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라 기도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나중에 개척하면 기도하겠습니다” “형식과 시간에 매이는 것이 힘듭니다. 자유롭게 기도하겠습니다” “대학원을 진학해서 어렵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열방을 품고 기도하리라 마음을 굳게 하며 결단했던 기도자들로부터 기도를 포기하겠다는 통보를 들을라치면 가슴 저 밑바닥으로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다.
리더십 연구의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느헤미야서(書)’ 가 기도24.365본부에게는 몸을 세워가는 설계도면과 같았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으며 세워갔던 과정들이 기도24.365본부 사역을 특징짓는 핵심 얼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느헤미야가 성을 건축할 때 높이를 다 쌓기 전에 먼저 전부를 연결(느4:6)하는 장면에 힘입어 기도24.365는 24시간 연속에 앞서 365팀 연쇄에 초점을 두고 기도자들을 동원해왔다.
마침내 8년째를 맞는 올해 10월 초. 오전 6시부터 7시까지의 시간대는 각 시간대당 3명의 기도자들이 세워져 365팀이 모두 채워졌다. 처음부터 365팀이 다 채워진 기도시간대는 더 이상 기도자를 일으키지 않고 그 시간대에 ‘완성’ 을 선포하기로 했던 그 원칙이 실제가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세워진 기도자들이 자신의 분깃을 건강하게 파수하고 있느냐는 알 수 없었다.
자빠지고 널부러져 있는 기도자들이 실제 있을 거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또 기도를 포기하겠다고 했을 때 뭐라 응대할 마음도 준비되지 않아, 애써 기도자들의 실상을 들여다보기를 겁을 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믿음의 용기로 직면하게 하셨다. 그리고 6시 기도자들에 대한 전수(全數)조사를 실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안타깝게도 기도를 포기하겠다고 의사를 밝히는 기도자들이 있었다.
마음이 저리고 아팠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인도함을 받았는가? 십자가의 보람과 영광이 이제 실제가 되는 역사적 현장으로 초대받았는데 어찌 주저앉을 수 있는가? 자기를 부인하고 내가 죽은 십자가를 지고 나선 걸음이 겨우 여기까지인가? 왜 포기하고 낙심하는가?
그 날의 느헤미야는 성벽 쌓는 일을 하다가 ‘우리가 먹고 살아야겠다’ 며 현장을 이탈하는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지도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변혁을 주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기도를 포기하겠다고 지체들이 밝힌 포기 이유를 읽고 또 읽어보는 것 외에는 달리 특별한 방책이 없었다.
다시 느헤미야서를 펴들었다. 감격에 찬 화려한 성벽 봉헌예배, 이 일을 위해 화려한 수산궁의 고위직을 마다하고 달려온 느헤미야. 그의 부르심이 온전히 성취되어 그 영광이 찬란하기만 한 현장. 그런데 느헤미야서는 클라이맥스인 12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개혁과 결단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속히 옛 모습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하나님의 전 뜰에 간교한 도비야의 거처가 마련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 된 레위인은 각자 먹고 살 궁리를 찾아 직임을 버렸다. 차라리 기록이 없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은 느헤미야 13장. 마치 예수님의 부활과 승리를 경험하고서도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야겠다’ 고 맥없는 소리를 하며 일어서는 베드로를 따라 제자들이 줄줄이 퇴장하는 요한복음 21장처럼.
또다시 불순종의 자리에 선 이스라엘. 물고기를 잡으러 간 베드로와 제자들, 그래 그것 뿐이라면 절망이다. 그것이 역사라면 우리의 역사(History)는 그 분의 이야기(His Story)가 빠진 허탈 뿐이다. 그러나 그 곳엔 다시 주님을 향해 손을 드는 느헤미야가 있다. 그 곳엔 손수 숯불을 지피고 떡과 물고기를 구워 조반을 준비하신 예수님이 계시다.
기도를 포기하려는가? 잠깐만!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어리석게도 아이를 버리려 하는가? 포기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지혜요 용기다. 자신감 넘쳤던 자아에 대하여 절망하고 포기하라. 이 지긋지긋한 자아를 속히 저주받고 처리한 십자가로 넘기라.
이제 주님을 향해 눈을 들라. 그리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렇게 외쳐라. “나는 ‘기도할 수 있는 나’ 를 포기한다. 그러나 ‘기도’ 는 결코 포기될 수 없다!” 십자가의 복음을 만나던 그 날. 주님은 똑똑히 말씀하셨다. 제자에게 필요한 것, 그것은 꺾어진 날개와 부러진 다리라고. 주님이 아니시면 결코 날 수도 걸을 수도 없는, 나에 대하여 절망한 사람. 그가 바로 ‘제자’ 라고. 제자의 무능과 스승의 전능이 만나는 자리, 기도의 자리는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된다.
지난 8년간 골방에서 열방을 품었던 그대, 골고다에서 주 예수와 함께 죽은 복음과 기도의 동지들이여, 우리가 만나야 할 그 자리, 동지들이 결코 망할 수 없는 그 자리, 디베랴 바닷가에서 다시 만나자. 우리의 어떠함에 대한 계산을 멈추고, 다만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이여 디베랴 바닷가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