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만나고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서 먼저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복음이 내 삶에 체질화가 될 것을 기대하며 6개월간 공동체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곳에서 자만한 나와 자기사랑으로 가득한 나의 실체를 드러내주셨다.
훈련은 매일 아침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묵상한 말씀을 정리하고 나누며 기도하는 시간도 갖는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보다는 오직 나누기 위한 묵상과 과제 제출용 묵상을 하게 되었다. 지체들의 나눔을 참고하며 언어의 미숙함을 핑계로 묵상을 나누거나 대표로 기도하는 일에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사실 난 재일교포다.
자만과 자기사랑의 실체가 복음앞에 드러나
하지만 이런 나의 태도는 단지 내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하나님보다 사람을 가장 두려워하는 내 병든 옛 자아의 실체였다. 이 병든 자아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 드러났고, 기도의 자리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내 실체가 드러날 때마다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때마다 내 실체를 십자가의 자리에서 철저히 깨뜨려 주셨다.
나의 실상을 주님 앞에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할 때에야 비로소 은혜와 복음 앞으로 나를 인도하셨다. 매일의 말씀기도 시간을 통해 주님은 내가 어떤 은혜가 필요한 죄인인지 잊지 않도록 하셨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나의 느낌과 감정으로 반응하고 지체를 향한 비판과 정죄가 끊이지 않는 내 모습 때문에 낙심되었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 가는 자며…”(계 14:4~5)
훈련을 돕는 간사님으로부터 이 말씀이 믿어질 때까지 매일 묵상하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니 말씀이 믿어지는 은혜를 주시더니 곧 확신으로 바꾸어 주셨다. 모든 것이 기도의 자리에서만 가능했다.
말씀이 믿어질 때까지 붙잡고 기도
나의 내면의 싸움이 가장 치열했던 곳은 기도의 자리였다. 나는 사람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기도를 듣는 것을 싫어했다. 하나님 앞에서 한다기보다 사람의 눈과 귀를 의식하며 평가받는 것 같아 두려워했다. 그러나 계속 이럴 순 없었다. 큰 소리로 기도하라는 학교 측의 권면에 나는 그날부터 최선을 다해 외쳤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치기도 했다. 하나님 앞에서 이만큼이면 됐지 했던 안일한 내가 꺾이는 시간이었다. 머리로는 다 알지만 순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점점 십자가를 붙들어야하는 초점을 잃고 부르심의 정체성을 잃어갔다.
그 무렵 5박 6일간의 느헤미야52기도에 참여하게 되었다. 기도에 나를 드리는 순종의 기회였다. 한계에 부딪쳐 쓰러질지라도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싶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주님께 대한 갈망만 있었다. 때론 마음 안에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붙잡았다.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주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한 것 뿐인데 주님께서 나의 입을 열어주셨다. 그리고 열방을 향한 마음을 부어주셨다. 순종하면 믿음이 생겼고 그 믿음으로 더욱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시간이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어마어마한 꿈과 비전을 보았다. 바로 이 세대에 세계 복음화가 이뤄지는 것이었다. 복음사관학교에서 유행어처럼 흔히 하던 말이었다.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하며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믿는다.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고 약속하신 진리이기에 의지하여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하지만 아웃리치를 다녀온 후, 수료식을 앞두고 기도의 자리에 나가는 것을 게을리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간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마지막 주자로 더더욱 달린다. [GNPNEWS]
원종실(복음사관학교 수료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