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최요나 칼럼] 말더듬이 인생

AI 제작. DALL-E.

소리전쟁 1

초등학교 다니던 언제부터인지 ‘말더듬’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생각하는 말과 표현이 나의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막상 말을 하려고 하면 턱턱 막히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급하게 말을 하려고 하다 보니, 막히게 돼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말더듬의 증상은 점점 심해져 갔다. 어릴 때부터 시작된 말더듬 증상이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영향을 주게 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가장 두려운 수업 시간이 있었다. 그것은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 한 사람씩 시켜서 책을 읽게 하는 수업이었다. 수업 시작 전부터 초 죽음이다. 나의 맥박과 심장박동수는 급격히 뛰고, 호흡은 거칠어졌고, 선생님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자세를 낮추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보려고 애쓰는 나의 모습이 참으로 애처로웠다.

요나 선지자로 인해서 지중해 바다가 요동을 치고, 배가 가라앉게 되자 사공들은 자신들이 섬기던 신(god)의 이름들을 불렀는데, 나 또한 수업 시간만 되면 어린 나이에 온갖 잡신들의 이름을 불렀다. 이 문제만 해결해 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이 어려움만 지나가게 해 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할 정도로 말더듬 증상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학교 수업 시간은 무척이나 큰 고통의 시간이었다. 특히 앞에 나와서 발표하거나, 책을 사람들 앞에서 읽어야 하는 날에는 깊은 모멸감과 수치심 그리고 비웃음을 참아내야 하는 삼중고를 감내해야 했다.

학교를 가지 않기 위해 꾀병을 피우기도 하고, 이리 저리 동네 주변을 맴돌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학교를 매일 빠질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아침에,.바,..바,..바,..박,..”

말을 더듬거리며 읽는 내 모습도 싫었지만, 함께 수업을 듣고 있던 친구들도 한심하다는 듯이 나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그 상황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옆에서 키득대며 웃기도 하고, 수업이 끝나면 똑같이 흉내를 내고 놀리는 모습이 나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고통이었다. 똑같은 단어와 음절의 반복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특이한 몸의 행동들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눈의 시선을 다른 데 두고 진정시키려는 시도였다. 어느 순간 말더듬을 회피하기 위해 나의 생존 본능은 문장들을 서로 바꾸기도 하고, 단어를 다른 것으로 대치하기도 하면서 말을 더듬고 있다는 내 모습을 감추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말을 더듬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환경적인 요인, 심리적인 요인, 언어적인 요인, 정서적인 요인 그리고 유전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한다고 하지만, 언어 장애인 것이 분명한 질병의 일종이다. 말을 더듬는 인생을 살게 되면서 형성된 나의 정체성은 다분히 소극적이며, 내성적이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든 뼈아픈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웠던 시간은 ‘책을 읽는 수업 시간’이었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말더듬이 인생이 우리 사회에 필요할까?”
“말더듬이 인생이 사람 구실은 하고 살까?”

부모님들의 한숨과 걱정을 뒤로 하고,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나는 이 땅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말더듬이 인생을 반겨주지도 않을뿐더러,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에도 이러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말을 더듬고 시선을 잘 맞추지 못하고, 눈을 심하게 깜박이며 같은 음절과 단어를 반복적으로 하고, 대명사를 자주 사용하면서 단어를 도치시키는 말더듬이의 인생을 나는 참으로 부끄러워하였다.

“어떻게 말을 더듬으면서 설교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말을 더듬으면서 찬양 인도를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을 사용하실 수 있을까?”

나는 요나 선지서를 읽을 때마다 그 요나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뛰어넘어 나의 삶을 만지시는 ‘하나님의 숨결’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렇게 선지자로서 자격이 안되고, 도망을 치고, 숨어버리려는 삶을 나 또한 살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요나 같은 사람이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을까?”

“어떻게 나 같은 말더듬이 인생이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았을까?”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도 나는 믿음의 근거가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에 있다고 하신 말씀이 내 삶에 실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는 사실을 주님은 지금까지 가르쳐 주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7-28)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소리전쟁(엎드림출판사)>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최요나 선교사 |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 국제오엠 이스라엘 소속. CCC와 YWAM 예배인도자와 순장으로 사역. 저서 <네가 나의 영광을 짓밟았다>(규장 간, 2020)에 이어 최근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살아왔던 ‘하나님의 소리’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2023년 11월 <소리전쟁(엎드림출판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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