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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7천만 기독교인 종교적 박해 위협 증가

▲ 인도와 나이지리아에서 종교적 박해 증가. 사진 : 유튜브 채널 CBN News 영상 캡처

인도의 7천만 기독교인이 박해에 직면해 있고 가자지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기독교인들은 어디에 소망을 두어야 할까? 라이언 데니슨 박사가 데니슨포럼의 기고문을 통해 소망의 원천을 제시했다.

지난 2월 말, 가자지구에서 식량 배급을 둘러싼 혼란스런 상황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발포하면서 1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주말 기대했던 휴전 성사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었고 최근 이 전쟁에서 일어난 이번 비극 때문에 그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가자지구의 위기, 이스라엘은 경고사격사상자는 뒤이은 공포와 약탈 결과

자세한 사항은 아직 덜 밝혀졌으나 이스라엘 관리들은 병사들이 경고 사격만 가했으며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이에 뒤따른 공포와 약탈의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알아우다 병원(Al-Awda Hospital)의 원장 대행인 모하메드 살하 박사(Dr. Mohammed Salha)는 자기 병원에 입원한 부상 환자 161명 대부분이 “총에 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에 대한 대부분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진실은 파악하기 어렵고 궁극적으로는 국가들의 대응 방식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인도의 종교적 박해 소식이 잘 들리지 않는 이유

그러나 국가들이 믿고 싶어 하는 이야기에 진실이 희생되는 곳은 중동 외에도 있다. 국가들이 한편에서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로,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및 이들 국가의 리더십에 더욱 동조하는 국가들로 점차 뚜렷이 분리되는 가운데 인도가 그런 곳이다.

인도는 이런 중립적 모습을 유지하며 번성했다. 인도는 비록 중국 및 러시아와 함께 브릭스(BRICS) 그룹(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일부로 러시아 석유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국가 중 하나지만 기술 및 무역의 영역에서는 미국의 중요 파트너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인도는 개발도상국, 특히 글로벌 남부 개발도상국들이 서구 또는 동양의 대안 모델로 삼는 나라가 됐다. 아마 그것이 이 나라에 종교적 박해가 극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세계 지도자들이 비교적 침묵을 지켜온 이유일 것이다.

인도는 기독교 금지 국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직면한 박해를 추적하는 단체인 순교자의 소리(The Voice of the Martyrs)는 전 세계의 박해 국가를, 신앙에 적대적인 국가를 우려 지역, 기독교 거부 국가(hostile), 기독교 금지 국가(restricted)의 세 분류 가운데 하나로 분류한다. 인도는 최근 중국과 이란 등과 함께 순교자의 소리에서 가장 심각한 박해 국가로 분류되는 “기독교 금지 국가”로 들어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도의 몇몇 주에서 힌두교도의 개종을 막는 정책들이 시행되어 왔다. 이런 법은 목사들과 교회 개척자 및 전도자를 표적으로 삼도록 사용돼 왔다.

·힌두교 신앙을 떠난 인도인들에게 재개종 의식이 때로는 강제로 시행되고 있다.

·힌두교 아래에서 인도를 “강제 통합”해 “정화”하려는 극단주의 단체 증가하고 있다. 인도는 대략 80%가 힌두교이고 10%는 무슬림이며 5%는 기독교인이다. 인구는 약 14억 명이고 인도 국경 내 기독교인은 약 7000만 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고려할 때 현지 기독교인들은 국가의 이러한 새로운 지시에 어떻게 반응해 왔을까?

인도에서 우려되는 4가지 문제

최근 “크리스채니티투데이(Christianity Today)”의 기사에서 수린더 카우르(Surinder Kaur)는 인도에서 목회하고 있는 4명을 포함한 종교의 자유 옹호자 6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을 통해 외부인이 인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여부와 그것이 인도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그리고 비록 그들의 응답은 어느 정도 상이했지만 몇 가지 주제가 계속 제기됐다.

·국가적 지시로 나타난 것보다 지역별로 상황이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다.

·정부는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문제시되는 추세 가운데 많은 것들을 실제 부과하지는 않았더라도 부과 가능하도록 허용해왔다.

·인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최근 시행된 정부 지시에도 소수 종교에 대한 정부의 접근 방식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마주한 고통을 잘 인내하기 위한 희망과 힘을 찾고자 할때 하나님과 그들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

특히 여기서 마지막 포인트는 인도 국경의 훨씬 바깥에 있는 기독교인에게도 해당한다.

궁극적인 희망의 원천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도 희망을 찾는 방법들을 모색해봤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을지와 그분의 사랑이 우리 성취나 환경에 근거하지 않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이 어떻게 고통 가운데 희망을 찾을 수 있게 하는지와 우리 임무는 그 희망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임을 살펴봤다.

오늘 이 점을 상기하며, 이 세상에서 우리의 궁극적 희망의 핵심은 천국에 훨씬 나은 것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을 제안한다.

이 희망으로 우리 삶의 중요성이 평가절하되거나 우리가 삶을 항해하면서 직면하는 시험들이 최소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 희망은 우리가 어려움들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게 해주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내하는데 필요한 힘을 줄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바울은 자기를 부양하기 위해 일했고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투자했다.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기회들에 그는 진실로 감사했다. 그러나 이중 어떤 것도 그의 희망, 정체성, 목적의 원천이 되지는 못했다. 그는 그의 목표를 앞으로 다가올 삶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참으로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었고 다른 이들이 그리스도의 능력과 임재를 경험해 주님께로 이끌리도록 도우셨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고 참으로 씨름해야 할 질문은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바울과 똑같이 말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당신의 희망과 꿈은 하늘 집과 이 땅의 집 가운데 어느 곳에 더 집중돼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평화를 알고 그분만이 공급하실 수 있는 희망을 포용하는 방법을 배우려면 그런 희망이 이 세상 집에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 집에 없게 되겠지만 말이다.

오늘 당신은 어디가 집처럼 편안하다고 느끼는가?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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