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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친 동성애적 성경해석에 대한 이해와 답변 (2): 롬1:24-27과 틀린 “착취 논거”

Pixabay의 nancydowd

친-동성애적 주장 : 롬 1:24-27에 있는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금지는 단지 착취적이고 쾌락주의적인 형태의 동성애 즉 성노예, 창녀, 미성년자와의 성관계에만 적용된다.

증거가 보여주는 바 : 롬 1:24-27의 문자 그대로 그리고 역사적인 문맥에서 발췌한 증거는 동성애에 대한 성경 금지-성인 근친상간에 대한 금지와 같이-절대적이다. 바울은 모든 형태의 동성애를 동의와 참여에 관계 없이 금지하고 있다. 다섯 가지의 증거가 이 점을 명확하게 한다.

첫째, 롬 1:24-27에서 바울은 동성애가 창세기에서 한 쌍의 성별로써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다. 롬1:23-27에서 바울은 의도적으로 창세기 1:26,27을 되풀이하여 두 본문 사이에 8가지의 대응점-똑같이 셋으로 갈라진 구조로-을 만든다:사람/우상(image, 창1:26에서는 형상-역주)/모양, 새/짐승/기어다니는 동물, 남자/여자. 바울은 우선 먼저 동성애가 창조주가 창조 때 정하신 성관계에서 남-녀의 필요조건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했지 동성애가 얼마나 그의 문화적 환경에서 잘 혹은 잘못 행해지는지 때문이 아니었다.

둘째, 바울이 롬1:18-27에서 사용하는 자연의 섭리 논점은 동성애가 착취적이든 비착취적이든 그 구별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동성애가 “순리에 거스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동성애가 창조 세계에 남자와 여자로, 두 명의 남자나 두 명의 여자가 아닌, 해부적, 생리적, 심리적 측면에서 각각 서로의 성적 “상대방” 또는 “한쪽”(창2:18,20의 언어를 사용하자면)인, 물리적 구조로 명백하게 주어진 단서를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우상 숭배의 수직적 사악함(롬1:19-23)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동성 성관계의 수평적 사악함에도 똑같이 진실이다:남-녀의 상호보완성은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1:19,20)

일부는 고대 시대에는 상호보완성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전학자 Thomas K. Hubbard가 그의 권위 있는 문헌 사료 그리스와 로마의 동성애 부록에 기록하기를:”이성애 입장의 기초는[서기 초반 수 세기 그리스와 로마 윤리학자들 사이에서] 성은 서로 상대방에 어울리고 꼭 맞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특징적인 스토아 학파의 호소였다.”6

셋째바울은 1:27에서 특히 서로 상응하는 애욕을 가지는 남자 동성애 관계를 비난한다. 바울은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라고 언급했다. 이것은 바울이 강압적인 관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어떤 가정도 배제한다.

넷째, 롬1:26에서 여성 동성애에 대한 바울의 비판은 더욱이 동성애에 대한 그의 비판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해준다. 왜냐하면 고대의 여성 동성애는 노예, 창녀, 혹은 아이들에 대한  착취로 주로 알려지거나 비판 받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여성 동성애를 비난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음 증거들을 보면: (1)1:26(“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과 1:27(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의 언어적 대응;(2) 고대 여성 동성 성행위는 가장 흔하게 “자연과 반대된”다고 불리는 형태의 여성 성행위였으며 남자 동성 성행위와 짝을 이루었다;(3)고대 여성 동성애에 대해 거의 전세계 남자들이 반대했다는 사실, 심지어 동성애에 가담하는 남자들까지도;(4)여성 동성 성행위가 교부시대 롬1:26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이었다는 사실이 있다.

다섯째그리스로마 사람들이 헌신적인 동성 연합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는 잘못된 주장에 반해사랑하는 동성 관계남자끼리와 여자끼리의 반공식적인 결혼 포함해서 개념과 존재에 대한 증거가 많다. 더욱이 우리는 사랑하는 동성 관계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반대하면서도 그 존재를 인정한 그리스-로마 윤리학자들을 알고 있다.

플라톤의 향연(B.C. 380)에는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남자-남자 관계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적혀있다:”그들[즉, 두 남자]은 평생 서로와 함께 했다…함께 결합하고 하나의 존재로 융합하기를 …그리고 두 사람에서 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면서”(192E). 그의 언급은 연회에서 파이드루스와 파우사니아스로부터 드러난 동성간 이상 성욕을 긍정적인 체 꾸미고 있다.

파이드루스(에릭시마커스의 “애인”, 역시 연회에 있었다)도 파우사니아스도-비극시인 아가톤의 애인이었던(당시 31세였던 아가톤이 18세일 때부터 관계가 시작되었다)-동성 쾌락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몸보다 영혼이나 마음이 끌리는 것과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관계를 유도할 것을 강조했다. 파우사니아스는 특히, “사랑은 그 자체로 옳지도 틀리지도 않”지만 오직 “옳게 행해지”고 “옳은 이유를 위할” 때만 옳다고 강조했다;올바른 사랑을 하는 사람은 “평생 모든 삶을 함께할 것이며 마치 하나의 존재로 융합한 것처럼 모든 삶을 공통점으로 공유할 거라는 기대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181D, 183E). 따라서 아리스토파네스가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결혼과 아이의 출산에 본성적으로(phusei) 마음이 기우는 게 아니라, 관습(nomos)이나 법에 의해 그렇게 하도록 강요받으며” 함께하는 두 남자는 “최후까지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지내는” 결과를 낳는다(192A-B)고 언급했을 때 파우사니아스의 스스로에 대한 관점을 반영한 것이 명백하다.

플루타르크의 사랑에 관한 대화(A.D. 1세기 후반-2세기 초)에서 프로토게네스는 남자-남자의 사랑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했는데, 더 쾌락적이어서가 아니라, “최종적인 결론으로 기쁨의 열매(hēdonēn)를 거두는 것” 대신에, “끝까지 우정과 미덕의 목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했다(750D;4). 다프나에우스는, 남-녀간 사랑의 우월함을 보호하며, “자연과 반대되는 남자간의 성관계가 연인의 다정함[또는: 연애의 친절]을 폐하지도, 파괴하지도 않기 때문에 동성 관계가 꼭 착취적인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다(751C;5). 그러나 그는 선언하기를, “남자(와의 연결)로부터 일어나는 (성관계)”가 “자진해서” 행해질 때조차도 그것은 “수치스럽게”(aschēmōn) 남는다. 남자들은 “부드러움(malakia)과 연약함(thēlutēs)으로 그들 스스로를 포기하며, 플라톤에 따르면, ‘네-발 짐승의 관습에 끼워졌’고 마치 아이를 낳기 위한 것처럼 씨가 뿌려졌다, 본성에 거슬러”(para phusin; 751D-E;5).

로마의 경구시인 마르티알리스(A.D. 40-104;1.24;12.42)와 풍자가 유베날리스(A.D. 2세기 초기;풍자 2)는 조롱하듯이 스스로를 다른 남자의 “신부”처럼 전념하는 여자 같은 남자를 언급했다. 예를 들면, “그 집안 배경과 부로 유명한 남자” 그라쿠스가 평민 코넷 연주자의 “신부”가 되어 반공식 문서들에 서명했다(풍자 2.119,125,129). 사모사타의 루키아노스(A.D. 2세기 중반)는 스스로 결혼한 걸로 여기는 두 명의 부자 여인, 레스보스 섬의 남자다운 메길라와 그녀의 “아내” 코린트인 데모나사에 대해 말했다(고급 매춘부의 대화 5). 알렉산드리아의 점성가 프톨레마이오스(A.D. 2세기)는 특정한 별자리 하에서 태어난 “본성을 거스르는 성관계를 욕망하”고 여자와의 관계에서 적극적인 성 역할을 맡아 때로 그들을 “법적 아내”로 부르는 남자다운 여자에 대해 기록했다(테트라비블로스 3.14; §171-72).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망은 진저리내며 “본성에 거슬러… 여자와 결혼하는… 여자”를 언급했다(Paidagōgos 3.3.21.3). 분명히 결혼은 헌신을 반드시 수반한다;그러나 헌신은 관계의 비정상적이고 죄악된 특성을 바꾸지 않는다.

일부 그리스와 로마 윤리학자들은 본성적 논거를 바탕으로 모든 동성애 행위를 규탄했다. “1세기 문학 C.E.는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양극화되어 가는 것의 증거인데 주요 로마 시민들에 의해 자행되어 공개적으로 드러낸 색정 탐닉과 노골적인 인정에서부터 모든 동성애 행위에 대한 가차없는 도덕적 정죄까지 이르렀다.”7 심지어 “이교도” 세계의 일부에서도 모든 형태의 동성애에 대한 완전한 반대가 자라나기 시작했다면, 바울이 헌신적인 동성애에서 예외를 둘 가능성이 무엇인가?

바울은 헌신적인 류까지 포함하여 명확하게 동성애를 반대하는 유대 경전과 유대 환경 중에서 사역했다. 예를 들어,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그의 로마 독자들에게 분명히 언급했다:”[모세의] 율법은 순리에 따른 여자와의 성행위만을 인정했다… 그러나 율법은 남자와 남자의 성행위는 혐오했다”(아피온 반박문2.199). 일부 랍비 문헌은 남자와 남자의 결혼을 금한다;8 이집트 관습을 언급하는 문헌도 여자와 여자의 결혼 역시 금한다.(Sifra on Leviticus 18:3)

동성애 학자인 루이스 크롬턴조차도 방대한 그의 저작 동성애와 문명에서 이 점을 인정한 것이 놀랍지 않다:”선의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바울의 말은 헌신된 관계 속에 있는 ‘성실한’ 동성애자를 향한 것이 아니다… 억지로 갖다 붙이고 사실에 어긋난 것처럼 보인다. 바울이나 당시의 다른 어떤 유대 저자도, 어떤 상황에서든 동성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수용도 암시한 곳이 없다. 동성애가 서로의 헌신에 의해 속량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바울이나 다른 유대인 혹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완전히 이질적이었을 것이다.”9

또 주목할만한 것은 동성애 경향이나 적어도 일부 동성애 발생에 대한 선천적 영향에 대해 고대 세계의 이해가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유사성이 없었다는 주장의 거짓이다. 고전학자 Thomas K. Hubbard가 기록했듯이:”그 시대[즉, 초기 로마제국 시대] 동성애는 단순히 개인적 즐거움의 또 다른 활동은 아닌지 오래였을 것이고 이성애에 배타적이고 대조를 이루며, 개인의 정체성의 필수적이고 주요한 항목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10

고대 여성 동성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책을 쓴 여성 동성애자 신약 학자 Bernadette Brooten 역시 이 점을 인정했다. 그녀는 “바울은 동성에 끌리는 몇몇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태어났다고 ‘믿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비정상적이고 수치스럽다고 여겨 정죄했다. … 나는 바울이 모든 형태의 동성애를 하나님을 외면한 사람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정죄했다고 본다.”고 진술했다.11

원문: http://enrichmentjournal.ag.org/201103/201103_092_hom_understnd.cfm

각주:
6. Thomas K. Hubbard, Homosexuality in Greece and Rome: A Sourcebook of Basic Document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3), 444.
7. Hubbard, 383 (emphasis added).
8. Cf. Sifra on Leviticus 18:3, Genesis Rabbah 26.6; Leviticus Rabbah 23.9; b. Hullin 92b.
9. Louis Crompton, Homosexuality and Civilization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114.
10. Hubbard, 386.
11. Love Between Women: Early Christian Responses to Female Homoeroticism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244.

로버트 A. J. 가그논(Robert A. J. Gagnon)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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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친-동성애적 성경해석에 대한 이해와 답변 (1):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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