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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양 칼럼] 여성성(女性性)에 대한 잡다한 주장들

▲ 하나님이 여성으로 등장해 논란이 되었던 영화 '오두막'의 한 장면. 사진: 다음 영화 '오두막' 영상 캡처

눈먼 기독교(53)

영지주의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인하여, 남성 하나님과 여성 하나님을 주장하기도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 이단 하나님의교회[1] 역시 아버지(남편) 하나님과 어머니(아내) 하나님을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우상 바알과 아세라가 바로 부부 관계인 하나님인 것이다. 어머니 하나님을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 특히, 예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 단 한 번도 어머니 하나님을 언급한 적이 없다.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영지주의의 주장은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을 성부, 성모, 성자로 묘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자리에 성모 즉 신적인 어머니로서의 하나님을 앉혀 놓은 것이다. “비밀서”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신적인 어머니로 언급한다.

(그녀는)…보이지 않고, 순결하고, 완전한 영의 모습(image)이다…아버지-어머니인(matropater) 그녀는 모든 것들보다 먼저 존재했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다.[2]

또한 도마복음에는 신적인 어머니를 지칭하는 것 같은 구절이 있다.

(예수는)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고, 내가 하는 것처럼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소. 왜냐하면 나의 어머니는…그러나 (나의) 참된 (어머니)는 나에게 생명을 주었기 때문이오”라고 말했다.[3]

일레인 페이젤 같은 영지주의 학자는 이 구절을 예수가 자신의 신적 아버지와 신적 어머니를 지상에서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에 대비한 것으로 파악한다. 그뿐 아니라 빌립복음은 성령을 ‘많은 사람의 어머니’로, “히브리복음”은 예수가 ‘나의 어머니 성령’을 말한 것으로 기록한다.

영지주의 문서들이 하나님에게 여성성을 부여한 것이 마치 여성의 권위를 존중하는 가르침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도마복음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제자들)에게 “여자들은 생명을 얻을 자격이 없으니 마리아로 하여금 우리를 떠나게 합시다”라고 말했다. 예수는 “그 여자가 남자들인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영혼이 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지도하여 그 여자를 남자로 만들겠소.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남자로 만드는 여자는 누구나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오”라고 말했다.[4]

예수의 으뜸 제자였던 베드로가 여자들은 생명을 얻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내용은 전혀 신빙성이 없는 기록이다. 그런데 예수가 베드로의 말을 인정하고, 마리아를 살아 있는 영혼인 남자가 되게 만들겠다는 내용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수천 년 전 유대인들의 가치관이 반영된 기록일 뿐이다. 이러한 여성 비하(卑下) 내용은 다른 영지주의 저작물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의 예수에 대해서 기록한 문헌들에서는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아기 예수의 목욕물로 자신의 몸을 씻어 깨끗케 치유되는 기사가 반복해서 나온다. 그런데 이 부정한 병에 걸린 자들은 대개가 여성이다. 또한, 어떤 소녀는 사탄에게 거듭 피를 빨려 송장처럼 되어가다가 예수의 목욕물로 치유되고, 예수의 포대기로 사탄을 물리친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훨씬 더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묘사되는 것이 영지주의 문헌이다. 앞에서 다루었지만, 예수가 자신이 만들어 낸 여자와 성교하는 모습을 보고 기절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신앙이 없다”고 꾸짖는 내용 역시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1] 안상홍증인희 또는 장길자교라고도 불린다. 안상홍이 아버지 하나님, 장길자가 어머니 하나님이다.

[2] 일레인 페이젤, 『성서 밖의 예수』, 정신세계사, 108쪽

[3] 도마복음 101절

[4] 도마복음 114절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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