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서울선언 56-70항(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섹슈얼리티) 에 관한 논란이 대회 마치고난 이후에도 여전히 사그러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특이할 만한 점은, 진보성향의 기독교 진영과 보수성향의 기독교 진영이 각각 정반대의 이유로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측 진영의 비판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물론, 위 입장은 양측의 양극단에서 목소리(opinion)을 내는 이들을 의미한다. 그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담론을 생성하면, 중도 성향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견해를 선택하여 따라간다. 로잔서울선언의 문구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자세히 분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기에 소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오피니언 리더의 평가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 결국 대다수 사람들은 양분화된 진영의 전문가들의 입장을 선택하기 때문에, 먼저 양 진영의 입장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기독교 (극)진보진영은 늘 그랬듯이 동성애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을 강조해왔다. 그들은 퀴어축제 같은 동성애 행사에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기도를 해주며, 동성애도 혐오하면 안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번 로잔서울선언은 그들에게 매우 불편한 선언이다. 왜냐하면, 현재 서구교회의 흐름은 동성애를 인정하는 분위기로 완전히 대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서구 교회들은 교단의 헌법을 바꾸어 “동성애는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오히려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동성애자의 목사 안수를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한 세계 기독교의 흐름 가운데 서울로잔선언문은 그들에게 다 된밥에 재 뿌리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동성애를 죄악으로 선언하다니!”
한편, 기독교 (극)보수진영은 지난 10년 동안 반동성애 운동을 전개해왔다. 성을 매개로 다음세대와 가정, 사회질서를 뒤엎으려는 급진적 젠더주의에 대항하여 지속적으로 힘겨운 투쟁을 전개해 왔다. 동성애를 미화하는 문화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동성애를 인권화 하려는 국가 정책과 법에 빠르게 대응하여 지금까지 수십차례 시도되었던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막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현대판 아스팔트의 세례요한들이다. 이들의 외침을 통해 이제 한국교회는 동성애 문제의 실체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큰 문제가 생긴다. 그동안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 왔던 몇몇 지도자들이 로잔서울선언을 보며 이렇게 한탄했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인권으로 미화하다니!”
구체적으로, 복음법률가회와 성수협(모든성경의신적권위수호운동협회)의 성명문에서는 로잔서울선언이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세력에 악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성명서에는 정확히 로잔서울선언 몇항이 문제라고 언급되지는 않는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69항의 교회가 동성애를 느끼는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함을 회개한다는 문장이 걸림돌이 된 것 같다. 주요셉 목사(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자유인권실천국민행동 공동대표)의 입장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성애 크리스천에 대한 인권문제는 언급하면서, 동성애 확산을 반대해온 사역자들에 대한 존중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광희 목사(17개광역시도악법대응본부 사무총장)는 로잔서울선언 69항과 70항이 친동성애적이며 동성애를 죄라고 명백히 선언하지 않는다고까지 주장한다. 또한 3차 로잔대회 케이프타운(2010)의 문서와 비교하여 로잔서울선언이 오히려 동성애 젠더 이슈에 관해 성경적 기준에서 오히려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광희 목사는 아쉽게도 케이프타운 비공식적인 사전 의견 문서를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마이클 고케 등 인용한 사전문서(Adavnce Paper)는 공식 선언을 만들기 위해 제출된 한 개인의 의견일 뿐, 로잔은 공식입장으로 채택한 적이 없다. 참고로, 로잔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문서는 로잔선언(Lausanne Statement), 대위임령 현황(The State of Great commission), 그리고 Lausanne Occasional Paper(로잔 이후 발표되는 문서)가 있다.
그리고 복음법률가회/성수협과 주요셉 목사, 최광희 목사(17개광역시도악법대응본부) 세 분의 성명서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은 이것이다. 로잔서울선언 69항에서 “동성에게 끌리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사랑이 부족했음을 회개한다”는 문장은 친동성애적이며, 그러므로 동성애를 명백한 죄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인정한 선언이라고 비판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인정하지 않는 선언이라고 비판을 하는 매우 특이한 상황이다. 물론 모든 반동성애 보수진영의 입장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며, 당연히 로잔서울선언을 지지하고 칭찬하는 입장을 가진 분이 더 많다.
사실, 로잔서울선언의 내용을 정당하게 평가하려면 어떤 비교할 수 있는 유사한 신학 자료가 있어야 한다. 특히 인간의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비슷한 복음주의 신학 선언에 대해서 거의 없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국내 복음주의 신학회의 선언문이 이미 6년 전에 발표된 자료가 있었다. 간단히 그 내용을 로잔서울선언문과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이는 1000여 명의 회원과 45개의 대학과 신학전문대학원 대학교가 소속된 한국 최대의 신학관련 학술단체인 한국복음주의신학회가 지난 2017년에 [성, 가정, 사회]라는 주제로 열린 69차 정기논문발표회에서 결의한 선언문이다. 여러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신중한 검토를 통해,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선언문이 채택되었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복음주의신학회의 선언문을 기준으로 로잔서울선언문에서 연결되는 부분을 아래와 같이 비교해 보았다.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선언문(2017) |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로잔서울선언문 (2024) | 비교분석 |
1. (신앙고백과 원칙)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모든 문제의 최종 판단 기준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동성애와 동성결혼 문제에 대한 판단은 성경에 근거한다. | 67항. 동성 간의 성적 친밀감은 인류 문명만큼이나 오래된 현상으로, 신·구약 성경은 이러한 관행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성경에서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한 명확안 언급은 여섯 차례나 발견된다. 오늘날 사회와 교회에서 이 주제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성경에서 동성 간 성적 친밀감에 대한 모든 언급과 문맥상 그 의미를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창 19:1-3; 레 18:20; 20:13; 롬 1:24-27; 고전 6:9-11; 딤전 1:9-11). | 두 선언문 모두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
2. (성경적 판단) 성경은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창 2:18-25)에 어긋나는 것임을 분명히 선언한다(창 19:5, 7, 9; 롬 1:26-27; 딤전 1:9-10). 성경은 동성애를 타락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행위와 습관으로 규정하며,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관습에 따르지 말아야 한다. | 68항-A. 동성 간의 성관계에 대한 성경의 모든 언급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행위를 성에 대한 자신의 의도를 위반하고 창조주의 선한 설계를 왜곡하는 것으로 간주하므로 그것이 죄악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 두 선언문 모두 동성애를 창조질서를 위반한 죄악으로 규정한다. |
3. (현대 교회에 적용) 성경은 동성애를 엄격히 금하기 때문에 성경을 믿는 우리는 동성애를 인정할 수 없다.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동성애가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성령의 능력에 의존하여 이런 성향을 극복하여 참된 성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애써야 한다. 동성애를 실행하는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의 예배는 참여하지만 교회의 온전한 회원권은 가질 수 없으며, 성찬의 참여와 교회 직분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성령께 의존하여 그 동성애를 극복할 때는 이 모든 권한을 회복할 수 있다. | 69항. 우리는 교회 안팎에서 일부의 사람들이 동성에게 끌림을 경험하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또는 지배적인 끌림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기독교인은 유혹에 저항하고 욕망과 행위 모두에서 성적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성경의 주장은 동성에게 끌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성에 끌리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우리는 동성에게 끌리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인식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우리의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음을 회개한다. | 두 선언문 모두 동성애적 성향에 끌리는 사람은 성적 거룩함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하고 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동성애자도 교회 공동체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즉, 동성애에 끌리는 자를 기독교인으로 인정한다. 반면, 한복신 선언문은 동성애 기독교인에 대하여 예배는 허용하지만, 성찬 및 직분에 대한 회원권한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동성애 기독교인에 대한 목회적 지침이 보다 선명하다고 볼수 있다. |
4. (동성애적 성향의 변화 가능성)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근거하여 동성애적 성향을 극복할 수 있다. 동성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증언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성애자들은 성령께 의존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 68항-B.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무지로든 의식적으로든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한 자들도 고백하고 회개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므로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음을 확신시켜 준다. | 두 선언문 모두 하나님 신앙 안에서, 동성애는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규정한다. |
5. (동성애자의 교회 출석) 동성애자뿐 아니라 그 어떤 사람도 교회 예배에 참석해야만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 예배에 참여해야 하며, 선포되는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성령께서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 70항. 우리는 기독교 지도자들과 지역 교회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 동성에게 끌림을 경험하는 교인들이 존재함을 인지하며, 목회적 돌봄과 건강한 사랑과 우정의 공동체를 발전시킴으로써 제자 훈련을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 | 두 선언문 모두, 동성애자는 교회 예배 말씀, 목회적 돌봄, 공동체를 통해 변화되기를 요청하고 있다. |
6. (세상 속의 동성애자들) 세상에는 동성애자들이 항상 존재해 왔다. 우리는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로 동성애자가 된 자들에 대하여 진심어린 이해와 사랑으로 대하며, 그들이 동성애와 동성결혼의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 69항. 우리는 교회 안팎에서 일부의 사람들이 동성에게 끌림을 경험하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또는 지배적인 끌림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기독교인은 유혹에 저항하고 욕망과 행위 모두에서 성적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성경의 주장은 동성에게 끌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성에 끌리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우리는 동성에게 끌리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인식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우리의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음을 회개한다. | 두 선언문 모두,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성애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이 있기에 이해와 사랑으로 접근해야 함을 요청한다.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한복신 선언문은 동성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켜줘야 한다는 입장이며, 로잔선언은 동성애 기독교인을 잘 돌보지 못했음을 먼저 돌아보자는 입장이다. |
7. (인권 운동으로서 동성애 확산 운동에 대하여) 동성애를 용인하는 것이 동성애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동성애자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지만 동성애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거부하시며 특히 동성애의 행위는 행위자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해야 한다. | 57항. 우리는 섹슈얼리티(sexuality, 성적 지향성)에 대한 왜곡을 탄식한다. 우리는 개인이 우리의 창조성과 무관하게 젠더를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을 거부한다. 생물학적 성(sex)과 성별(gender)은 구별될 수 있지만, 분리할 수 없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인간 창조의 고유한 사실로서, 문화권에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때 표현하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성별 유동성(gender fluidity, 상황과 경험에 따라 성 정체성이나 성별 표현이 유동적이라는 주장)이라는 개념도 거부한다. | 한복신 선언문 7번은 단순히 동성애자의 개인일탈 문제를 넘어 현대사회의 동성애 인권화 운동을 반대하며, 오히려 동성애 행위를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이유로 반대할 것을 촉구한다. 반면, 로잔선언 57항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왜곡의 문제에 관해 언급한다. 적극적 의미의 동성애자를 교정한다는 개념보다 소극적 의미로 탄식할 뿐이라는 완곡한 단어가 사용되었다. |
8. (사랑의 동기) 동성애자들 역시도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돌봄의 대상이지만 동성애를 인간애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며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은 잘못된 습관과 행동으로부터 그들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 61항. 우리는 동성 파트너십을 성경적으로 유효한 결혼으로 정의하려는 교회 내 모든 시도를 애통해한다. 우리는 일부 기독교 교단과 지역 교회가 문화의 요구에 굴복하여 그러한 관계를 결혼으로 성별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슬퍼한다. 70항. 우리는 기독교 지도자들과 지역 교회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 동성에게 끌림을 경험하는 교인들이 존재함을 인지하며, 목회적 돌봄과 건강한 사랑과 우정의 공동체를 발전시킴으로써 제자 훈련을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 | 두 선언 모두, 동성애를 정상적 인간관계로 인정하는 것은 반대한다. 그러나, 한복신 선언에서는 명확히 “동성애는 잘못”이라는 단어가 쓰였고, 로잔선언은 “애통, 슬픔” 같이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정죄하는 표현을 회피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두 선언 모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동성애를 극복하고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함을 촉구한다. |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관한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선언문(2017)과 로잔서울선언(2024)의 비교분석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두 선언문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성애는 성경말씀의 기준에 따라 창조질서를 위반한 죄악이다.
둘째, 동성애 성향이 있는 기독교인 자체를 인정한다. 그들에게 성화를 위해 예배참여, 목회적 돌봄, 그리고 제자양육 훈련 등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인정한다.
셋째, 교회는 동성애자들을 진심의 이해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두 선언문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복음주의신학회는 동성애 기독교인에게 교회의 성찬과 직분 등의 회원권을 제한한다고 하는 구체적인 목회 지침이 기술된 반면, 로잔은 동성애 기독교인에 대해 어떤 제한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는다.
둘째, 한국복음주의신학회와 로잔은 동성애자를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전자는 동성애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확한 반대와 교정의 표현이 쓰여졌고, 후자는 직접적으로 정죄하는 표현을 회피하여, 간접적이고 자기 고백적 표현으로 보다 완곡하게 기술되었다.
셋째, 그러므로, 한국복음주의신학회는 교회가 동성애자에 관해 다소 공격적 입장으로 그들이 먼저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로잔선언은 교회가 동성애자에 대해 다소 방어적 입장을 취하며, 교회가 먼저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정리하면, 로잔서울선언의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항목은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관한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선언문과 비교해 볼때,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목회적 돌봄에 관한 입장은 거의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며, 다만 표현 방식에 있어서 교회가 먼저 동성애자를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 동성애자가 먼저 교회를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의 차이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다시 처음의 진영 논리로 돌아와서, 일부 반동성애 보수진영의 지도자들이 로잔서울선언이 동성애를 ‘죄’로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사랑의 방향성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는 말한다. “당신은 동성애를 추구하는 죄인입니다. 당신이 성화되기 위해서 당신은 분명히 이렇게 해야 됩니다!” 한편 로잔서울선언은 “당신은 동성애를 추구하는 죄인입니다. 당신이 성화되기 위해서 우리(교회)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사실상 이 둘의 목적지는 같으나 접근방식만 다른 것이다. 일부 반동성애 보수진영의 로잔서울선언에 관한 비판적 입장은 동성애자를 돌보는 접근방식(caring approach)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또 생각해볼 점은,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선언문에도 로잔서울선언과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것이다. 이 선언문이 발표된 2017년 당시의 상황은 국회에서 4년 동안이나 중단되었던 ‘차별금지법’ 입법 논의를 재개한 시점이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돌아보면 정말 아찔하다. 2013년 2월, 민주통합당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이 각각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과 “차별금지법”을 발의하여 국회 전체회의에 상정된 것이다. 그러나 2주간의 짧은 입법예고 기간 동안 기독교계의 신속한 대응으로 10만 명 이상의 반대의견이 등록되어, 이를 의식하여 결국 입법을 철회하게 되었다. 이렇게 차별금지법 이슈가 끝난 줄 알고 긴장을 풀고 있다가, 4년 만에 다시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입법 논의가 시작되었기에, 한국복음주의신학회에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신학적 선언문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가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여 민감한 주제의 선언문을 채택한 것은, 그 자체로 시대에 필요한 ‘선지자적’ 목소리를 훌륭하게 감당한 것으로 본다. 당연히 그 누구도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선언문에 대하여 ‘차별금지법’에 관한 언급이 없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다. ‘차별금지법’ 입법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한국복음주의신학회의 선언문의 역할은 ‘차별금지법’을 강력히 반대하는 기독교계의 분명한 신앙고백을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차별금지법’ 이라는 법률용어는 국회의원의 입법의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지난 21대 국회 (2020-2024)만 하더라도, 성혁명적 요소를 담고 있는 ‘차별금지법’ 은 ‘평등법안, 군형법 개정안,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발의된 바 있다. 더욱이 기독교계의 절대적인 반대를 표명해야 하는 반기독교적 요소를 포함하는 법안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가족해체와 관련된 법안은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모자보건법 개정안, 동성커플의 공동입양 허용하는 민법 개정안’ 등이 있다. 낙태 등 생명을 인간의 결정으로 파괴할 수 있는 법도 ‘모자보건법 개정안,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보장 기본법안’ 등이 있다. 표현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반기독교적 법안도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의 이름으로 기존에 있던 법률의 세칙을 개정함으로 실질적인 차별금지법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친권을 침해할 수 있는 법안으로, ‘교원지위법 개정안,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특별법안, 아동기본법안,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등의 이름으로 실제로 입법이 시도되었다. 대부분 법률전문가가 아닌 이상 법안의 이름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반기독교적 요소가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자평 법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1대 국회에만 총 70개의 반기독교적 악법이 입법 시도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법안의 이름은 수십 가지로 변형되어 발의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시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되는 신학문서에 법의 명칭이 들어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추후에 전혀 다른 법률 이름으로 반기독교적 악법 제정을 시도할 때, 오히려 용도 폐기된 법의 명칭을 포함하는 신학 문서는 그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러므로, 일부 반동성애 진영 인사들이 로잔서울선언에 ‘차별금지법’ 조항을 넣지 않았다고 문제를 삼는 것은 지나친 기우라고 볼 수 있다.
2017년 한국복음주의신학회의가 ‘차별금지법 반대’ 같은 법률용어를 넣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신학 선언문의 한계를 지킨 것이다. 로잔서울선언문도 동일한 선을 지킨 것이고 이러한 선언문을 토대로 각 영역에서 반대운동을 하면 된다.
물론, 이 시대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직면한 성혁명 젠더사상의 도전 앞에 우리 모두가 각자 받은 소명대로 헌신해야 한다. 비록 각자의 사역 방식과 부르심의 영역이 다를지라도, 어떤 한쪽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태도는 자칫 주님의 몸된 교회의 연합을 깨뜨리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싸우는 반동성애 흐름과의 싸움은 전 세계적인 양상이며, 이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만 하는 사안이다. 누구도 혼자서 이 거대한 글로벌 영적전쟁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1027 한국교회 연합예배 역시 모두가 다함께 힘을 모아야만 한다. 내가 싸우는 방식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거룩한 연합은 이루어 질 수 없고 그로 인해 어둠의 역사는 더욱 기승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교회의 영적리더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번 제4차 로잔서울대회는 200개국의 5천명의 복음주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인 역사적 행사였다. 한국에서부터 전 세계를 향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로잔서울선언은 한국만을 위한 신학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전 세계 교회를 향한 중보기도적 선언이다. 세계교회의 현실은 한국교회가 느끼는 현실 보다 10배 100배는 더 열악하다. 우리는 세계교회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겸손히 헌신하며 이제 그들을 위한 영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줄 믿는다.
끝으로, 동성애를 죄로 바라보는 본질적인 인식이 같다면, 그외의 부수적인 차이는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유의 은사가 잘 발휘되도록 서로 간에 중보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함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아름다운 동역을 이루어 가길 소망해 본다. 우리는 주안에 한 부르심을 받은 동역자 이니까말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교회의 영적리더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번 제4차 로잔서울대회는 200개국의 5천명의 복음주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인 역사적 행사였다. 전 세계를 비추는 놀라운 성령의 불빛이 밝혀 진 것이다. 로잔서울선언은 한국만을 위한 신학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전세계 교회를 향한 중보기도적 선언이다. 세계교회의 현실은 한국교회가 느끼는 현실 보다 10배 100배는 더 열악하다. 우리는 세계교회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겸손히 헌신하며 이제 그들을 위한 영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줄 믿는다. [복음기도신문]
주1) 장선범, 그리스도를 위해 투표하라, (행크Lab 2024), 63.
장선범 목사 | 행크(HANK)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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