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과 나의 관계의 가장 근본이 되는 고백이 있다면 어떤 고백일까요?
힌트는, 로마서 10:9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OO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정답은 예수는 주!입니다. 모든 구원받은 자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의 고백이고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 나는 주님의 OO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면 그럼 나는 주의? 뭘까요?
성경은 믿는 자들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묘사합니다.
먼저, 그리스도인..,, 한자어로 음역하면, 기독교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지기 시작한건 사도행전 2장에서 교회가 태동되고 나서 10여 년이 지나고 나서입니다. 행 11:25절에 그 말씀이 있습니다. 원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던 호칭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수치스럽게 사형당한 유대인 목수를 따르던 자들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메시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인.
하지만, 그 호칭은 이제는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호칭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기독교인. 영어로 크리스찬!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신약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 딱 한 번 더 나오고 베드로전서 4:16에서 한 번 더 사용됩니다. 반면에 성경은 많은 다른 표현들로 믿는자들을 묘사합니다. 천국 시민, 세상의 빛, 상속자들, 그리스도의 몸, 양, 그리스도의 사신, 예수님의 친구, 군사, 경주하는 선수,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 제자… 등등
이런 표현들은 우리의 정체성과 구원받은 신자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각도로 묘사하는 표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보다 신약성경에서 압도적인 빈도수로 나와 예수님의 관계를 표현하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다른 표현보다 단연코 앞서는 헬라어 원어! 그 단어는 바로 δοῦλος[Doulos, 둘로스]
이 둘로스라는 헬라어 단어는 신약에서 총 124번이나 사용되는데,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묘사할 때 40여 번 사용되고, 구원받은 우리의 삶을 묘사할 때 적어도 30번 이상 사용됐습니다. 다른 표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정체성를 묘사하는 단업니다.
이 둘로스의 뜻은? 애매모호하지 않습니다. 이 헬라어 단어의 대해서 연구한 어떤 책들을, 사전들 다 뒤져봐도 이 단어의 뜻은 하나입니다. 분명하고 헷갈리지 않는 명확한 하나의 의미입니다.
그 의미는 바로.. 노예입니다. 노예!
표준국어대사전은 노예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 남의 소유물로 되어 부림을 당하는 사람. 모든 권리와 생산 수단을 빼앗기고, 물건처럼 사고팔리던 노예제 사회의 피지배 계급이다.
-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를 빼앗겨 자기 의사나 행동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에게 사역(使役)되는 사람.
성경이 기록될 당시 다른 모든 그리스 문학에서도 둘로스는 언제나 노예였습니다. 로마가 지배하고 있던 1세기에 정말 많은 노예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애매모호하거나 긴가민가? 없습니다. 둘로스라고 하면 노예입니다.
δοῦλος 어떻게 번역됐는가?
이 헬라어 단어 둘로스, 어떻게 번역됐을까요?
일단 한글 성경부터 보면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성경인 개역개정, 새번역부터 현대인의성경, 쉬운성경, 개역한글 전부다 다 이 둘로스를 뭐라고 번역했을까요? 종!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종’이라는 번역 완전히 나쁜 번역은 아닙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다시 보면 종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 예전에, 남의 집에 딸려 천한 일을 하던 사람.
- 남에게 얽매이어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까 노예의 정의보다는 조금 순화적인 표현입니다.
“노예” –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를 빼앗겨 자기 의사나 행동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에게 사역(使役)되는 사람.
왜냐하면 이 종이라는 단어는 노예와 공통분모가 어느 정도 있는게 사실이지만 사실은 종이라는 단어는 하인이나 머슴, 이런 단어들과 더 가까운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노예와 하인/머슴의 차이가 뭘까요? 하인이나 머슴은 ‘남의 집에 딸려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인이나 머슴은 품삯을 받습니다. 노동의 대가를 받습니다. 돈으로 받기도 하고 숙식제공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돈을 주고 고용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노예는 어떻습니까? 노예는 고용되지 않습니다. 노예는 소유물입니다. 하인은 돈을 받지만 노예에게는 아무 대가가 없습니다. 하인은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고용인을 찾거나 할 수 있지만 노예는 모든 권리가 그 노예를 소유한 주인에게 있습니다. 하인은 자유가 있지만 노예는 자유가 없어요. 노예의 생명도 주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노예는 그냥 소유자의 물건과 같았습니다.
종이라는 단어는 하인의 의미와 더 가까운 단어입니다. 둘로스에 대한 더 확실한 노예입니다. 더 분명한 단어가 있는데 굳이 하인의 개념이 들어간 종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있을까요?
영어 성경으로 가면 더 놀랍습니다. 노예라는 단어의 영어단어는 두말할 여지 없이 ‘slave’입니다. 하지만 NIV, ESV, NASB 대부분 우리가 읽는 영어 성경은 둘로스를 slave가 아니라 ‘servant’로 번역합니다. ‘servant’는 고용된 사람입니다. 일꾼, 하인, 집사, 집에 딸린 머슴.
헬라어에는 servant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가 최소 6개나 있습니다. 그런데 둘로스는 언제나 노예입니다. 둘로스는 고용된 하인, 집사, 일꾼이 아닙니다. 근데 전부 servant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둘로스를 Slave라고 번역할 때가 있기는 합니다. 이 둘로스가 어떤 개념과 같이 사용될 때, 예를 들면 ‘죄의 노예’라는 문구를 번역할 때는 slave of sin… 둘로스를 slave로 번역합니다. 그런데 이 둘로스가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가리킬 때는 여지없이 servant입니다. 의도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slave를 slave라 하지 못하고 servant로 번역하는 이유가 뭘까요? 노예라고 번역하면 깔끔하고 명확한 번역인데 왜 종이라고 번역합니까? slave라고 하면 확실한데 왜 servant로 번역합니까? 도대체 왜?
이 단어에 대한 정보 부족이나 연구 부족이 아닙니다.
용기 부족입니다. 확신의 부족입니다.
노예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사슬에 묶여서 배에 따닥따닥 쭈그리고 앉아서 팔려가는 흑인 노예들을 사람들은 연상하니까.. 부정적인 이미지입니다. 노예나 slave라고 번역한 성경책 잘 안팔릴 겁니다. 사람들이 싫어할 겁니다. ‘내가 노예라고?’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호흡하신 말씀을 무시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절대적으로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주인과 노예로 그려줍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압도적인 이미지입니다.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여러분,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님으로 시인하십니까?
의심 많은 도마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뭐라고 그러셨나요?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봐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러자 도마가 이렇게 감격스럽게 외칩니다.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십니까? 주님이 있으면 노예가 있는 겁니다. 노예가 있으면 주님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는 자동적으로 ‘나는 노예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 고백의 의미가 뭘까요? 이런 고백이 아닐까요?
‘내 의지, 내 권리, 내 열망, 내 야망, 내 이기심, 내 욕심 다 내려놓습니다. 주님 앞에 다 내려놓습니다. 나를 철저히 부인합니다. 주님만이 내 삶에 온전한 주인이십니다.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내 생명도 주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을 각오하고 주님이 가는 곳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십니까? 혹자는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아~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닌가요? 성숙한 사람들의 고백이 아닌가요?? 투머치 크리스찬 아니에요?’
아니요. 그게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입니다. 나의 주님. 나는 주의 노예입니다.
Grace to Korea 독자 여러분, 그게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의 부르심입니다.
그게 진짜 복음입니다. 요새 많은 교회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정체성의 근본을 흔들고 있습니다. 왜 둘로스가 노예가 아니라 종, 일꾼, 하인입니까? 왜 slave가 아니라 servant입니까?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너는 예수님의 노예라 그러면 사람들 교회 다 떠나가니까.
요즘 기독교의 메시지는 노예의 언어랑은 완전히 동떨어져 있어요.
요새 소위 복음이라고 하는 메시지는 건강, 내 성공, 내 커리어, 내 인생,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내가 원하는 거 이루게 해주세요. 내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세요!’ 램프의 지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주님이라는 단어는 그냥 기도할 때 붙이는 종교적인 단어일 뿐입니다.
아닙니다. 교회는 날 구원하신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는 노예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값을 지불하고 구매된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값으로 사신 자들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 엄청난 값이 지불되고 죄의 노예시장에서 해방돼서 이제는 새로운 주인을 만난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된겁니다.
로마서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둘로스.. 여러분의 정체성. 그리고 나와 예수님의 관계에 대한 본질이 담긴 단어입니다. 복음의 본질입니다. 이 단어를 통해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정말 성경적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삶이 통째로 바뀌어질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여러분을 진짜 구원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소망합니다.
다음 글. 그리스도의 노예 두 번째 글에서 둘로스의 의미를 더욱 깊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음기도신문]
박성준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