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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하나님의 자비(1):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 자비로우실 수 있을까?

사진: Unsplash의 Pawel Nolbert

온 우주를 통틀어 영원토록 같으시며 변치 않으시는 분은 오직 성경의 하나님이시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 3:6) 그분의 성품과 생각이 변하지 않으시기에 그 영원한 경륜 또한 변하지 않으신다. 특히, 자신의 말씀을 번복지 않으시며 뜻을 돌이키지 않으시며 언약을 폐지하거나 마음을 바꾸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 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하나님의 불변성이란 하나님께서 기분의 변화, 급한 성미, 변덕스러움, 혹은 주기적으로 낙담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신학적 용어로는 무정성(無情性)의 하나님이다. 이것은 그분이 무의식적인 감정, 고통, 아픔, 또는 부당한 대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2.1)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의 존재와 완전성에서 무한하시며, 지극히 순결한 영으로서 볼 수 없고 몸과 지체나 성정(性情)도 없으시며.”

신성(神聖)한 무정성이란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19세기의 유명한 회의론자인 로버트 잉거솔은 이렇게 기술했다. “몸과 지체나 성정(性情)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세상에서 무(無)에 대한 표현을 이것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한번 해 보라. 공허함이라는 자화상을 묘사하는데 ‘몸과 지체나 성정이 없다’라는 설명보다 훌륭한 말은 생각해 낼 수가 없다.” 오늘날 몇몇 기독교 신학자들조차 냉담하고 무관심한 하나님을 만들어 낸다는 이유로 신성한 무정성의 개념을 꺼린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하나님이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는 의미는 그분 자신은 해를 입을 수 없으며 또한 그분이 변덕스럽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이 순전히 냉혹하거나 자비로운 사랑이 빠져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성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고 말한다. 그의 긍휼하심, 자비하심, 그리고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136).

그의 거룩하신 사랑은 인간의 어떤 감정보다 더 참되며 더 확실하며 그리고 더 신실하다. 실제로 하나님의 깊은 자비로우심의 불변성과 무한성은 거룩한 무정성이 얼마나 경이로운 진리인가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예레미야애가3:23-24).

이러한 것들에 대한 우리의 사고(思考)의 주된 문제점은 하나님의 속성을 인간적인 측면으로 축소해 낮추려 하는 것에 있으나 그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우리와 같은 줄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시편 50:21). 인간의 감정과는 다른 그분의 사랑은 무의식적인 반사작용, 솟구치는 격노, 발작적인 쾌활함과 언짢음 또는 갈등상태의 심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인자하심 만큼 의도적이시며 신실하시며 자신의 거룩하심 만큼 완벽하시며 정결하시다.

한결같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은 진실한 성도들에게 끊임없는 위로가 된다. 아니 되어야만 한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무한하며 흔들림이 없다.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시편 103:11).

그리고 그분의 변함없는 자비하심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도 부당하게 고통을 받을 때도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닻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편103:13).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에 대해 냉담하며 등한시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성경은 거의 매번 하나님의 변치 않으심을 언급할 때마다 그분의 깊고 헌신적인 긍휼하심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그의 불변성의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거의 전체적으로 구약성경의 본문이 인용된 것에 주목하기 바란다. 보편적으로 유대 성경의 하나님은 항상 가차 없이 엄중한 징벌을 내리는 가혹한 재판관으로 부당하게 희화화(戯画化)되어 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구약성경 전체의 지속적인 주제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은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한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시편145:8-9)

사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빈번히 죄에 대한 그분의 불같은 노(怒)가 언급되는 곳곳마다 각별히 강조하고 있다. (참조: 느헤미야 9:17, 시편77:7-1, 이사야54:8, 60:10, 하박국3:2). 선지자의 정죄함에서도 가장 엄중한 위협과 가혹한 말조차 하나님의 지칠 줄 모르는 자비하심과 측은히 여기시는 그분의 은혜를 상기시킴으로 완화한다. (예레미야33:5-11, 호세아14:4-9).

물론 여기에서 조심스러운 균형이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거룩한 속성들이 마치 모순 되는 것처럼(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은 서로 거스르지 않는다) 대립적 양상을 띠게 하거나 마치 하나님의 자비하신 속성이 거룩한 의로우심의 중대성을 저절로 압도하는 것처럼(하나님의 거룩한 자비로우심과 의로우심은 서로 거스르지 않는다) 행하는 것은 현명하지도 유익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롬11:22). 모든 하나님의 속성은 성서에서 균등(均等)히 그리고 영원히 높임을 받으신다.

하나님의 진노와 그분의 긍휼하심이 서로 대립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의 온유하심을 겨루게 하거나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죄에 대한 그분의 노여움을 간단히 상쇄(相殺)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지없는 오류다. 그 거룩한 긍휼하심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위협을 제거한다고 한 순간이라도 꿈꾸지 말라.

만약 그분이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불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출34:7, 나 1:3).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면하게 된 하나님의 형벌의 엄중함을 알림으로 그 분의 긍휼하심을 더욱 높이 찬미하게 한다.

대립이나 모순은 하나님의 속성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변치 않는 성품이 우리에게 긍휼하심으로 응하시는 그분을 가로막지 못한다. 오히려 그분의 불변성이 우리에게는 절대 변함이 없다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다가와 안위와 위로가 된다. [복음기도신문]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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