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에 세계복음화! 우리 세대에 그날의 영광을!” 수천수만 명이 모인 화려하고 굉장한 대형집회장에서 들려진 외침이 아니다. 초대교회 시절 부흥의 현장이었던 마가의 다락방과 같은 광주의 한 소박한 처소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이다. 적은 무리들이지만 힘 있는 간구로 그날의 영광을 꿈꾸며 믿음의 기도가 올려 드려지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의 현장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햇수로 3년째 지속되고 있는 이 기도모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 참여하고 있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기도의 용사인 백은주 집사를 만났다. <편집자>
– 기도모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이 모임을 ‘청년, 캠퍼스를 위한 복음의 빛(Light Of Gospel, LOGOS) 기도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어요. 보통은 ‘로고스 기도모임’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지금은 순회선교단 광주지부가 매주 화요일마다 주관하고 있는 화요중보기도모임 이후에 진행하고 있어요. 장소는 십자가사랑교회에서 밤 9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청년들과 캠퍼스를 위해 철야로 기도하고 있어요. 말씀을 읽고 묵상을 나누고 기도하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에요.”
– 어떻게 시작된 모임인가요?
“날짜까지도 정확하게 기억나네요. 2014년 10월 3일 금요일 개천절이었어요. 당시에 광주지부 동역자로 섬기고 있었는데 오후에 지부장 선교사님의 전화를 받았어요. 다급한 목소리로 밤에 올 수 있냐고 물었어요. 마침 쉬는 날이라서 갈 수 있다고 말했죠. 저를 포함해서 5명이 모였어요. 그런데 선교사님이 그날의 영광에 대한 비전을 나누기 시작했어요. 다소 갑작스러웠지만, 이미 뭔가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리고는 서약서를 나누어 주셨어요. 그 서약서에는 약속의 말씀과 이 기도회의 목적과 취지가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었죠. 하루에 30분이든 1시간이든 시간을 정하고 청년, 캠퍼스를 위해 기도하자는 일인데 아멘이었죠. 그렇게 서명하고 시작된 기도모임에 참여하게 됐어요.”
매주 새벽까지 철야기도가 이어져
– 그렇게 시작이 되었군요.
“본격적인 기도모임은 그 다음 주부터 시작됐어요. 광주의 한 교회에 20여 명의 기도자가 모였어요. 그렇게 매주 모여서 철야기도를 올려드리게 되었죠. 철야기도여서 다른 뭔가를 포기해야 했죠. 확실하게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기도모임인데, 규모가 20명 정도로 꾸준히 유지가 되었어요. 그해 겨울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보내게 하셨어요.”
– 기도모임을 통해 은혜가 풍성하셨겠네요.
“증인들을 많이 봤죠. 함께 기도하면서 지체들의 고백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또 구체적으로 결단하고 어떻게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지 보았어요. 초기부터 함께 기도했던 한 가정은 그날의 영광에 사로잡히더니 결국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선교사님으로 나가셨어요. 정말 불덩어리 같았어요. 이 세대에 그날의 영광을 볼 것이라는 사실이 그분에게 정말 실제가 된 것 같았어요. 누구를 만나도 그 비전을 나누시더니 결국 선교사님이 되셨죠. 그곳에서도 지치지 않고 세계복음화를 품고 기도를 계속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 아이들과 함께 철야기도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지금 6살, 5살, 2살, 그리고 뱃속에 6개월 된 아이가 있어요. 초기에는 자정이 넘어가면 내가 기도를 하는 건지, 조는 건지 알지 못하는 그런 시간도 있었어요. 또 아이들과 함께 다니다보니 아이들 때문에 오히려 다른 지체들의 기도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닌가하는 염려가 되기도 했어요. 어떤 경우는 아이들이 잠을 자야하는 시간인데 내가 아이들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었어요. 게다가 저희 집이 아파트 4층에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거든요. 여기저기 막 들쳐 업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죠.”
– 매번 결단하기가 쉽지 않으셨겠네요.
“하지만 은혜가 더욱 컸어요. 기도모임에 참여하면서 주님이 저에게 실제로 생명을 주셨는데요. 제 몸으로 생명을 잉태하게 되면서 이 기도가 더욱 소망이 되더군요. 기도는 반드시 생명을 낳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저에게 알려 주셨어요. 처음에는 사실 거의 협박 수준으로(웃음) 서약서를 써 내고 기도를 강요받는 것 같았어요. 힘이 들었지만 순종하면 할수록, 또 기도를 하면 할수록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어요. 정말 주님을 누리는 시간이었어요. 기도를 하게 되니까 결국 선교완성의 그날을 믿게 되는 은혜가 있었죠. 비밀을 깨닫는 기쁨이라고 할까요.”
– 기도모임을 통해 어떤 열매들을 보셨는지요?
“우리가 기도하는 이 모임 이외에 기도의 현장들이 부흥하는 것을 보게됐어요. 우리는 이 기도만 했을 뿐인데, 목포에서, 순천에서, 광양에서 화요중보기도모임이 생겨나서 현재 진행되고 있어요. 목포의 한 지체는 그 지역에서 기도모임을 마치고 다시 이곳으로 와서 철야기도를 매주 함께 하고 있어요. 역사 가운데 부흥이 있기 전에 항상 기도의 부흥을 먼저 허락하셨던 것처럼 지금 이곳에는 기도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에요.”
기도의 부흥을 보고 있어요
– 개인적인 변화도 많았을 것 같네요.
“이 기도모임에 참여하기 전,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과 선교완성이 저의 꿈이라고 말은 했지만 참 막연했어요. 당장에 눈 앞에 보이는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더 중요하게 보였어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꿈이 저에게 실제가 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이 기도를 시작하면서 모든 게 선명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선교완성이 정말 이뤄지는구나 믿어졌어요.
현실적으로는 이 땅의 청년 대학생들이 참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이번 겨울에도 동역자들과 함께 한 신학교에 가서 기도하고 또 거기 계신 분들과 교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분이 지금 이 세대의 청년들은 믿음만으로, 기도만으로는 안된다고만 하시더군요. 슬펐죠. 또 아프리카에서 와서 예수님을 믿게 된 한 대학생도 만났어요. 하나님이 자신의 나라를 더욱 발전시켜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어요.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꿈을 붙잡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죠. 현실이 그렇다고 힘이 빠지는 게 아니라 더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 일이 결국 사람 수준이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죠.”
– 최근 몇 년간 많은 일을 주님이 하셨군요. 그런데, 어떻게 주님을 만나게 되셨어요?
“저는 목회자의 자녀로 교회를 떠날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죠. 하지만 실제로는 주님과 상관없이 세속적 가치로 살아왔어요. 그날의 영광에 대해서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이, 신앙생활이란 그저 제 삶의 경건이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하나님은 내가 잘하면 복을 주시고 내가 잘못하면 벌을 주시는 분으로 인식했어요. 삶은 변하지 않았고, 나 스스로 주인된 삶을 살았죠. 그러다가 ‘왜 나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지?’라는 의문이 들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그런데 모두가 하나같이 말씀 그대로 살 수는 없다고 말해주었어요. 나중에 결혼한 이후에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저는 완전히 절망하게 되었어요. 제 아이들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 것이죠. 도대체 내 존재를 알 길이 없고, 하나님을 알 수도 없는 그런 시간들을 겪으며 목마름이 극에 달해 있을 때 주님의 은혜로 복음선교관학교에 훈련생으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나중에 깨달았지만, 저는 창세기 1장 1절부터 믿지 않았던 자였어요.”
말씀대로 사는 삶이 시작
– 그때부터 하나님의 손에 이끌린 삶이 시작된 거군요.
“네. 그 학교에서 강의를 한주, 두주 듣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여러 강사님들의 말이 결국 다 똑같은 이야기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복음이면 충분하다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강의를 하시는 분들이 주님 한분 때문에 모두들 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였어요. 그 모습이 너무 강렬했어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한 걸음씩 걷다보니 나도 말씀대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복음 안에서 아멘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이전에 내가 믿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얼마나 진리가 아니며, 흔들리고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 붙들려 있었는지 알게 됐어요.”
– 기도하면서 어려운 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매일 새벽에 한 시간씩 기도24·365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참 기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최근의 일이 한 가지 떠오르네요. 복음선교관학교 훈련과정 중에 서울의 양화진과 경기도의 순교자기념관을 방문하는 역사투어 시간이 있었죠. 그날은 새벽부터 출발해서 하루 종일 일정을 가지는 정말 피곤한 날이거든요. 그런데 바로 그날이 로고스 기도모임이 있는 날이었던 거에요. 내심 ‘오늘은 하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밤 늦게 광주에 도착했는데, 지부장님께서 어김없이 기도하자고 그러시더라고요. ‘아, 하는구나.’ 했죠.(웃음) 또 아주 간혹이었지만 새벽 3시나 4시에 끝나야 할 기도가 좀 빨리 끝나는 날이 있었어요. 그러면 이상한 기쁨이 제 안에 있을 때도 있었어요. ‘아, 이런 날도 있네?’ 하는 생각말이예요. 저의 이런 연약함을 하나 하나 들추어내 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꿈이 없던 제게 선교완성의 꿈을 주셨어요
– 기도를 하면 그런 어려움이 달라지나요?
“안타깝게도 기도를 하면 할수록 나로서는 안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질 기도를 하다보니 기도한만큼 경건한 삶에 대한 열망은 커져가더군요. 말씀과 기도에 생명을 걸게 하시고, 주님이 인도해주시는 방향으로 초점을 집중하게 되었어요. 예전 같았으면 일어나는 상황에 쉽게 반응했을텐데 이제 그렇지 않아요. 우리 세대에 그날의 영광을 보겠다는 이 어마어마한 비전을 품고 기도 하다보니 이제는 주님께 삶을 위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계세요. 주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삶으로 저를 이끌어 주시고 있어요.”
– 최근에 누리는 은혜들을 나눠주세요.
“사실 어릴 때 저에게 꿈이 없었어요. 그래서 되는대로 살았는데,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나에게 꿈을 좀 주세요.’라고요. 물론 그때는 내가 멋있어지고, 좋은 무엇을 가지게 되는 그런 꿈이었죠. 그때 하나님은 전혀 응답이 없으셨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바로 이 꿈을 주시기 원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세대의 선교완성. 이 꿈을 품게 됐어요. 이제 꿈이 생겨서 정말 살맛나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나눠주세요.
“저희 기도모임의 주제가 청년들과 캠퍼스의 회복이에요. 이 영역의 부흥이 결국 세계복음화와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사실 기도모임에 오셔서 기도하시는 분들은 할머니, 저와 같은 가정주부 같이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여요. 그렇지만 저희가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 이 꿈에 사로잡혀 있다고 확신해요. 지금 저희는 철야기도가 익숙해요. 기도중에 조시는 분은 이제 아무도 없어요. 훈련이 되어 버렸나봐요. 기도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걸 느껴요. 바라기는 이런 마지막 부흥을 앞당기는 ‘건초더미 기도회’와 같은 기도모임들이 곳곳마다 일어나 주님이 속히 오셨으면 좋겠어요.” [GNPNEWS]
J.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