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기독교(62)
현대 기독교에서 각광받고 있는 영성 전문가 가운데 안셀름 그륀이라는 독일인 신부가 있다. 현재 그의 영향은 국내에도 크게 미쳐서 주요한 영성 훈련 전문가와 내적 치유 전문가들이 그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1990년대 큰 인기를 얻었던 헨리 나우웬보다 더 적극적으로 인간의 내면 치유에 앞장서고 있다.
그륀은 두려움과 우울증이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정신 질환이라고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그는 철학과 심리학 전문가인데 특히 카를 융 이론을 적용하는 데 탁월하다. 그런데 그가 내세운 영성 치료란 것이 실상은 성경이 아닌 심리분석학적 이론을 토대로 한 자기 내면 치료다. 그는 불교적 선(禪) 묵상을 하고 있으며, 그와 비슷한 관상(觀想)기도를[1] 기독교에 퍼뜨리고 있다. 그의 이론과 주장은 명백히 뉴에이지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 안에서도 그의 사상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는 특히 성령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현존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의 영성으로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과격하고 비성경적인 주장은 로마 가톨릭 안에서 이단시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이론대로라면, 성령의 보편적 현존은 보편적 구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안셀름 그륀이 이렇게 어긋난 영성을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는 여전히 최고다. 목사의 설교로 말하자면, 그는 ‘들리는’ 설교를 할 줄 안다. 그의 글들은 마치 법정 스님의 그것과 같이, 사색적이며, 인간적이고,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소재를 주로 다룬다. 그의 책 제목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실용적 주제를 잘 다루는지 알 수 있다. 『황혼의 미학』, 『우울증 벗어나기』, 『다시 찾은 마음의 평안』, 『내 안의 기적을 만나라』, 『자기 자신 잘 대하기』, 『참 소중한 나』, 『내 나이 마흔』 등. 그의 가르침은 매우 단순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다음의 글을 보라.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 불쾌하고 부당하며 이기적이고 잔인하더라도, 그런 생각에 놀라지 마십시오. 타인의 죽음을 소망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조차 불안해해서는 안 됩니다. 미움과 시기, 질투와 증오를 품었다고 해서 질책하거나 자신이 악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건 단지 우리를 불안과 자책으로 몰고 갈 뿐입니다. 가장 좋은 반응은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래, 내 마음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나는 그의 죽음을 원해. 다른 사람을 때려눕히고 싶은 욕망을 느껴.” 이처럼 마음속의 생각을 허락하세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 한 우리는 그 생각과 싸울 뿐입니다.[2]
그륀은 나쁜 생각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나쁜 생각이 들더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괜찮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과연 성경적 가르침인가? 예수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것은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 행위를 하기 전에 그 동기와 근본부터 하나님은 다 따지신다. 하나님은 행동 이전에 먼저 중심 곧 마음을 살펴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륀은 그런 악한 생각이 들 때 자책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아직 악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너무 과도한 죄책감은 사람을 억압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위로 죄악이 나오기 전에 자신의 마음속에 그런 죄성과 악심이 있음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마음으로만 짓는 악한 생각은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은 건강한 죄 의식마저 무시하는 과도한 주장이다. 이런 면에서 그의 주장은 당연히 인본주의적이고, 무(無)신학적이다.
그의 생각은 종교를 강박 노이로제라고 여긴 프로이트와 비슷한 것이며, 인간의 악한 본성을 너무 억압하면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융과 동일한 것이다. 그륀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영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올바른 영성이 아니다.
자기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
도시 문화가 발달하면 종교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던 사회학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율은 높아지고 있지만[3] 종교와 종교인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것이다. 현대인은 종교까지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삼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신앙 행태에 대해 유진 피터슨이[4] 정확하게 지적한 바가 있다.
북미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소비자 중심의 신앙이다. 미국인들은 하나님을 하나의 생산품 정도로 여긴다. 자신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더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존재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한 시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미국인들은 마치 소비자처럼 가장 좋은 제품을 찾기 위해 쇼핑올 한다.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거의 인식하지도 못한 채 거래를 시작하고, 최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외관으로 하나님이란 상품을 포장한다.[5]
기독교 국가의 대표 격인 미국은 동시에 자본주의의 대표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은 이 두 가지가 교묘하게 혼합된 영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자본주의 기업을 상징하는 맥도날드를 빗대어 미국에서의 교회를 맥처치라 부르기도 한다. 참으로 이 시대에는 종교의 수단화와 기독교의 상품화가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진리를 찾고, 절대자를 따르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구하고, 더 많은 돈을 추구하며, 거기에 세속적 쾌락까지도 함께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기독교든 뭐든 아무 종교라도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원하는 것을 갖게 해주면서도, 내 삶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이 최고 인기 있는 종교가 된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성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하였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와 돈과 쾌락을 더 사랑하는 이 시대의 영성에 함몰되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목회자들이 성공 지향적 목회, 혼합 영성 목회, 영성을 빙자한 심리 치유 목회를 추구하고 있고, 성도들은 그런 목회자를 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높이고, 성경주의가 아닌 인본주의를 따르는 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복음기도신문]
[1] 묵상기도를 좀 더 깊이 있게, 사물의 이치와 원리틀 찾아내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
[2] 안셀름 그륀, 『머물지 말고 흘러라』, 21세기북스, 125쪽
[3] 유엔 도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화율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높아져서 2050년이면 세계 도시화율이 70퍼센트에 이를 것이라 한다.
[4] 목사, 신학자, 문학가, 영성 전문가로서 국내 목회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독교 저술가 가운데 한 명이다.
[5] 유진 H. 피터슨, 『성공주의 목회 신화를 포기하라』, 좋은씨앗, 56쪽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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