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는 이제 너무나 보편화된 사실이 되어 버렸다. 미국의 어떤 주는 이미 교회에서 동성에 대한 비판을 하거나 동성의 결혼을 거부할 때 법적인 제재를 받는 것을 신문 기사로 자주 대하게 된다. 어떤 교회들은 –이들을 정말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미 동성애를 인정한다고 하는 교회들도 생겨나고 있다.
피츠버거 신학교의 교수이신 ‘로버트 A. J. 가그논(Robert A. J. Gagnon)’의 친동성애적 해석가들이 주장하는 성경의 주장을 학술적으로 답변한 한편의 글을 오늘부터 4회에 걸쳐서 소개한다.
성경을 친-동성애적으로 읽는 것이 얼마나 성경 본문을 오해하는 것인지에 대해 짧은 글을 쓰는 것은 이미 쉽지 않다. 그 이유가 친-동성애적 해석이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해져 왔고 그 해석에 반대되는 증거 사실도 광범위해졌기 때문은 아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친-동성애적 해석가들이 성경에 대해 자주 하는 4가지 주장을 제시한다. 필자는 그 후에 이러한 주장에 대한 대답의 주요 윤곽을 짧게 약술하겠다. 제한된 공간으로 인해 이러한 4가지 주장, 구약 본문의 친-동성애적 해석에 대한 분석, 또한 구체적인 친-동성애적 저술들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깊이 다룰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서는 필자의 저서, 성경과 동성애(The Bible and Homosexual Practice)와 필자가 참고문헌 목록을 갱신하는 웹사이트(www.robgagnon.net)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수님
친–동성애적 주장 : 예수님은 성관계에서 남자–여자 요건을 유지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증거가 보여주는 바 : 예수님은 성관계에서 남자–여자 요건이 다른 성적 표준들의 기초가 되는 성경의 성 윤리의 기본적이고, 핵심 가치라고 믿었다, 성적 연합에서의 “둘”을 포함해서.
예수님은 부부의 “둘”을 단정했는데-성적 연합의 사람 수를 둘로 제한한 것이다. 함께(일부다처가 아니라) 또는 연속적으로(이혼이나 재혼의 순환이 아닌)-그 사실은 다음 본문에서 알 수 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참고 창1:27]. 그러므로 사람이…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참고 창2:24]”(마19:4,5; 3~9절의 문맥을 보라; 막10:6~8) 하나님이 둘(오직 둘)을 성적 결합에서 상호보완하는 기본적인 성별로 설계하셨다는 사실이 예수님의 엄격한 일부일처혼의 토대였다. 두 명의 반쪽 성의 연합이 통합되고 자기 충족적인 온전한 성을 이루어 세 번째 상대가 필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게 만든다.
우리는 이것이 예수님의 논리였다는 것을 안다. 2명 이상의 성적 결합에 대한 예수님의 반대를 공유했던 1세기 유일한 다른 유대인들은 쿰란 에세네(Qumran Essene)파였고, 그들 역시 “일생에 두 명의 아내를 두는 것”을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창조의 기초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라는 것과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창7:9]”였다. (다메섹 계약 4.20~5.1)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암수 둘씩”이라는 표현이 가지는 호소력은 상당하다. 그 이유는 창세기 1:27과 창세기 5:2의 반복을 제외하고, 방주 이야기는 구약성경에서 정확히 히브리어 zākār ûnĕqēvâ(“남자와 여자”)라는 표현이 나오는 유일한 곳이다. 이것은 자연적인 한 쌍의 부부에 대한 강조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예수님께는, 쿰란 에세네파 사람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성별이 “두” 가지인 것은 성적 결합이 “둘”인 것의 기반이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동성애 거부에 대한 증거로 다른 많은 논점을 인용할 수 있는데, 그중에는 예수님께서 성경으로 받아들인 구약에서 강력하게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사실이 있다; 헤롯 안디파스가 세례 요한을 레위기의 성적인 문제에 대한 율법(근친상간 금지, 심지어 어른끼리 합의된 관계일지라도, 레18:16; 20:21)을 위반한 것에 대해 비판한 것 때문에 참수했고; 예수님이 활동했던 초기 유대교의 전부가 동성애가 기본적인 성 윤리에 대한 엄청난 위반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장 잘 알았던 초대 교회는 성적 연합에 있어서 남-녀 필요조건이 필수라는 믿음에서 하나되었다(롬 1:21~32; 엡 5:22~33).
동성애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이 지지나 혹은 심지어 중립적이라는 가정은 예수님의 직접적인 문화 환경에 대한 역사적 유사성이 없다. 이것은 가장 최악의 수정주의 역사다.
더욱이, 율법의 성적 순결 요구를 완화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현존하지 않는 반면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명령을 더 강화하고(마음의 간음; 이혼과 재혼) 성적으로 부정한 사람들은 지옥에 던져질 수 있다(마5:27~32)고 경고하심으로써, 율법에 있는 성적 명령의 아주 작은 빠져나갈 구멍도 닫으신 말씀들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구약 율법에서 금지한 음식을 먹는 것이 몸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금하신 것들을 행하려는 욕망의 만족이 몸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논쟁하셨다(막 7:14~23). 예수님은 porneiai(성적으로 부도덕한 행동), moicheiai(간음), aselgeia(무법, 특히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 자기절제가 없음; 21~22절)을 포함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초기 유대교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동(porneia)과 무법(aselgeia)은 항상 포함했고, 목록 거의 맨 위에는 심지어 이방인에게서도(“노아의 법”) 동성애에 대한 완전한 금지를 포함했다. 예수님의 성 윤리에 대한 가르침의 방향은 더 많은 허용이 아니라 더 작은 빠져나갈 구멍들을 향했다.
예수님에 관련된 친-동성애 주장은 음행 중에 잡힌 여자(요 7:53~8:11)같이 성적 죄를 범한 죄인들에게까지 예수님의 사역이 뻗쳤다는 것과 “태로부터 된 고자”(마 19:12)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기반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전혀 그런 류가 아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회개를 이끌어냄을 목적으로 하여 그들이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는 데 이를 수 있도록 하셨다.
예수님은 음행 중에 잡힌 여자에게 경고하셨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 예수님은 요 5:14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 더 심한 것은 회개하지 않은 삶을 통해 영생을 잃는 것이다.(참고 요 5:24~29) 바리새인들은 성적인 죄인들과 세리(물질적 이익을 위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사람들)들이 지옥에 간다고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던 반면에, 예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오라고 부르는 그의 사역의 초점으로 맞출 만큼 마음을 쓰셨다.
마가는 예수님의 말씀의 적절한 요약을 전해 준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교회가 동성애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부르고 애정을 기울여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구하려는 소망과 함께라면 교회는 그 주인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고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성행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금지된 성행위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예수님은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복음을 선포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자유를 들이기 위해 결혼과 그에 따른 성관계에서 손을 뗀 그리스도인들)와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태어날 때부터 신체적 기형에 의한 사람들)과 “사람이 만든 고자”(=강제로 거세한 사람)를 비교하신 것이다. 이 비유는 고자들이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만 성립한다.(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예로 외경 시락 20:4; 30:20)
마19:10~12에 있는 고자에 대한 언급의 전체 문맥은 상호보완적인 결합으로써의 “두” 성이, “남자와 여자”가, 두 사람 이상을 포함하는 성관계를 거부하는 기반이라는 예수님의 논점이다. 예수님이 성관계에서의 남-녀 필요조건의 기본적 성질을 확립한 직후에 이러한 요구의 중요성을 무시했다고 보기 어렵다. [복음기도신문]
로버트 A. J. 가그논(Robert A. J. Gagnon)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