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10): 교회에서 여자가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가?

사진: Unsplash의 Priscilla Du Preez 🇨🇦

성경 말씀: 딤전 2:11-12

우리는 지난 몇회에 걸쳐서 교회에서의 남자들의 리더십에 대해서 디모데전서 2장 8절 -15절을 통해서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이제 여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자세히 알아 보려고 한다. 우리가 공부하려는 성경이 가르치는 모델은 오늘날 문화와 크게 다르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는 자라면 그들은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야만 한다.

디모데전서 2장에서 바울은 가르치는 역할을 넘겨 받으려는 에베소교회의 여자들에게 경고했다. 그는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딤전 2:11-12)라고 말했다. 여기서 바울은 여자는 예배 시간에 배우는 자로 규정했다. 전후 문맥으로 볼 때, 그들은 선생이 되어서는 안될 뿐 아니라 배우는 과정 중에서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에베소의 어떤 자들과 같이, 딤전 1:7 참조) 유대 배경을 가진 자들에게는 여자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안되는 일이었다. 1세기의 유대교는 여자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비록 그들은 여자들의 회당 출입을 막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배우는 것을 장려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어떤 종교들도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의 고대 종교들은 여자들이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여자들을 천하게 취급하는 역사적인 사실이 오늘날 페미니즘을 선동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에베소의 여인들이 받던 대우를 살펴보면 왜 그들이 억압받는 자기들의 처지에 지나치게 반응하여 교회 안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한 것에 대한 이유를 부분적으로 알 수 있다. 바울은 여자들의 그러한 행동을 꾸짖었다. 그러나 그는 꾸짖기 전에 여자들이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확실히 했다.

디모데전서 2장 11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여자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일체 순종하므로 조용히 배우라” “순종”은 hupotagē라는 헬라어로 hupotassō 라는 명사로부터 파생된 단어로 그 의미는 “하위 계급이 되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의 문맥 상으로 볼 때 여자들은 예배 중에 조용히 해야 하며 교회 인도자에게 순종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라는 말은 여자의 온화하고 부드러움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성경의 명백한 의미를 왜곡하려고 한다. 그들은 여자들이 온전한 태도만 가지고 있으면 설교도 할 수 있고 가르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여자는 교회에서 무조건 조용히 해야 한다고 정반대로 해석한다. 심지어 옆에 앉은 사람에게조차도 조용히 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둘 다 틀린 해석이다. 전후 문맥을 보면 ‘조용히’라는 말은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바울은 12절에서 그가 말하려는 것을 분명하게 정의한다.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여자들은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조용히 있어야 하며, 권위를 빼앗으려고 하지 말아야 하며, 순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허락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epitrepō 는 신약성경에서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바울이 이 단어를 선택한 것은 에베소교회의 어떤 여인들이 가르치는 것과 권위를 가지기를 갈망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에베소교회와 마찬가지로 어떤 여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남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포함하여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의 유익을 고려하면서 그런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성경적인 방법이 한 가지 있다. 이 방법은 바울이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교회에서 여자들은 목사나 교회의 권위를 금지한다고 분명히 했다.

바울은 또한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것을 금지했다. “주관한다”로 번역된 헬라어, ‘authentein’는 신약 전체에서 이 구절에서만 사용된 단어이다. 어떤 사람들은 ‘authentein’가 권위를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바울이 명백하게 금지한 것을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다. 그들은 “여자들은 가르칠 수 있고, 권위를 남용하지 않는 한 남자들을 주장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이 ‘저자’ 혹은 ‘창시자’라는 뜻이라고 말하며, 이 구절의 의미는 “내가 여자가 남자를 만들었다고 가르치는 것과 주장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라는 뜻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주석가 Dr. George Knight는 그의 신약성경 주석에서 성경 외의 다른 문서에 사용된 ‘authentein’라는 단어는 ‘주관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라고 결론 짓고 있다. Dr. Knight가 조사한 이 단어의 의미로 볼 때 바울이 말하는 의미는 “여자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포함하여 그 어떤 형태의 권위로도 남자를 주관하는 것은 금하는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가르침은 바울이 전에 고린도교회에게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고전 14:33-35)라고 가르쳤던 것을 반복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단지 고린도교회의 문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현대 교회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본문이 말하는 명백한 가르침을 무시한다.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33-34) 이것은 문화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다.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이 말하는 의미가 여자가 말 한마디도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의미는 여자가 교회에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설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에베소교회에서와 같이 고린도교회의 어떤 여자들은 교회의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싶어했다. 특히 방언과 예언하는 은사를 오용 내지는 남용하며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무질서하게 자기를 과시하려던 바울의 꾸짖음을 받았던 이 여자들은 절대로 말을 하지 말아야만 했다. 하나님이 정하는 질서로 여자는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34절)해야만 한다.

여자들도 잘 가르치고 인도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은사들을 교회에서 남자를 주관하는데 사용할 수 없다. 여자들이 남자보다 영적으로 열등하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이 그렇게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가 만드신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셨다. 그리고 그 질서는 하나님의 본성을 보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무시한다면 이 사람은 교회를 약화시키는 자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자이다.

다음에는 여자는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 볼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원문: http://www.gty.org/blog/B130729/feminism-a-reversal-of-biblical-standards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제보 및 문의: 

[관련기사]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1): 성경과 반대되는 페미니즘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2): 리더십의 첫 걸음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3): 하나님이 정하신 인도자의 자격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4): 영적 인도자의 자질: 우선순위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5): 리더십의 본보기 (1)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6): 리더십의 본보기 (2)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7): 왜 인도자의 경험과 평판이 문제인가?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8): 인도자의 마음 가짐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9): 페미니즘에 난장판이 된 성경해석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 기사

20241121_Workplace
[GTK 칼럼] 그리스도인과 직장 I
irises-van-gogh-241120
[TGC 칼럼] 슬픈 이야기가 필요하다
20241120_KBS
[정성구 칼럼] KBS 위에 뜬 무지개
Sam-moghadam unsplash
[GTK 칼럼] 우울증(3)

최신기사

[GTK 칼럼] 그리스도인과 직장 I
“차별금지법 독소조항 담은 제주평화인권헌장 폐지하라”
[고정희 칼럼] 복음이 실제 된다는 것
韓 청년들, “생명 지키는 데 전념하겠다”… ‘제2회 라이프워커 등산대회’ 개최
美 버지니아 부동산 중개인, 결혼 관련 성경 구절 SNS 게시해 면허 박탈 위기
극동방송, ‘나라를 지킨 영웅들’ 위한 ‘2024 가을 음악회’ 성료
파키스탄 북서부, 이슬람 계파 갈등 지역에서 복음 전하다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20241121_Workplace
[GTK 칼럼] 그리스도인과 직장 I
20241121_Jeju
“차별금지법 독소조항 담은 제주평화인권헌장 폐지하라”
japan-bus-241120-unsplash
[고정희 칼럼] 복음이 실제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