립보는 사도 시대에는 로마 최고의 변방이었고 전략적 요충지였으나 콘스탄틴 대제의 밀란 칙령 이후는 콘스탄티노플과 데살로니카를 이어주는 정거장 역할의 규모로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자주 발생하던 지진과 말라리아모기로부터 유인되는 전염병까지 발생해 이곳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렸다. 전략적 중요성도, 기능도 상실한 이 지역은 9세기에 들어서면서, 이곳으로부터 약 10킬로 떨어진 동쪽 산비탈에다 ‘네아(새) 빌립보’를 만들고 주민들은 이 새 동네로 집단 이주를 하게 된다.

그 뒤 약 1000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이 사라져 버린 구 빌립보는 도시의 폐허 위로 덮여가던 흙먼지와 무심한 세월의 풍상만큼이나,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땅으로 남겨져 있었다. 오늘날 설레는 가슴을 안고 수없이 찾아드는 성지 순례객들이 볼 수 있는 옛 빌립보 지역의 원형 극장 터와 마차가 다녔다는 에그나티아 도로와 넓은 시장터 등의 유적들은 100여 년 전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다시 역사와 세상 앞으로 나왔다. 유적지에서 그 옛날 빌립보 교회의 아름다운 정신을 말해주는 가시적인 것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성경을 통해 바라보는 빌립보는 지금도 살아서 움직이는 현장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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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지금은 실개천 정도로 변해 버린 루디아 세례터이지만 변함없이 흘러내리는 물의 흘러감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흙 속에 묻혔던 유적들이 발굴되고, 복원되는 것처럼 이 땅에 다시금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싶은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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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선교사 | 총신 신학대학원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GMS 선교사로 27년간 그리스에서 사역하고 있다.

[관련기사]
[김수길 칼럼] 빌립보, 옥타비안 그리고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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