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들을 살펴보면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성경적인 가르침은 없어지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도자들에 대한 추문들이 난무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교회의 인도자들은 사역을 앞세워 성적인 범죄와 재정적인 부정을 뒤로 숨기고 있다. 세상은 결국 그들의 위선을 밝혀내어, 성도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복음을 훼손하고, 그리고 주님의 명예를 더럽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기독교 인도자가 흠 잡을 데 없는 깨끗한 성품을 지녀야 하는 것은 절대적인 조건이다.
교회 지도자의 성경이 말하는 기준은 디모데전서 3장에 있다. 바울은 장로가 가져야 하는 몇 가지 도덕적인 기준을 열거했다.
성적인 순결
인도자는 먼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 헬라어 원문은 글자 그대로 표현하면 “한 여자의 남편”이다. 그 구절은 기혼자라는 신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도덕적인 성품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그가 결혼한 사람이라면 그의 아내에게만 헌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 여자와 결혼했으면서도 가능하면 한 여자의 남자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라고 말씀하셨다. 결혼을 했던지 안했던지 간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사역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장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아내만 사랑하고 원하고 생각해야만 한다.(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장로, 감독, 목사는 같은 직책입니다. 역자주)
그러한 자격은 디모데가 사역하고 있었던 에베소 교회에서 특별히 중요한 문제였다. 에베소 교회는 성범죄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대부분은 아니겠지만 많은 성도가 한두 번 정도는 성적인 죄의 먹잇감이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경험한 일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후 5:17) 만일 그러한 일이 그가 거듭난 후에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은 지도자가 되는 데 문제가 되었다. 만일 그러한 일이 그가 지도자가 된 후에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은 지도자가 될 자격을 잃게 되는 일이다.(고전 9:24-27) 이러한 기준들은 오늘날에도 영적인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남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적인 순결은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바울이 이것을 그가 말한 인도자의 자격 조건 중에 가장 먼저 언급한 이유이다. 이 부분은 또한 다른 모든 것들보다도 지도자들이 가장 타락하기 쉬운 영역이기도 하다. 한 여자의 남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어떤 문제들보다 더 많이 남자들을 사역으로부터 물러나게 한다.
너무 지나쳐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는 “절제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절제하는”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네팔리오서’의 의미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며” 혹은 “술을 섞지 않으며”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취한 것과 반대되는 의미이다.
어떤 유대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지위, 본이 되어야 하는 위치, 그리고 영향력 때문에 술을 절제하였다. 사제들은 술을 마시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지 않았다.(레 10:9)
왕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도록 조언한 것은 그들의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잠 31:4-5) 구약 성경에서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특별한 서원인 나실인의 서원은 술을 마시는 것을 금하고 있다.(민 6:2-4)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영적 지도자는 술 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므로 그들은 올바르게 판단하고 성령 충만한 행동의 본이 되는 책임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네오팔리오스’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이유는 술 취하지 말라는 문자적인 개념을 넘어서서 항상 깨어서 주의하라는 것을 비유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장로는 온전한 사고와 바른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을 자기 삶에서 거부해야만 한다. 주석가 윌리암 헨드릭슨은 말했다. “사람의 기쁨은 감각적인 것과 관련되기보다 영혼이 기뻐하는 것과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
술 마시는 것은 어떤 것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의 한 부분일 뿐이다. 과식도 설교자에게 죄이며 종종 비판받을 수 있다. 만일 자기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의 식욕조차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그는 책임감이 없고, 성숙하지 못하며, 지도자가 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도자가 도에 지나치게 절제하지 못하는 약점들은 그의 증언을 약하게 만들고, 효과적인 사역을 훼손한다.
바울의 관점은 분명하다. 영적인 인도자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절제되고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
자기훈련
“절제”해야 한다는 말에 이어서 “신중하며” 혹은 자기훈련을 해야한다. 절제하는 사람은 지나친 것을 피하므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질서있고 훈련된 삶을 살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해야하는 우선순위를 정할 줄 안다.
‘신중한’ 남자는 영적인 것들을 심각하게 다룬다. 이 말이 그 사람이 차갑고 유머가 없는 의미가 아니라 상황에 맞게 유머를 절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지옥을 향해 가고 있다. 이런 세상을 대할 때 신중한 인도자는 경박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확실하고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급하게 판단하지 않으며 사려가 깊고, 일관성이 있고, 주의 깊게 행동한다. 그는 빌립보서 4:8에서 말한 바울의 말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의 마음은 변덕을 부리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다. 그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예수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다.
단정하며
“신중”한 사람은 “단정하고” 질서정연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 의미는 그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조직적이고 질서가 있게 잘 처리한다는 의미이다. 그의 잘 훈련된 마음은 잘 훈련된 삶으로 이어진다.
헬라어 “신중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코이스미오스’인데 이 단어는 ‘코스모스’로 부터 파생된 단어이다. ‘코스모스’의 반대되는 단어는 “혼돈”이다. 영적인 인도자가 하는 주된 일은 행정, 감독, 계획,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혼돈된 삶을 살아서는 안되고 잘 정돈된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계획만 하고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며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사역에 적절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주어진 임무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목표를 체계적으로 달성하지 못하여 사역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한 무질서는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
이러한 특성들이 남자들 사역의 바탕이 되는 것들이다. 그는 효과적인 감독자가 되기 위해서 절제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가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다른 특성들도 있다. 그 특성들은 그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다. 다음에 우리는 그것들을 살펴볼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원문: http://www.gty.org/blog/B130808/personal-priorities-for-godly-leaders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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