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라는 단어는 만만치 않은 말입니다. 아주 광범위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면 위로의 사람이 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위로한다고 하면 그 위로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위로의 사람인지 아닌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깊이 나아가고, 주님의 마음이 흘러 들어오고, 우리 생각이 주님의 마음으로 흘러가 조정되고 새롭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이 깊이 들어옵니다. 그럴수록 본래 사람, 원형으로 돌아갑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어떤 것이 새 사람인지 선명하게 보게 됩니다.
그때 마음에 커다랗게 맺히는 열매가 애통함입니다. 원형이 회복될수록 애통함이 생깁니다. 주체적으로 생기는 애통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말미암아 생기는 애통함입니다. 하늘의 기쁨이 엄습해 오면 우리 안에 애통함도 밀려옵니다.
“너도 그렇게 살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저 사람도 이 하늘 기쁨을 맛보고 살아야 하는데” 하는 그 애통함을 가진 사람이 사랑으로 위로하게 됩니다. 위로는 우리의 선한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원형이 회복됨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기쁨은 어떤 조건, 채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그 애통함이 사랑함으로 드러나고 그 사람은 주변을 위로하게 됩니다.
이사야 40장 말씀의 배경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 때 활동했습니다. 남유다가 100년 후에 망하고 또 160년 후에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귀환합니다. 약 260년 뒤의 일들을 바라보며 예언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 부럽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얼마나 좋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공동체에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도 위로의 말씀을! 그래서 깨끗해지고 거룩해지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만질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환경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나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동일하게 같은 소원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깨끗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들으면서 자라는 믿음도 있지만, 하나님의 감흥과 생각이 임해서 시대를 위로하고 가정을 위로하고 공동체를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근사한 사람이 이곳에 많아지면 이곳이 근사해지고, 이곳이 근사해지면 멋진 예수님의 모습이 보일 것이니 하늘 영광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260년 후의 일을 이야기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닥칠 문제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100년 뒤에 망하고, 160년 동안 식민지 백성으로 삽니다. 백성들의 선민의식은 희미해졌습니다. 없는 믿음을 쥐어짜내며 살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망했고 남유다마저 망했습니다.
선민이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믿음에 대한 회의와 의심이 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회의가 생겼을까요? 망해서 그런 회의가 온 것입니까? 아니면 회의감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망하게 된 것입니까?
우리도 우리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믿음 생활하고 예배드리고 경건 생활하면서 우리 것을 놓지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만 붙잡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치시려고 마음먹으면 우리에게 어려움이 오기도 합니다.
남유다가 망했을 때 선민들에게는 회의감이 밀려 왔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선민인데, 어떻게 선민이 바벨론에게 질 수가 있지, 하는 회의를 갖습니다.
12절부터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자랑하시며 드러내십니다.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섭리하시는 하나님!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은 망했습니다. 섭리하시는데 우리 민족에게는 섭리하지 않으시나? 그런 회의가 백성들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투정과 비슷합니다. 남들은 잘 되는데 왜 나에게만 인색하신 줄 모르겠다는 우리의 투정과 닮았습니다. 다른 사람 모두에게는 관심이 있으신 것 같은데 나에게는 관심이 없으신 것 같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하나님을 잘 알고 분별하고 믿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이제는 앞뒤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본체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부이십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열렸다면, 하나님을 ‘아만’하는! 두 팔이 모두 하나님께 매달려 있고 다리가 대롱거리는 그 아만! 그것이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너무 부럽습니다. 하나님의 ‘ㅎ’자만 나와도 ‘하나님’까지 믿어버리는 그런 마음이고 싶습니다. 앞뒤를 안 가리고 그만큼 신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 이 갈증 채워주세요, 이 마음에 오셔서 당신께서 부으신 사랑 경험하고 싶어요!” 이 간절함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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