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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으려면

사진: Unsplash의 Artur Aldyrkhanov

그리스도인 부모라면 자녀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거나 화나게 하지 말라는 바울의 지시를 잘 알고 있다(엡 6:4; 골 3:21). 하지만 자녀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부모의 상황에서 사랑으로 하는 징계와 격분이 동기가 된 징계 사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자녀 훈계와 양육에 정해진 공식은 없지만, 바울은 자녀가 격노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두 가지 분명한 지표를 제시한다. 분노와 낙담이다. 

십오 년 이상 청소년 상담을 하며 가정 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생생하게 목격한 나는 대부분의 아이들로 하여금 분노와 낙담을 느끼게 하는 구체적인 양육 행동이 무엇인가에 관해서 깊이 생각했다. 단지 교훈과 양육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억압하고 짜증 나게 하는 양육 유형이 분명히 있다. 중요한 건 부모의 양육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 양육을 통해서 복음이 반영되기 때문에 그 차이를 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핵심은 무엇인가? 

부모의 명령과 관련한 말씀을 읽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발견한다. 바울이 복음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는 점이다. 가족 관계에 대한 실질적인 명령을 내리기 전에, 바울은 우선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양자로 “미리 정하셨고”(엡 1:4~5), 그래서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도록 한다는 영광스러운 사실을 전달한다(6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우리의 공로나 보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게 바울의 설명이다. 우리가 입양된 것은 예수님이 “피”(7절)를 흘림으로 “구속”을 이룬 하나의 구출 작전이었다.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그의 “은혜”를 “아낌없이 베풀어”(7~8절)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분 안에서 통일되게 하셨다(10절).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사람들은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 새롭게 되어” “자비로운 마음과 자비와 겸손 그리고 온유와 오래 참음”을 갖는 “새 사람”을 입는다(골 3:10, 12). 구원은 신자들의 마음에 평안과 사랑과 감사를 낳는다(14~15절, 엡 2:17, 5:2). 왜냐하면 복음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사랑하는 그의 아들이 다스리시는 그의 나라로 옮기셨기” 때문이다(골 1:13).

복음 진리가 넘쳐나는 풍부한 말씀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바울은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엡 6:4), “여러분의 자녀들을 격분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의기를 꺾지 않아야 합니다”(골 3:21)라고 말한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격분시키지 말라는 바울의 가르침을 우리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의 양육이 반영하는 것이 다름 아니라 복음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세 가지 

부모라면 자녀가 화를 내거나 낙담한 것처럼 보일 때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의 행동이 행여 어떤 영향을 미친 게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 및 성인 자녀와 나눈 수년간의 상담 결과 나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일반적으로 자녀를 화나게 하고 낙담하게 만드는 세 가지 양육 행동을 발견했다.

1. 죄책감 자극하기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가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조종하고 싶을 때, 종종 쓰는 방법이 죄책감 자극이다. 이는 잠재적인 위험이나 미래의 고통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종종 내게는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부모를 생각해 보라. 

“너, 나를 전혀 신경 안 쓴 거야?”
“내가 널 도와주지 않으면, 네 인생은 엉망이 될 거야.”
“널 위해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이게 그 보답이니?” 
“내가 너 나이였을 때 나는 이미….”

능력을 겸비한 하나님의 사랑은 옳은 일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함으로 부모로 하여금 자녀를 사랑과 온유함으로 인도하게 만든다. 자녀가 창의적이 되도록 이끈다. 그러나 죄책감을 자극하는 부모는 자신의 필요와 소망, 성취가 최우선이다. 

아이들이 불순종하거나 위험한 일을 했을 때 나오는 부모의 주된 반응이 “자신의 상황”에 대한 고민이라면, 그런 부모는 자녀에게 죄책감을 자극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모든 것의 으뜸”(골 1:18)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믿도록 자녀를 훈련시키고 있는가?

자녀의 행동을 제대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끌어내려는 부모는 이미 은혜에 관한 복음 이야기를 권리에 대한 세계관으로 대체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현실은 그리스도인 부모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최고(골 1:18)라는 생각을 중심으로 얼마든지 분위기를 격앙시키지 않고도 자녀와 생산적인 대화와 “진실한” 교제(벧전 1:22)를 위한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한다. 복음 진리에 푹 잠긴 대화는 평화를 촉진한다(3:15). 그러나 권리를 따지는 대화는 혼란과 분노, 낙담을 초래할 뿐이다. 

2. 인간이 만든 법

자녀에게 은혜의 복음을 가르치는 부모는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복종하도록 알려줄 책임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선하심과 지혜와 사랑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법과 내가 선호하는 것을 구별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족 체계의 기능적인 부분으로서 자녀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기준이 일관되지 않거나, 예측할 수 없거나, 또는 불공평할 때 아이는 화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일관되게 분노나 낙담으로 반응하는 일정 규칙이나 기대가 있는 경우에, 부모는 과연 그 규칙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게 당연하다. 그것을 제거하는 순간, 자녀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게 될까? 아니면, 그 규칙 또는 기대를 만든 게 하나님과 관계없이 애초에 부모가 원해서는 아닌가? 

당신과 자녀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문제와 상황을 관통하는 어떤 경향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 특히 십대와 성인 자녀와 관련해서, 휴일을 어떻게 보낼지, 매주 얼마나 자주 전화나 문자를 보낼지, 손주를 어떻게 양육할지, 그리고 결정을 어떻게 내릴지 등에 대한 규칙을 오로지 부모가 바라는 대로 정할 경우에 자녀의 분노와 낙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녀가 부모의 규칙이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 그것을 불순종이나 무례함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복음은 자녀가 특정한 기준 때문에 낙담하거나 분노를 느낄 때조차도 부모로 하여금 그들의 말을 경청하도록 하는 자유함을 선물한다. 어린이, 십대 또는 성인 자녀의 좌절감을 일축하기 전에 부모는 자신의 기대가 명확하게 전달되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기대가 자녀의 나이에 적절한지를 고려해야 한다. 

3. 화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화를 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화를 내야 아이들이 들어먹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직하다면 자녀를 향한 의로운 분노라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엡 4:26). 분노는 거의 대부분 부적절한 권리 의식 또는 존중에 대한 교만한 요구에서 비롯한다. 

나는 자녀에게 칼을 겨누고, 물건을 던지고, 벽에 밀치고, 말로 위협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 부모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건 단지 짜증 나는 행동이 아니다. 그건 학대이다. 

하지만 폭력적 수단 외에도 절대로 정상적인 분노 표출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는 행동이 있다. 거칠게 말하기, 소리 지르기, 경멸하는 얼굴로 쳐다보기, 또 욕하고, 조롱하고, 비꼬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결코 평화와 하나 됨과 이해를 촉진하지 않는다. 그 모든 행동은 우리를 자녀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그들을 크게 낙담시킨다. 분노는 일시적으로 순종을 끌어낼 수도 있겠지만, 자녀가 경건한 의 안에서 자라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약 1:20).

이미 자녀를 노엽게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녀의 분노와 낙담이 모두 다 부모의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상한 감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데에는 다른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러나 에베소서 6:4과 골로새서 3:21은 부모의 행동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상기시키며, 그리스도의 복음과 일치하는 방식의 자녀 양육을 권고한다.

자녀가 집에서 같이 살든 이미 독립했든, 복음은 부모를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자녀의 피드백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분노한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나아가서 의도적으로 품위와 존중으로 그들을 대하도록 한다. 그러한 대화는 길고 고통스러울 수 있으며 목회자나 중재자 또는 상담사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당신의 행동 때문에 자녀가 화를 내거나 낙담했다는 것을 안다면,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롬 12:18).

진심으로 사과하는 경우에 앞으로 자녀에게 휘둘리게 될까봐 걱정할 필요 없다.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을 보면서 당신은 놀랄 것이다. 부모가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진실한 책임을 추구할 때, 자녀는 부모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더 안전하고 자유롭게 건강한 관계를 추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된 복음 생활이 만들어 내는 현실이다. 분노와 낙담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와 감사에 바탕을 둔 진실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 복음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The Pursuit of (Which) Happiness? 

앤드류 윌슨 Andrew WilsonKing’s Church London의 교육 목사이자 Christianity Today의 칼럼니스트이다. 지은 책으로는 Remaking the WorldIncomparableGod of All Things가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제보 및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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