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TGC 칼럼]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든 신비

▲ 사진 : Ray Bilcliff on Pexels
한 문장이 삶을 바꾸기도 한다 “한 문장이 우리 마음에 너무 강력하게 박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들 때, 바로 그 한 문장이 끼친 효과는 엄청날 수 있다.” ―존 파이퍼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지나친 낙관주의와 절망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무엇보다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주었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지만, 인간 사회가 뿌리째 뽑히지는 않았다. 이것이 그 나라의 신비이다.

어린 나이에 회심한 나는 교회에서 자랐다. 강해 설교를 들었고, 주일학교의 부직포 그림들을 보면서, 또 여름 성경학교와 여름 수련회의 성경 구절 빨리 찾기 시합을 통해서 내 신앙의 기본기를 다졌다. 할머니의 권유로 나는 십 대 때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고, 기독교 대학에 들어가서는 부전공으로 성경을 공부했다. 그래서 이십 대가 되었을 때, 나는 꽤 많은 성경 구절을 알고 있었고, 누구에게나 성경을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구원의 메시지를 완전히 꿰고 있었다.

그러나 목회를 준비하는 중에 나는 그 어디에서도 만난 적 없는 특별한 문장을 만났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예수님이 스캔들이 되셨을 때

조지 래드(George Ladd)가 쓴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신약신학)을 어떤 계기로 읽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또 내가 그 책을 다 읽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음 문장―이 문장이 들어있는 장 “하나님 나라의 신비”는 확실하게 다 읽었다―은 내 상상력에 불을 붙였고, 하나님과 성경 그리고 역사와 내 삶에 대한 이해를 영구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구약성서와 유대 묵시문학에서 예언된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시대의 끝을 가져오며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불의한 자들의 멸망으로 인간 사회를 무너뜨릴 것이다. 예수님은 인자와 하나님 나라가 영광스럽게 나타나기 전에, 선과 악이 뒤섞인 사회가 계속되는 현시대의 한가운데에 하나님이 다스릴 미래 시대의 권세가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축복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을 창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이미 도래했다고 단언하신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지만, 인간 사회가 뿌리째 뽑히지는 않았다. 이것이 그 나라의 신비이다.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94)

이 글을 읽던 그 순간까지만 해도, 나는 성경을 이미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라는, 다소 정적인 기록으로만 읽었다. 중요한 성경 속 내용을 많이 알고 있었지만, 더 큰 줄거리,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계획,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하는 구속 사역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었다. 그런데 래드는 내가 미처 모르던 부분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담긴 역동성과 진보성을 보여줌으로 나를 흥분시켰다.

이 구절을 읽기 전까지 나는 예수님의 사역이 얼마나 놀라운지, 또 동시에 얼마나 듣기 거북한 소리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가 기적을 행하고 또 기존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도전한 것은 특별했다. 하지만 그런 기적과 대결은 어릴 때부터 들어서 너무나 익숙했다. 그런 내가 하나님 나라의 신비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래드이다.

래드의 눈을 통해, 나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그러나 완성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선언이 동시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듣기 거북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마지막 때에 드러날 웅장하기 이를 데 없는 하나님 나라를 작고 숨겨진 겨자씨에 비유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그물, 겨자씨, 누룩에 관한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래드의 가르침은 이미(already) 도래한 나라, 아직(not yet) 오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로부터 무려 이십삼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날의 흥분과 만족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보다 훨씬 큰

래드의 가르침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에 관한 가르침은 예수님의 초림 속에 담긴, 역사를 뒤흔든 진짜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말 그대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미래에 있을 새 창조를 확실히 보장하는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마지막 때를 이루는 첫 성취의 문을 여셨다.

그때까지 내가 성경을 읽은 방식은 거의 다 개인 차원의 적용을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고, 그런 예수님의 사역은 철저하게 예수님과 나 사이의 문제로만 국한되었다. 그러던 내가 비로소 예수님의 사역이 가진 우주적 의미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맥락에서 예수님의 새로움이 내 가슴을 때렸다. 또한 만물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절정을 이루시는 예수님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깨달음은 내가 지성과 마음을 다해 예수님을 더욱 높이도록 했다.

이미 시작된 종말론이 가져다준, 래드로 말미암은 지적 자극은 깊었고 오래 지속되었다. 그런 자극 덕분에 나는 신학교에서 성경 신학의 풍부함에 푹 빠질 수 있었고, 종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예수님이 어떻게 성취하셨는지에 초점을 맞춘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삶의 이유를 알게 되다

신약성경과 하나님의 구속 사역, 그리고 그리스도의 중심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을 넘어, 래드는 내 삶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중복되는 시대와 관련한 래드의 유명한 다이아그램―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겹치는 “현재 시대”와 “다가올 시대”의 선―을 보면서 나는 내가 살았던 곳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마치 “당신이 있는 위치는 바로 여기입니다”라는 표시가 붙은 쇼핑몰의 지도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삶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이런 깨달음은 하나님이 왜 나를 의롭다고 하시고 또 성령께서 지금도 나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지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건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세가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왜 여전히 죄와 고통스러운 투쟁을 해야만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왜 내 속의 일부는 인터넷을 통해서 성적인 이미지를 접하고 싶어 하고, 또 다른 일부는 그런 나 자신과 필사적으로 싸우는가? 겹치는(overlap) 세상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한다. 그것은 또한 내 삶에 영향을 미쳤던 고통의 슬픔도 설명했다. 아버지를 낫게 해달라고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왜 아버지는 지금도 휠체어를 타고 있는가? 왜 불안은 지금도 나를 때때로 마비시키는가? 겹치는 세상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한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하나님 나라가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한 건 아니지만, 죄와 성화를 이해하는 데에 꼭 필요한 강력한 틀을 제공했다. 그것은 지나친 낙관주의와 절망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무엇보다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주었다.

삶의 목적

래드를 만나고 이 년 후, 나는 고든 콘웰 신학교의 학생이 되어 있었다. 맑고 세찬 바람이 부는 어느 날, 나는 대서양 옆 매그놀리아의 바위 위에 앉아 리처드 헤이스(Richard Hays)가 쓴 신약의 윤리적 비전(The Moral Vision of the New Testament)에서 다음 구절을 읽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교두보, 즉 하나님의 능력이 세상에 침투해 들어오는 장소이다. 바울의 모든 윤리적 판단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진다. … 두 시대 사이의 시간을 충성되게 산다는 것은, 신앙 공동체 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변화의 능력을 지나치게도 너무 적게도 주장하지 않으며 도덕적 분별의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신약의 윤리적 비전, 58-59쪽)

이 구절도 내게는 삶의 목적을 보여주었다. 래드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게는 매우 중요하고 내 인생을 형성하는 글이 되었다. 내 속에 목사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교회를 하나님의 “종말론적 교두보”로 또한 현재를 변화시키기 위해 말세에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쓰시는 권능의 초점으로 이해하는 것은 목사라는 소명을 더욱 중요하고 절실하게 만든다.

윤리와 종말론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과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나라에서 사는 삶) 자체가 우리의 일상생활 방식을 형성한다는 나의 확신을 헤이즈가 한 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 존재가 가진 중간적 본질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하나님의 능력은 이미 동이 튼 말세의 새벽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졌지만, 완성된 새 창조는 여전히 미래이다)이, 그리고 현실이 가진 실질적이고 윤리적이고 또한 일상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도록 하는 데에 내 인생을 바치는 것이 내게는 삶을 가장 잘 사용하는 길이다.

나는 헤이즈의 책 뒷장에 이렇게 썼다. “이것은 내 삶의 목적이다.”

삶을 바꾸는 신비 나누기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찾은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미래에 관한 화려한 묘사를 통해 지금 이 땅에서 고통받는 신자를 격려하는 책이다. 나는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좀 더 잘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

결국 나는 길지 않은 책을 한 권 썼다. 지극히 선한 미래의 새 창조가 결국에는 우리의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미래의 새 창조를 바라며 조바심을 내면서도 동시에 인내하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서, 그리고 흥분되고 좌절되는 긴장 속에도 무한한 가치가 있음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신학교 학생을 가르칠 때, 이미 시작된 종말은 항상 반복되는 주제가 되었다. 십사 년의 목회 사역을 통해 나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성경의 줄거리,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의 우주적 중요성, 그리고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성취에 근거해서 미래의 새 창조가 온전히 우리 소유가 되었음을 실제 삶에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아들이 되어 예수님이 확보하신 권세와 축복을, 부분적으로나마 ‘이미’ 맛보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더 많이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더불어 그의 은혜로, 하나님이 품으신 모든 계획을 만족시키는 은혜의 절정이신 그리스도를 더 많은 사람이 풍성하게 누리는 데에 작지만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A Mystery Made Sense of Me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나라에서 사는 삶) 자체가
우리의 일상생활 방식을 형성한다

스티븐 위트머 Stephen Witmer | 스티븐 위트머는 Pepperell Christian Fellowship의 목사다.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며, 소규모 교회와 목회자들을 섬기는 단체인 Small Town Summits의 공동 설립자로 섬기고 있다. A Big Gospel in Small PlacesEternity Changes Everything의 저자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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