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단기선교 2년, 실패와 절망 딛고 하나님과 동행을 배우다

▲ 레바논 난민촌에서 만난 아이들. 제공: 이은비

2년간의 단기선교 기간을 마쳤습니다. 때로는 눈 깜짝할 새 빠르게 가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참 더디게만 흐르던 2년, 그 끝을 맞는 이 시점에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우리 마음에 남은 것은 ‘말씀’이고, 그로 인해 고백하고 싶은 것은 ‘감사’입니다.

이 모든 여정이 시작되었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우리 ‘깊음’ 팀은 뿔뿔이 흩어져 출국하게 된, 전혀 순조롭지 못한 출발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제 마음에는 기쁨과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삶은 진정 행복한 삶일까? 나도 행복한 선교사가 될 수 있을까? 서서히 어둠이 드리우던 그때, 저를 붙들어 주신 것은 바로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3)

형통, 하나님의 함께하심. 하나님께서 나와 늘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되새겼습니다. 그렇게 홀로 17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레바논은 경기도만 한 작은 크기지만,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회의 땅입니다. 마침내 팀원 모두 한자리에 모여, 현장에 적응하고, 사역을 배워가는 분주한 나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와 교회 사역으로 시리아 청소년들을 만나고 또 가정에 방문하여 관계를 쌓았습니다. 눈이 참 아름답고 미소가 어여쁜 사람들, 한낱 이방 사람인 우리를 늘 반갑게 환영하며 친구로 맞아주던 정 많은 사람들. 그들을 보며 테러, 고문, 무장단체 등 부정적인 선입견들은 무너지고, 단 한 번도 중동권 무슬림을 품어본 적이 없던, 작고 좁았던 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하루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미혼모 가정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전쟁 중인 고국을 떠나 낯선 이방 땅에서 남편들에게 버림을 받고, 촛불 하나 켠 어둑한 방에서 젖먹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던 그들은 고작 저보다 한두 살 많았습니다. 협소한 난민 텐트에서 북적이는 식구들을 위해 수업도 빠지고 궂은일을 하던 친구, 치료를 못 받아서 철심이 다리에 박힌 채로 절뚝이던 친구, 언제 위험한 순간이 찾아올지 모르는 심장병을 평생 앓아온 친구….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고통이 가득한 가슴 아픈 현실 앞에, 나 같은 사람이 감히 기쁨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사치스럽고 죄스러웠습니다.

이렇게까지 척박하고 외로운 삶을 사는 이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을까? 이렇게 고되고 가난한 삶에 복음만으로 충분할 수 있을까? 그 텐트 안에서 마주한 질문의 깊이와 농도는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 질문에 진리는 외치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에게 충만한 기쁨의 소식이 되심을, 복음은 배부른 종교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그 자체이심을 말입니다. 복음이 들려지는 곳이라면 직접 찾아가셔서 죽음을 뒤엎는 생명이 되시고, 모든 아픔을 안아주시려는 아버지의 마음, 비로소 하나님이 왜 그토록 모든 영혼에게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시는지 깨달았습니다.

선교의 불모지로 악명이 높다는 중동 한복판에서, 한때는 무슬림이었으나 이제는 복음이 생명이 되어버린 그들과 한목소리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사실이 가슴 터질 듯 벅차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가장 높으신 예수님이 가장 낮은 내게 오셨듯, 영혼들과 허물없이 어울릴 때에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던 아이들, 그 짧은 순간 얼마나 큰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저는 기쁨과 행복을 알려주고 사랑으로 섬기러 왔는데, 오히려 늘 사랑의 섬김을 받고 기쁨과 행복을 배워가고 있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롬 12:15~16)

참으로 생생하게 이 말씀을 경험했던 순간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숨가쁘게 달려온 6개월 동안 서서히 곪아가던 문제들이 하나둘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난생 처음 맡는 직임에 실수하고 혼나고 자책하기를 반복하며 어느덧 순종이 아닌 긴장과 두려움만 남았고, 끼니도 챙길 틈 없이 바쁜 사역들을 감당해 내며 첫 감격과 열정은 바닥나 몸과 마음이 지쳐갔습니다.

열악한 시설과 불안한 치안, 육체의 질병,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는 슬픔까지 약해질 대로 약해진 마음을 좀처럼 추스르지 못하고, 그 어느 것으로도 공급받지 못하는 우리의 영혼은 엉망이었습니다. 처음이니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라기에는 너무 심각하게 깊어가는 갈등 속에 결국 혼란과 절망만 남은 채 첫 선교지였던 레바논을 급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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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바논 난민촌에서 만난 아이들. 제공: 이은비

소심한 순간이 모여 용감한 순종이 되다

우리 팀은 잠시 팀 동료의 부모님이 계시는 중앙아시아 K국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상처, 그리고 실패와 어려운 마음을 내려두고, 오랜만에 말씀과 기도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무엘서와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일생은 매우 험난했지만 아무도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험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다윗의 마음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고, 하나님은 바로 그 마음 중심을 보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집요하리만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며 순전한 정금으로 단련시키시는 이유는, 당신의 마음에 합하게 빚어내셔서 비로소 함께하기 위함입니다. 지난 1년 동안 혼란과 절망에 괴로웠지만, 이로써 높아진 내 마음이 꺾이고 단련되었다면, 지나온 모든 길은 실패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평탄한 길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남들은 뭐라 해도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험난한 골짜기를 묵묵히 지나온 다윗처럼, 억울한 옥살이를 끝까지 견뎌낸 요셉처럼, 다시 실패를 딛고 일어나 하나님을 따르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비탈지고 굽이치는 길이 펼쳐지든지, 함께하실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가 선 모든 곳은 형통임을 믿기에, 우리는 다시 행복한 선교사의 걸음을 뗐습니다.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도록 회복과 재정비를 마치고 다시 레바논으로 출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로 새로운 가디언 선교사님과 새로운 사역지에서 힘찬 출발을 하였고, 이삿짐을 옮기고 살림을 마련하며 베이루트에 정착했습니다. 레바논한인교회 동역자들을 곁에 붙여 주시고, 시리아 청소년들과 함께 예배하는 유스(Youth) 모임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평일에는 영어학원에 다니며 레바논 청년 친구들을 사귀어 진지한 대화도 나눠보고, 산동네 난민 어린이 영어교실도 함께 섬겼습니다. 뜨거운 여름에는 수차례 복음캠프를 섬기는 은혜도 누렸습니다. 요리, 청소, 산책, 헬스 등 소소한 일상을 공동체와 함께하는 기쁨도 허락하시고, 비자여행으로 다양한 해외 국가들을 경험하는 선물 같은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던 중 험하고 가파른 길에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중동에서 외국인으로 또 여자로 살며 늘 겪는 긴장과 불안, 전기와 수도는 늘 말썽,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폭우와 천둥, 한밤중 지진도 겪고, 아무 의미 없이 더디게만 가는 듯한 날들에 의욕 없이 무기력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잘 가고 있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그분의 계획과 뜻을 따라가기가 너무도 벅차서 다 그만두고 싶은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형통의 비밀을 알았기에 잠시 휘청거려도 아주 넘어지지 않고, 잠깐 숨죽여 울다가도 절대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나온 2년은 적당히 살 만해서 산 것이 아니었고, 악으로 깡으로 버텨낸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각오하고 다짐했던 대로 훌륭한 모습은 아니지만, 부르셨다고 말씀하시니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결국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지겨울 만큼 반복되는 씨름에서 매번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렇게도 의심하고 불신하던 순간들이 모여 굳건한 믿음과 신뢰로 걸어온 여정이 되었다니, 그렇게나 겁에 질리고 주저하던 소심한 순간들이 모여 가장 용감한 순종이 되었다니 말입니다. 당시에는 다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온 순간들, 아프고 부서지고 깨어졌던 그 모든 조각들을 사용하셔서 마침내 이루신 아름다운 작품을 보게 됩니다. 너무도 섬세하고 절묘한 하나님의 솜씨로 각자의 삶 가운데 완성된,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새내기 선교사들에게 약속하셨던 바로 그 말씀들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처참한 실패와 절망을 겪으며 하나님과 멀어진 듯했던 2년, 돌아보니 이제껏 내 인생 중 가장 깊고 진한 하나님과의 동행이었습니다.

2년 전, 캄캄한 창밖을 보며 이 삶은 진정 행복한 삶일까 질문했던 저는 이제 분명한 확신 가운데 고백합니다. 때로는 골짜기도 지나고 험한 비탈도 오르겠지만,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의 모든 걸음은 형통합니다. 내가 그리는 것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가시는 하나님, 그분의 놀라운 뜻과 계획을 신뢰하며 걸어가는 것은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지요! 이 아름다운 진리가 직접 경험되어 오늘의 고백으로 올려지기까지 그간 함께 울고 웃으며 기도로 손 모아주신 사랑하는 하늘 가족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모든 찬양과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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