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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기 칼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Unsplash의 Andrew Moca

송준기 목사는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의 순종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동안 그같은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담아냈다. 이 칼럼은 그의 저서 발췌와 집필을 통해 선교적 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28,29)

미련한 자

세상이 볼 때 교회는 바보 같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 최대의 가치로 붙잡고 생명을 건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교회를 이뤄가고 있다.

만약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미련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미련한 복음을(고전 1:18,23), 더욱이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으로(고전 1:21) 어떻게 전할 수 있겠는가? 복음을 자신의 지혜의 말로 꾸미고 바꾸면 당장은 좀 똑똑해 보일 수 있어도 교회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방법대로 교회를 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담아야 하는 순간들을 어떻게 피해 가겠는가?

우리는 바보 같은 일들을 바보 같은 방법으로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세상의 공격을 순결과 지혜(마 10:16)로 대처하며, 점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골 1:24)을 체득해나가는 사람들이다.

또한 똑똑한 세상 앞에서 가장 미련한 복음을 가장 미련한 방법으로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람들이다(고전 1:22-29).

당신은 물로 뛰어들 사람인가?

제자화를 통해 교회를 시작하고 진행하는 것은 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모험이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셨을 때 베드로는 외쳤다.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 비상식적이고 미련한 요청을 했다. 그런데 그는 물 위를 걸었다.

그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다. 비록 나중에는 물에 빠졌지만 베드로에게는 작은 믿음이라도 있었다. “믿음이 작은 자여”(마 14:31).

믿음으로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를 보며 내게는 이런 질문들이 생긴다(송준기, 《무서워마라》, 규장, 2016, 188,189쪽).

‘얼마나 안전한 배를 만드는가’보다 물 위를 걸어보기를 더 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그 배를 장식하고 꾸미는가’보다 물로 뛰어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님이 “오라”(마 14:29)고 하실 때, 안전한 배를 떠나 풍랑이 이는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만약 믿음이 부족해서 물 위를 걸을 수 없더라도, 적어도 수영이라도 해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르고 싶은 자는 누구인가?

수영을 하든, 물 위를 걷든, 적어도 배 안에서 안전하게 죽기를 기다리고 싶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배를 꾸미느라 정신이 팔려서 물로 뛰어들 절체절명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어정쩡한 제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배인가, 풍랑이 거센 바다인가? 어차피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배보다는 풍랑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한 번의 풍랑을 이겨낸 배가 또 다른 풍랑을 이겨낼지도 모르고, 그 배가 모든 풍랑을 이겨낸다 하더라도 언젠가 제자는 죽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안전한 배 안에서 안전히 죽기를 계획하기보다는 죽기 전에 “오라”는 명령을 듣고 그것을 따르고 싶은 자는 누구인가?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 14:27)는 음성을 듣고 싶은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이 세우시는 교회

남자어른 5천 명이 공짜 도시락을 먹은 적이 있다. 그 다음날, 사람들은 예수께 열광하며 다시 모였다. 그러나 그들은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그 모임의 목적이 예수님이 아니라 단지 또 다른 공짜 밥에 있었기 때문이다(요 6:26). 예수님은 그들에게 고작 식사 한 끼를 얻어먹기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을 위해 일하라고 하셨다(요 6:27). 그러자 군중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요 6:28),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요 6:29)

교회이자 그 주인이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시키신 일이 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일’을 처음 신앙을 가질 때 한 번만 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단이다. 우리는 회개를 지속하며 믿음으로 날마다 자라간다. 예수님을 믿을 때 주께서 직접 교회를 세우신다(마 16:18).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이룬다(고전 1:2).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이긴다

예수님은 아무 교회나 이긴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다. 큰 교회나 작은 교회가 이긴다고 하시지도 않았다. 성공하는 교회나 실패하는 교회가 이기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교회가 이긴다.

승리자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라고 명령하시지 않고 제자화를 명령하셨다(마 28:19,20). 교회는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다고 말씀하셨다(마 16:18). 교회는 제자화의 결과물이며 예수님의 사역이다. 그래서 제자화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예수님의 교회인지 아닌지를 가른다.

교회의 정도(正道)는 ‘제자 만들기’에 있다. 제자화의 장소는 성도가 있는 모든 곳이다(행 1:8). 교회는 삶의 현장에서 동진(同塵)한다. 흰자가 노른자를 품어 함께 달걀을 이루듯, 성도는 세상의 품에서 선교와 함께 교회를 이룬다. 먹고 마시며 울고 웃는 가운데 하나님나라가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실행된다.

그것은 ‘선교적 교회’나 ‘3년 뒤에 졸업하는 세미나 과정’ 같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몸으로 진행하는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들어찬 삶 덩어리이자 열매 묶음이다.

위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의 제자들을 만든다. 그들이 자신의 제자를 만들지 않는 길은 위임에 있다. 제자화는 세대 전이가 특징이다(딤후 2:2). 이를 위해 위임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위임은 희생으로 얻은 영적 리더십을 적묘(適苗)를 찾아내서 이식하는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강한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다. 그것은 최상의 권위를 쪼개 사랑으로 맡기는 예수님의 방법이다. 큰 희생과 오랜 돌봄의 끝에 찾아오는 달콤한 휴식이다.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방법이자 예수님을 섬기는 길이며, 제자화 사역과 교회 개척의 핵심이다.

그 위임은 3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보여주기’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간 제자들과 밤과 낮을 함께 지내시며 모든 사역을 보여주셨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위임하려면 먼저 보여줘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매사에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랑의 관계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다 보여주는 관계는 사랑 안에서만 가능하다.

2단계는 ‘함께하며 지켜봐주기’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함께 진행하셨다(마 9:11, 15:32, 26:20,36,40). 제자들은 홀로 사역하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분과 함께했다. 본 것을 실행할 때 그분이 옆에서 지켜봐주시고 코치해주셨다. 위임하려면 함께 해야 한다. 리더가 앞서 보여준 것을 제자들이 실행하도록 하고, 옆에 있어줘야 한다.

3단계는 ‘떠나기’이다. 예수님은 떠나셨다(요 16:7, 행 1:9). 그들에게 천국 열쇠까지 맡기시고 떠나셨다(마 16:19). 위임의 종료는 떠남이다. 그래야 제자들의 손으로 제자화하기가 제대로 시작된다. 전도와 제자화를 진행하다 보면 영적 리더십이 생긴다.

그것은 보여줌과 동행을 통해 커진다. 그러나 떠남 없이는 위임이 완성되지 못한다. 배가(倍加)는 떠난 후에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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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임의 3단계’ 사진: ‘끝까지 가라’ 캡처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려는 마음가짐(maintenance mentality)을 용인하지 않는다_최동규, “선교적 교회 개척의 의미와 신학적 근거”, <선교신학 제28집>, 2011, 265쪽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끝까지 가라(도서출판 규장)>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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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기 | 총신신대원 졸. 웨이처치 담임 목사.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을 통해 순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그동안의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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