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TGC 칼럼] 하나님 없음의 유혹

▲ 사진 : Jeremy-Perkins on Unsplash

유혹하면 보통 마음을 끌어당기는 특정한 태도와 행동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유혹받는 게 뭔지 잘 안다. 분노를 터뜨리는 것, 음란한 환상에 탐닉하는 것,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또는 내가 당한 일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그러면서 연민에 빠져서 쓰라린 자아의 뿌리를 키우는 모습 등이다.

유혹이라고 하면 보통 죄를 생각한다. 또한 이기적인 충동을 떠올린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진리로 죄와 유혹에 맞서 싸우기를 소망한다.

간과된 유혹

특정한 죄에 대해서 선하고 경건하게 저항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가 행여라도 정작 훨씬 더 크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유혹, 이기심의 더 깊은 근원이자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심각한 유혹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이 유혹은 다른 모든 죄악의 중심에 있으며, 개인 차원의 죄나 사소한 태도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바로 하나님 없음의 유혹이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또한 하나님에 관한 특정 성경 가르침을 부인하는 영적 또는 종교적 사람들에 관한 것도 아니다. 나는 하나님을 일상생활과 삶의 중심에서 밀어내는 삶, 그래서 우리의 창조주를 아예 언급하지 않고 살고 싶어 하는 유혹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지만 그는 부차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자 저자를 내가 직접 쓰는 이야기의 각주로 축소한다.

이런 유혹을 “하나님 없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그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현실 대부분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나님 부재

점점 더 세속화되는 사회에서 이 문화를 정의하는 것은 죄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재이다. 우리는 인간 중심의 세계를 건설하고, 하나님을 주변으로 몰아낸다. 그래서 하나님은 삶의 가장자리 여기저기를 떠돌며, 필요할 때 치료를 공급하거나 고난 받을 때 위로의 원천 정도로만 소환되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게 아니라면, 나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안전하게 안주하며 내 일상에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기를 원한다. 종종 개인적이자 사적 종교라는 감옥에서 하나님을 내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언제나 우리가 만든 조건에 부합할 때이다. 이제 우리는 나를 괴롭히고, 자유를 침해하고, 또 욕망을 방해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안전하다.

이것은 세속 시대의 삶이 직면한 큰 유혹이다. 아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계시하신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편한 대로 만들어 저기 어딘가 내놓은 존재로 인식하면서 살고 싶은 유혹이다.

그리스도인이 만나는 유혹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무관한 것처럼 살아가는 이 현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러나 스포트라이트가 정작 우리를 비췰 때 눈을 가려서는 안 된다. 이 유혹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부재를 당연시하며 사는가? 전능한 ‘내’가 내 생각과 열망의 중심에 있는 진짜 위대한 ‘나’를 얼마나 자주 밀어내는가? 우리의 예배, 모임과 외출, 봉사와 사역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 대한 실제적인 고려가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세속 시대 교회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각종 활동으로 바쁘고 싶은 유혹에 항상 직면한다. 문제는 그 하나님이 사실상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일상적인 기독교 용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기독교 신조를 암송한다…. 단지 기능적 세속주의자로서.

기도하지 않음

우리가 하나님을 잊거나 무시하려는 유혹에 굴복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는 기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라진 기도야말로 내 가면을 벗기고 나의 자급자족 정신을 드러낸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현실 세계”를 권력, 정치, 일과 여가, 심지어 사역의 중심으로 본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 결과 우리는 교회라는 영적 영역과 세상의 거칠고 험난한 영역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을 받아들였다.

한편,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분, 즉 우리가 가진 위대함과 자립이라는 환상을 벗겨내시는 하나님은 옆으로 제쳐둔다. 우리가 진짜로 내게 필요한 게 뭔지 안다면, 그래서 나를 부르신 분을 의지하지 않고는 길이 없음을 진정으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조용한 절망 가운데에서 그분이 함께하심을 갈구할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선하심을 맛보고 또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하얀 불빛 같은 거룩하심과 함께 다가오는 부드러운 손길의 신선함을 경험하게 해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하나님을 옆으로 밀어내기

세속 시대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가져다준 가장 치명적인 유혹은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주변으로 밀어낼수록 우리는 더욱 더 중심 무대에 선다. 이제 중요한 건 오로지 인간의 활동이다. 우리의 목표와 열망. 우리의 전략과 기술. 우리의 목적과 계획. 영원하신 분이 단지 보조 역할에 그치기에, 우리는 이제 영원이란 관점을 잃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정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데, 그것들은 이제 아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 숨겨져 있다.

뜨거운 기도의 부재로 드러나는 하나님 밀어내기, 이것은 확실히 우리 시대가 직면한 가장 큰 유혹이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The Temptation We Most Often Overlook

트레빈 왁스 Trevin Wax |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제보 및 문의: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 기사

20241218_Creation
[TGC 칼럼]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새 땅’이다
1218re
[김종일 칼럼] 2024 세계 이주민의 날에 생각하는 한국 교회의 사명과 역할
alex-shute unsplash
[GTK 칼럼] 진리가 무엇이냐?
pexels-241216-man-attention-listen
[TGC 칼럼] 아플 때까지 듣자

최신기사

미 학교 총격, 2021년부터 급증…건수·희생자 10년새 4배
[TGC 칼럼]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새 땅’이다
“복음캠프 이후, 복음을 살아내는 삶이 시작된 것 같아요”
[김종일 칼럼] 2024 세계 이주민의 날에 생각하는 한국 교회의 사명과 역할
베트남 가정교회 목회자, 총격으로 심한 부상
미성년자 젠더 치료의 만행을 고발하는 미국인들... 피부 괴사, 패혈증, 정신적 고통 시달려
[오늘의 한반도] 우리나라 개신교 비율 20%... 무종교 51% 외 (12/18)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yh-AKR20241218121300009_01_i_P4
미 학교 총격, 2021년부터 급증…건수·희생자 10년새 4배
20241218_Creation
[TGC 칼럼]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새 땅’이다
310_5_1_mission_1(1068)
“복음캠프 이후, 복음을 살아내는 삶이 시작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