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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칼럼] 순례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산티아고의 길. 사진: 지앤씨

이상규의 성경묵상1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14:13-14)

출애굽기란 이름 그대로 출(出) 애굽의 과정이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나 출애굽의 역사가 다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에굽의 변방지역을 떠나 시내산에 이르는 3개월간의 여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후의 출애굽 여정은 민수기와 신명기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야곱의 식구 70인이 애굽으로 이주하여 430년을 지내는 동안 인구는 약 200만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자 히브리인들에게 위협을 느낀 애굽왕은 히브리 인구 제한 정책을 쓰게 됩니다. 바로왕은 히브리인에게 노역을 시켰고, 국고성(國庫城)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들으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세워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역사를 시작하였으나, 바로왕은 완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려하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놓아주지 않자 9가지 재앙을 내립니다. 그래도 바로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바로왕 아멘호텝 2세는 20세 청년이었습니다. 바로가 장자를 잃는 10번째 재앙을 맞게 되자 밤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 네 백성을 데리고 가라고 출애굽을 허락합니다.

백성들이 국경지역 라암셋을 떠나 숙곳, 에담, 바알스본을 거처 홍해 앞에 도착합니다. ‘홍해’(紅海)란 히브리어로는 ‘얌숲’(ףוס םי)인데, ‘갈대바다’라는 뜻입니다. 이때 바로왕 심경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욕심에서 홍해 앞에 갇힌 이들을 다시 잡아 오기 위한 군사작전을 전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백성들은 지도자를 원망했습니다.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으로 인도했느냐며 차라리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했던 말씀이 출애굽기 14장 13-14절입니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는 말은 백성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출애굽기가 보여주는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출애굽은 계획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합의에 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지도력에 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세에게 백성을 인도하라고 명했을 때 모세는 도리어 “못 한다”고 거절했습니다(3:11). 지팡이가 뱀이 되는 표징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못 한다고 거절했습니다(4:10,13).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는 14장까지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모세와 바로입니다. 모세는 계속해서 “못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거부했고,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 줄 수 없다고 거듭거듭 저항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바로는 “완악했다. 완강했다”(7:13, 22, 8:19, 9:12, 35, 10:20, 27, 11:10, 14:4)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출애굽을 이끌어간 이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하나님의 인도였습니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는 하나님의 인도를 말하는 레토릭입니다. 사람들은 마치 자기 힘으로 홍해를 건너야 하는 것처럼 원망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너희는 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면 왜 우리에게 시련이 있고, 남모르는 고통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인도는 시련이나 고통을 없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시련은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우리에게 훈련이 필요하기에 시련을 주시고 때로는 고통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소경을 인도할 때 백 미터 앞에 장애물이 있다, 오백 미터 앞에 낭떠러지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 현실을 말해 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대신 싸우신다고 말합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도 문제가 있지만 인도하시는 이는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이 점을 말하는 것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겠다.”(14:14)는 선언입니다. 구약의 수많은 전쟁 사건이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은, 전쟁에서의 승리는 군인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작전의 탁월성이나, 장비의 우수성에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승리합니다. 싸우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훈련되지 않는 사막의 지친 나그네들이었고, 그들에게는 무기나 장비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기 보위(保衛)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노출된 채로 있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들은 지도자를 원망하며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을 인도하셨고, 저들을 위해 대신 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눈앞의 현실만 보고 좌절하기 싶습니다. 내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출애굽기 14장 13, 14절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순례자의 길을 가는 우리의 선한 인도자입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상규 교수 | 전 고신대 교수. 현 백석대 석좌교수. 교회사가로 한국교회 사료 발굴에 기여했으며, 한국장로교신학회 회장과 개혁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교회와 개혁신학> 등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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