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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우리의 피난처

사진 : 김봄

언제부턴가 마을을 정처 없이 걷고 있는 세 모녀의 모습이 보였다.

서너 살로 보이는 언니와 아직 기저귀도 떼지 않은, 겨우 걸음마를 하는 동생과 이제 겨우 소녀의 티를 벗은 것 같은 젊은 엄마, 테클라였다. 행색을 보아하니 마땅한 거처 없이 이 동네 저 동네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그들의 곁을 지나가기만 해도 악취가 코를 찔렀고, 얼마나 굶었는지 세 모녀 모두 뼈마디가 앙상했다.

아프리카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도 남루한 행색이 눈에 띌 정도였으니 누가 봐도 오갈 데 없는 노숙자 가족이었다. 더군다나 엄마는 다리까지 절고 있었다. 오랫동안 내버려 둔 염증 때문에 다리가 까맣게 썩어들어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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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봄

이대로 가만히 두었다간 우리 동네가 세 모녀가 떠돌아다니는 마지막 동네일 수도 있었다.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주저앉아 있는 세 모녀의 곁을 지나던 비비 이사야가 불쌍하고 가여운 모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들을 미혼모 쉘터로 데리고 왔다. 건축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혼모를 받지 못하고 있는 쉘터에 처음으로 찾아온 가족이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한 발짝 앞 낭떠러지만 있었던 그녀의 인생길에서 만난 쉘터.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사랑이었다.

테클라 모녀는 쉘터에서 몇 달 만에 씻었고 따뜻한 밥을 먹었고 치료를 받았다. 예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왔으니 예전의 옷을 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었고 이제는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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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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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봄

그녀의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의 아빠가 사라진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다려도 오지 않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다, 아니 당장 배고픔과 막막한 내일이 주는 두려움에 지쳐서 할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는데 아버지는 외면했고 새엄마는 아이들과 나가지 않으면 아이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독약까지 보여주면서 협박을 했다.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듯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 달을 넘게 떠돌아다니다가 다리에 상처를 얻기도 했지만 적당한 치료의 때를 놓쳐서 조금만 늦었다면 절단을 할 수도 있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마침내 마음 편히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집이 생겼지만, 그녀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저녁마다 그녀는 악몽에 시달렸고 예배 시간에는 귀신 들린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오랫동안 그녀를 붙잡고 있던 사탄 마귀가 그녀를 가만두지 못했다. 예배 때가 되면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절규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녀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이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녀가 절규할 때마다 교회 성도들이 그녀를 붙잡고 기도했고 축사했으며 그녀가 울 때마다 달래고 안아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가슴들이 있었다.

기도와 공동체의 사랑으로 그녀는 조금씩 회복되어서 그녀의 눈빛은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맹이었던 그녀가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평온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하나님의 피난처에서 복음을 들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글을 익히며 그렇게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사랑을 받고 회복되고 치유하며 자립을 준비할 줄 알았다.

그녀의 자립을 도와줄 사람들도 있었고 그녀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녀는 충분히 예전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기도와 예배와 설교만으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잠시 잊었다. 사랑의 열매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인내와 용납과 자기 부인의 양분을 먹고 열린다는 것을.

어느 날 테클라는 쉘터를 나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알고 보니 동네 미장원에서 눈이 맞아버린 남자와 같이 살겠다는 것이었다. 마땅한 직업도 집도 없는 가난한 무슬림 남자였다.

기가 막히고 황당하고 화가 났다. 그녀와 아이들이 다시 불행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에 조금만 더 생각하라고 말렸다. 하지만 이미 눈에 콩깍지가 쓰인 그녀는 “자주 놀러 오겠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결국 쉘터를 떠났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하루 두 번씩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물통을 들고 쉘터 마당에 있는 공동 수돗가에 물을 길으러 온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행색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눈에 띄게 수척해졌고 함께 오는 아이들 역시 예전 거리를 떠돌 때와 다르지 않은 행색이었다.

말을 들어보니 우리의 예감대로 남자는 돈을 벌지 않았고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그녀는 이제 어린아이 둘과 함께 남자마저 돌봐야 할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쉘터를 떠난 그녀의 삶의 무게는 더 무거워 보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재산을 들고 허랑방탕한 세월을 보내고 재산을 낭비하고 후회하는 탕자처럼 간절히 쉘터에서의 일상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녀가 아이와 함께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비록 돌아온 아들을 위해 살진 소를 잡고 반지를 나눠 끼워주는 아버지의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안에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더욱 흘러넘쳐야 하지만, 만약에 그녀가 다시 돌아온다면 두 팔 벌려 다시 안아주고 싶다.

진정한 우리의 피난처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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