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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은 없고 단식뿐인 가자지구의 라마단

▲ 사진 : 김시므온 제공

[현장 리포트]

기자가 원고 작성 중인 3월 12일 밤, 요르단의 라마단 첫째 날이 저물고 있다. ‘타들어 가는 더위’라는 말에서 유래한 아랍어 라마단(Ramadan)은 “무더운 달”이란 뜻으로, 이슬람력의 아홉 번째 달 이름이다. 달의 공전을 기준으로 이슬람력의 1년은 태양력(그레고리력)보다 약 11일이 짧아, 해마다 라마단 달의 날짜가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다.

이슬람 권역에서 경전인 꾸란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처음 계시된 때가 라마단이었다고 믿고 이 달을 신성시한다. 이 기간에는 흰색 실과 검은 실의 색깔을 구별할 수 있는 해 뜨기 전부터 해 질 때까지, 물을 비롯한 모든 음식을 입에 대는 걸 일체 금한다. 아픈 사람이나 여행 중인 사람은 금식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지만 불참한 그 기간만큼을 다른 때에 보충해야 한다.

이슬람을 종교로 믿는 신도인 ‘무슬림’들은 라마단 동안 금식, 즉 먹고 마시는 일상의 박탈적 고행을 통해 알라신이 그들에게 허락한 모든 것에 대한 신적 주권을 고백하고, 감사를 회복하려고 한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이해하게 되고 그 고통에 동참하며, 이슬람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며 무슬림이라는 자신의 신앙 정체성을 확인하며 영적 활력을 되찾는 달이다. 한마디로 라마단은 한 달간 이어지는 무슬림들의 영적 부흥회 시간이다.

이렇듯 라마단은 이슬람 신앙의 중심이자, 무슬림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근간이 되는 ‘이슬람 신앙의 다섯 기둥’ 중 하나이다. 참고로 이슬람의 다섯 기둥은 금식을 포함하여 아래와 같다.

*신앙고백- "알라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이 문구를 확신하며 암송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무슬림이 된다.

*기도- 하루에 다섯 번(새벽, 정오, 오후, 일몰, 어두워진 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하여 기도한다. 이슬람의 기도는 꾸란의 첫 장(수라)을 낭송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선- 무슬림은 수입의 일정 부분을 도움이 필요한 지역 사회 구성원에게 기부한다.

*순례- 건강과 재정이 허락하는 모든 무슬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적어도 일생에 한 번은 방문해야 한다.

금식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여 신에게 가까이 가려는 목적의 라마단 금식이 일몰 기도와 함께 마쳐지게 되면, 지인을 초대한 가운데 온 가족이 모여 ‘이프타르’라고 부르는 만찬을 나눈다.

금식 때문에 음식 소비량이 당연히 줄어들 것 같지만,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억압됐던 식욕을 해결하고 낮의 주림을 대비하기 위해 밤과 새벽에 평소보다 더 많이 먹기 때문에, 1년 동안 음식 소비가 가장 많은 달이 라마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이슬람 공동체의 거대한 종교적 축제 같은 라마단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당시 하마스의 공격으로 그날 약 1200명이 사망하고 253명이 인질로 잡히는, 제2차 세계 대전의 홀로코스트 이후 가장 많은 유대인이 희생당한 날이 됐다. 이에 이스라엘 군은 오늘까지 가자지구에서 공중 폭격 및 지상전을 통해 하마스 근거지인 북쪽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했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금까지 3만 9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가자지구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전쟁 초 이스라엘의 폭격과 지상 공격이 집중되어, 이집트를 거쳐 가자지구 남부를 통해 들어오는 구호물자 전달이 거의 중단된 가자지구 북부의 상황은 처참하다. 국제아동보호기구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은 북부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새와 동물의 먹이, 나뭇잎은 물론이고 쥐가 먹다 남긴 음식물 찌꺼기까지 씻어 먹고 있다고 지난달 밝혔다.

미국 ABC 뉴스는 전체 가자지구 주민 중에 적어도 4가구 중 1가구(50만 명 이상)가 극심한 식량 부족과 기아로 인한 재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지난 1월에 발표했다. 그곳 주민들은 폭탄이 아니라 굶어서 먼저 죽어갈 판이라고 호소한다고 했다.

가자 지구 남부 주민들도 굶주리긴 마찬가지다. 피난민이 몰려 있는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는 대부분의 식품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라마단 기간에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만 금식을 한다. 그런데 라마단을 맞은 가자 주민 다수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군의 봉쇄로 극한 굶주림 속에서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라마단 금식이 아니라 강제 단식이 됐다고 한다.

가자지구 북부로 향하는 구호 트럭에 대한 이스라엘의 검문 및 구호품에 몰려드는 굶주린 주민들에 대한 발포, 치안 악화 등으로 구호품의 북부 육로 수송이 어려워지자 미국, 요르단 등은 항공기로 구호품을 투하하고 있다.

라마단 이전에 휴전을 기대하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은, 무조건적인 인질 석방을 요구하며 이번 라마단을 라파 공격 시한으로 선언한 이스라엘의 거부로 중단됐다.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7일 가자지구로 끌고 간 인질 250여 명 중 현재 가자지구에는 130명의 인질이 남아 있고 이 중 99명이 생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의 궤멸을 목표로 남부 도시 라파로 진격할 것이라고 단호히 밝혔다. 하마스도 휴전을 위해서는 자국의 인질들 석방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렇듯 상호 물러섬 없는 대치 속에 가자지구에는 거의 매일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인한 유아들의 사망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가자 정부 언론 사무소는 가자 주민의 90%가 난민이 되었다고 밝혔다.

퀸 라니아 요르단 왕비는 3월 11일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5개월간 이스라엘 군의 공격과 봉쇄 이후 자신의 눈앞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가는 어린 자식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하는 가자지구 부모의 고통을 구구절절 호소하며, 즉각적인 휴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간곡히 촉구했다.

라마단의 계절이다. 푸짐히 마련한 음식 앞에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이 다정히 둘러앉아 금식이 끝났음을 알려 줄 모스크의 저녁 기도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정겨운 이프타르(공동 저녁 식사)가 사라진, 금식은 없고 단식뿐인 가자지구의 라마단이다. [복음기도신문]

김시므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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