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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기독 난민 12만 명… 도움의 손길 기다려

▲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탈출해 방공호에 머물고 있는 아르메니아 난민들. 춡처: JAMnews 캡처.

[월드포커스]

지난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분쟁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있는 아르메니아 주민 12만여 명이 난민 신세로 전락했다. 2023년 9월 20일 분리독립을 요구하던 아르메니아게 자치세력이 아제르바이잔에 항복한 이후, 아르메니아 주민들이 2500년 동안 살던 영토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떠나야 했다. 사방이 아제르바이잔에 둘러 쌓여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지정학적 한계로 인해 자주 공격을 받던 이곳에 대한 아제르바이잔의 노골적인 군사공격으로 이제는 완전히 이곳을 탈출해야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제기독연대(Christian Solidarity International, CSI)는 미국이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인종청소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CSI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의 공격적인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실존적 위협을 받고 있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을 위해 일어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 지도에서 붉은색을 둘러싼 하늘색 안의 구역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이다.

아르메니아는 1992년 한국과 수교했으나, 우리와 눈에 띄는 교류가 없어 이같은 아르메니아 사태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르메니아는 한국의 자동차, 기호식품, 의류 등을 수입하고, 한국은 아르메니아의 아연광, 비금속광물 등을 수입하는 정도로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는 십자가 사건 이후, AD 313년의 로마보다 이르게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나라다. 국가 차원에서 가장 빠르게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라는 점에서 기독교인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 땅을 주목하고 있다. 국제 선교단체 바나바에이드는 이들 아르메니아 난민들이 거주할 집과 생존할 생계 수단을 마련하며 긴급 구호를 지원하고 있으나,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은 미미하다고 밝히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곤경에 무관심한 서방국가

아르메니아 민족은 수천 년간 코카서스 지역에 살며 여러 세기에 걸친 대량학살과 추방에서 살아남아 지역 내 몇 안 되는 기독교 국가 중 하나로 남았다. 아르메니아인들은 현재 일어나는 ‘평화 노력’이 자신들의 국가를 지도에서 지우려는 어둡고 오래된 의도를 은폐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공격받고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 별로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서구권이 아르메니아의 곤경에 무관심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지역의 이상한 동맹국들과 관련이 있다. 아르메니아는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 가하는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와 이란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 특이한 두 후원국 모두는 현재 다른 곳에서의 분쟁, 즉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때문에, 이란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하마스를 지원하면서 주의가 분산되고 있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아제르바이잔이 지역 내 주요 석유 수출국이며 러시아 석유에 대한 제재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이 가진 자원 가치가 더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석유 40%를 아제르바이잔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양국은 이란에 맞서 오랫동안 협력과 동맹을 유지해왔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최근 공격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이스라엘산 무기를 사용했음을 알고 경악했다.

지난 9월 아제르바이잔군이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진입해 아르메니아 민족 12만 명이 아르메니아로 도망친 직후 앤터니 블링컨(An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은 아제르바이잔이 가까운 미래에 아르메니아 자체를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나고르고카라바흐를 침공했어도 아제르바이잔은 별 문제가 없었기에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아르메니아 영토를 차지하고 터키와 힘을 합쳐 ‘범터키’ 연방을 만들겠다는 그의 오랜 목표에 대한 용기를 얻은 듯하다.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차흐(Artsakh)라 부르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침공하기 훨씬 전부터 알리예프 대통령은 아르메니아를 ‘서부 아제르바이잔’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터키 대통령과 함께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아르메니아 남부를 통과하는 육상가교, 즉 그가 말한 ‘잔게주르 회랑(Zangazur Corridor)’ 건설을 점점 더 고집하게 됐다. 이를 통해 에르도안과 알리예프는 자국의 영토를 그 지역과 연결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큰 문제점이 있다. 그들 입장에서는 아르메니아가 여전히 길을 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르메니아 왕국은 한때 흑해에서 카스피해까지 뻗어 있었다. 수메르인과 아시리아인이 바로 인접해 있고 전설적인 아르메니아 궁수들은 로마군의 골칫거리이던 시기였다. 301년 국왕 티리다테스 3세(Tiridates III)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 국가가 됐다. 이후 여러 세기 동안 아르메니아인들은 중세시대 박해, 오스만 제국의 대량학살, 스탈린주의 소련으로의 추방을 겪었지만 동일한 역사적 땅에서 정체성을 유지한 채 살아남았다.

아제르바이잔과 터키가 자신들의 공통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오구즈 투르크인(Oghuz Turks)은 8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이 지역에 도착했다. 1918년 이전에는 현재의 아제르바이잔이 이란의 한 지역이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아르메니아 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은 모두 소련에 흡수됐으며 현재 코카서스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수의 분쟁은 자신이 정복한 그룹들을 분할 및 추방했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정책에서 기인하고 있다.

“아르메니아를 통과하는 잔게주르 회랑은 터키의 오랜 국가 목표였다.”

스탈린은 고대 아시리아인들의 행보를 모방해 민족 집단들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반란 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강제 이주를 시행했다. 남코카서스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은 당시 타타르족(Tatars)이라 불리던 투르크족 지배 지역에 살게 됐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인의 조상인 투르크계 유산을 갖던 사람들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수천 년간 통치하던 지역들로 옮겨졌다. 이는 양측 모두 조상의 땅에 대해 역사적 영유권이 있음을 의미한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아제르바이잔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은 비교적 평화롭게 함께 살았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고 찾아온 새로운 자유는 구소련권 전역에 걸쳐 국가적 정체성에 다시 불을 붙었다. 기원전 189년부터 아르메니아 왕국의 한 지방이던 아르차흐(나고르노카라바흐)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은 자신들의 자치 지역을 만들고자 싸웠다. 그들은 1991년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며 이는 1992년 전쟁으로 이어졌다. 아르메니아의 지원으로 1994년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2020년 새로운 전쟁이 발발했다. 여기서 아제르바이잔이 승리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땅을 되찾았다. 그러자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와 나고르노카라바흐 사이의 라친 회랑(Lachin Corridor)을 계속 열어 두고자 2000명의 병사를 평화유지군으로 배치했다. 하지만 2022년 1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주목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이 기회를 잡았다.

그 이전에는 아르메니아에서 구불구불한 17km짜리 산악 도로인 라친 회랑을 따라 나고르노카라바흐 국경까지 가는데 25분이 소요됐다. 2022년 12월 12일에 아제르바이잔은 라친 도로에 갑자기 검문소를 설치해 이 지역에 식량과 보급품이 유입되는 흐름을 막았고 이 봉쇄는 9달동안 계속됐다. 다가오는 굶주림과 전 지구적 무관심으로 인해 이곳 주민은 사기가 저하됐다. 2023년 9월 19일 아제르바이잔군이 아르차흐공화국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에 진입하자 그곳 정부는 재빨리 항복했으며 거의 모든 인구가 피난을 떠났다. 화합과 평화를 약속한 것과는 달리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고위 지도자 8명을 체포하고 이들을 테러 혐의로 구금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의 군사공격 이후 터키 에도르안 대통령은 알리예프 대통령에게 아르메니아인들 귀에는 불길하게 들리는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계속 당신 곁에 있겠다. 우리는 남코카서스에서 안정적 평화와 번영을 이루겠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안정을 위한 모든 조치를 함께 기획하고 추진하겠다.”

두 대통령에 따르면 평화와 번영은 잔게주르 회랑에 달려있다. 회랑은 건물의 복도처럼 서로 다른 영토나 행정구를 연결하는 긴 통로를 의미한다. 이 회랑은 아르메니아 남쪽 국경을 따라 뻗은 채 중간에 아르메니아 검문소 없이 아제르바이잔과 아제르바이잔 영토인 나흐치반(Nakhchivan) 자치공화국을 서로 연결해준다. 나흐치반은 아르메니아 남서부 국경을 따라 위치하며 이란의 북쪽 국경과 맞닿아 있다. 역사적으로는 소련 시대에 건설된 철도가 두 지역을 연결해왔고 2021년 회담에서는 아르메니아가 해당 노선을 재건하겠다는 용의를 표명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 말을 해당 회랑에 대한 약속이라고 지적한다. 아르메니아는 덜 열정적이었고 특히 아제르바이잔과 터키가 은근한 위협을 가할 때는 더 그랬다. 알리예프와 에도르안은 잔게주르 회랑이 경제적으로 유익하다고 제시하지만 많은 관찰자들은 이 제안을 더 많은 아르메니아 영토를 아제르바이잔 통제 하에 두기 위한 구실이라고 생각한다.

아르메니아에서 활동하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저널리스트 앨리슨 타흐미지안 뮤즈(Alison Tahmizian Meuse)는 “터키에서는 경제와 이념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고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아르메니아를 관통하는 범터키 회랑은 세속정부가 집권하든 이슬람 정부가 들어서든 변함없이 터키의 오랜 국가목표였다.”고 말했다. 뮤즈는 이러한 육상 회랑이 건설되면 러시아 및 이란과의 경쟁에서 아시아에 대한 터키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이며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의 석유에 더 쉽게 접근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제 아제르바이잔이 탈환한 땅에서 아르메니아의 유산을 지우는 군사작전을 계속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지난해 9월 군사 공격이 있은 지 겨우 2주 만에 스테파나케르트(현재 칸켄디로 불림) 지도를 재발간했는데, 여기서 거리 이름을 아제르바이잔어로 바꿔놓았다. 이제 한 거리는 터키군 장교이자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 주요 선동자인 엔베르 파샤(Enver Pasha)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알리예프가 잔류 희망자들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했음에도 이 땅을 벗어난 아르메니아 주민들은 이러한 세세한 일들을 잊지 않았다.

코카서스 헤리티지 워치(Caucasus Heritage Watch) 9월 보고에 따르면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역사적 교회들과 수도원들이 현재 위협받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2020년 휴전 이후 자국 통제하에 들어온 땅에서 이와 유사한 기념물들을 파괴했다. 모흐레네스(Mokhrenes) 마을에 있는 성 사르기스(St. Sargis) 교회는 아제르바이잔이 이러한 행위를 금지하라는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을 위반해 2022년 3~7월 사이에 파괴됐다. 코카서스 헤리티지 워치는 위성 이미지를 분석해 시간 경과에 따른 풍경 변화를 모니터링한다. 연구원들은 다른 지역에서 교회들이 완전히 파괴되고 모스크로 대체됐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소련 붕괴 이후로 아제르바이잔이 통치해온 나흐치반 지역에서는 1997~2011년 사이에 역사적인 아르메니아 수도원, 교회 및 공동묘지 110개 가운데 2곳을 제외하고 모두가 파괴됐다.

아르메니아인들과 국제 사회는 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제이콥 퍼슬리(Jacob Pursley)는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온 난민을 돕는 예레반(Yerevan)의 교회인 아르메니아 국제성서교회(International Bible Church of Armenia)의 미국인 목사다. 그는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의 방식을 하마스 같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방식에 비유하며 그들이 고고학과 역사를 무기화한다면서 “그들은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에게 그 모든 땅이 자신들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분쟁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대륙 횡단 지역인 코카서스에 있으며 조지아와 러시아 남부 일부도 포함한다. 소련은 1923~1991년 이 지역을 지배했다. 이 지역에서 일어난 분쟁의 역사를 기간별로 살펴본다.

1991~2020 | 아르차흐로도 알려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소비에트 시대 주로 아르메니아 민족으로 구성된 자치지역이었다. 하지만 그 영토는 국제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 인정받았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아르차흐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아제르바이잔과 전쟁이 촉발됐다. 아르차흐는 아르메니아의 지원에 힘입어 1994년 승리하고 국경을 확대했다. 하지만 주요 재정·군사 지원국이 된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어느 나라에서도 독립을 공식 인정받지 못했다.

2020~2023년 | 2020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에 아르차흐를 둘러싼 전쟁이 다시 발발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승리를 달성하면서 아르차흐가 차지했던 영토 상당 부분을 되찾았다. 전쟁 후 아르차흐가 아르메니아에 접근하는 유일한 길은 러시아 평화유지군 감독 하에 있던 폭 3.1마일(약 5km)의 라친 회랑을 통해서였다. 2023년 9월 아제르바이잔은 군사 공격으로 아르차흐가 통제하던 잔여 영토를 장악했고 이로 인해 거의 모든 인구가 아르메니아로 도피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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