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훈련 통해 처음으로 나의 실존을 직면…’나 곧 죄’

강승진 형제 (부산초읍교회) (2)

가정에서도 불행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결혼할 때 쯤 이미 십여년 동안 사역해온 아내가 수많은 경험과 자신의 방식으로 나를 가르치며 통제한다고 느꼈습니다. 참고 참던 나는 끝내 세간 살림을 뒤집어엎고 때려 부수며 거부했습니다.
일상에서 안식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마치 가뭄에 메말라 갈라져버린 땅처럼, 겨울에 물기가 없어 바스락 거리는 나뭇가지처럼 내 마음은 그렇게 말라갔습니다. 목이 말랐습니다. 별로 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내게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모른채 그냥 죽어갔습니다.
그때 주님이 나를 복음 앞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실제론 무슨 뜻인지도 몰라도 강의 내내 판단하고, 속으로 아는 척 하느라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지만 두 가지만 기억에 남았습니다. 십자가는 주님만이 죽은 것이 아니라 나도 함께 죽은 곳이라는 한 가지와 믿음으로 참여하려면 주님께서 내게 목숨 걸고 달려온 것처럼 나도 목숨 걸고 나아가야 한다는 또 한가지였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내세울 자존심도 없었기에 전심으로 십자가로 나아갔고, 저의 어설픈 믿음의 걸음을 주님께서는 의로 여겨주셔서 주님과 함께 죽는 실제적 경험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내 안에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메마른 마음속에 폭포수 같이 은혜의 강물이 흘러 넘쳤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토록 원했던 주님이 내 안에 사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너무너무 기뻐 여기저기서 내게 주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나누었습니다. 가정에서도 변화가 일어나 아내도 복음 앞에 서게 되었고 주님의 통치하심 가운데 가정이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역현장에서도 주님이 하셨고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24365도 처음 3개월은 매일 무너지며 죄책감에 눈물 흘렸지만 삶 전체를 기도24365에 맞추어 생활하니 금방 적응이 되었습니다. 하는 일 마다 승리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영남 복음선교관학교를 수료하며 잘되어가는 듯 싶었습니다. 영광을 내 것으로 취하는 모습을 발견하였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일단 내가 기쁨을 누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감사하면 되는거야. 이런 감정이 아예 안들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 이런 정체불명의 생각들로 머릿속에 가득 채워질 때쯤 주님은 6기 복음사관학교(GNA)로 부르셨습니다.
입소하여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사건건 맘속에 불만이 생겼고 음란한 시선으로 자매들의 몸을 흘끔거렸고, 또 전혀 실제 되지 못한 복음으로 남들을 흉악하게 난도질하는 정죄용 복음을 휘두른 나를 발견했습니다. 감정에 기반을 두고 하루에도 여러 번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며 구원의 확신마저 흔들렸습니다. 인정과 평판에 목마른 사람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아닌 줄 알았습니다. 기도할 때 어찌나 사람들을 의식하는지 스스로가 놀랄 지경 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드러난 현상들을 수없이 보여주시고 내 안에 숨겨진 원래 나의 죄 된 실체, 옛 사람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 시커멓고 더러운 나. 죄 그 자체.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죄를 짓는 것도 안지으려는 것도 나를 위해 철저하게 자아추구를 하는 자. 예배와 말씀과 기도 등으로 영성을 추구하는 것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고 하는 악독한 반역성을 가진 나. 영화 ‘해운대’에서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그 반대로 도망가는 것처럼. 나의 실존을 보니 왜 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운 말이지만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죄인인 것을 마음속 중심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계속된 GNA 생활 가운데 주님은 이 복음이 ‘은혜의 복음’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은혜. 자격 없는 자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신 선물. 내가 얼마나 이 복음과 무관한 자였고, 자격이 없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게 생명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치르셔야하는 대가는 아들이 죽으셔야 했다는 것. 예전엔 복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주님을 알아갈수록 아들 내어주신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지, 한편 그 십자가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시고 또 주님은 얼마나 당당하신지… 조금씩 알아갈 때 마다 놀랍기만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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