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빈민 자선 식당에서, 이곳이 빈민 자선 식당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가던 한 아이를 봤습니다. 그 아이는 열 살이 안 되어 보였는데, 산타클로스가 쓸 만한 크기의 패트병, 캔 등의 재활용 쓰레기 자루 두 개를 들고 다니는 중이었습니다.
저와 자선 식당 스태프들은 그 친구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불렀지만, 좀처럼 다가오지 않더군요. 결국 공짜 음식을 준다는 말에 반신반의 하며 들어왔습니다. 현장 식사는 안 하고, 싸 가겠다고만 하더군요. 그래서 ‘절제회 전도팩’과 장난감도 주었습니다.
‘절제회 전도팩’은 금주 금연 팜플릿 + 만화 전도책자 + 껌 세 통이 들어있는 저희 주 무기입니다. 이곳에서 식사하는 빈민들에게는 반드시 집에 갈 때 절제회 전도팩을 나누어 줍니다. 보통은 식사를 다 마치고, 음식 포장을 다 마치고 귀가하려 할 때 주는데, 그래야 집에 가서 찬찬히 읽어볼 수 있고, 괜히 먼저 읽고 버리거나, 혹은 시비 거는 경우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직도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조금만 불편하면 도로 나가 버릴 것 같아 전도팩을 빨리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아이는 음식이나 장난감보다 이 전도팩의 만화 전도책자에 더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글을 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컷 한 컷 열심히 보더군요.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의 페이지를 보더니, 주변의 또래(누나?)들에게 책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확실히 들렸던 말은 ‘예 끄리스짠 까 바그완 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하나님이야!”라는 뜻인데, 두세 번을 그 말을 하며 주변 아이들에게 뭔가 열심히 이야기하더군요. 누나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자, 찾아가서 더 열심히 얘기하더군요.
저는 돈 계산 및 귀가하는 빈민들에게 팩을 나누어 주느라 가까이 갈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간신히 먼 발치에서 사진만 몇 장 찍었지요. 포장 음식이 금방 나오자마자, 그 아이는 원래의 재활용 쓰레기 자루 두 개를 어깨에 메고 떠났습니다. 음식과 전도팩을 소중히 갖고 가더군요. 그리고 왠지, 제가 준 초록색 트럭 장난감은 공손히 반납했습니다. 가져가라 해도 극구 사양하더군요. 그 아이의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참 기쁨이 몰려왔습니다.
이 아이는 원래 기독교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디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이미 배워 알고 있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성령께서 주신 깨달음에 마음이 열렸던 것일까요?
이 빈민 식당은 2년 째 매주 만화 전도책자가 수백 권씩 나누어지는 문서 선교의 중심지입니다. 하지만 상기한 이유로 거의 집에 가기 직전인 사람들에게만 주기에, 저는 그들의 피드백이나 간증을 들을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이 장면을 보고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절제회 전도팩을 줄 때 한 손으로 팩을 주면서 한 손으로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보니 관련 사진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빈민식사 지정헌금에는 보통 조금씩 여유가 있는데 거기에 들어갈 만화 전도책자 관련 지정헌금은 항상 부족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거의 빈민들이 식사하는 사진들 뿐이니까요. 하지만 만화 전도책자는 빈민 자선식당이나 절제회 전도팩 사역뿐 아니라 다른 사역, 다른 장소들에서도 늘 필요하기 때문에 더 간절합니다. 자칫하면 밥은 주면서 만화 전도 책자는 주지 못하는 대참사가 일어날까 염려될 때도 있었습니다.(정말 감사하게도, 아직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빈민식사 지정헌금이 들어오면, 절반은 육의 양식인 음식값으로, 절반은 ‘땅에 쓰신 글씨’로 보내서 영의 양식인 만화 전도책자 지정헌금으로 해 볼까 심각하게 고려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아니라 성령님께 맡기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육체적인 배고픔에 대한 긍휼함을 주셔서 재정을 보내게 되었다면 음식을 사는 게 맞고, 영적인 배고픔에 대한 긍휼함을 주셔서 재정을 보내셨다면 만화 전도책자를 사는 게 맞겠지요. 그걸 제가 임의로 어찌 하는 것은 ‘성물을 바꾸거나 무르지 말라’는 레위기 27장 말씀에 어긋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저하고 헤어진 후, 모처럼 배가 부른 상태에서, 게다가 몇 끼 더 먹을 음식까지 품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집(높은 확률로 굴다리 밑, 텐트 등)에 돌아온 빈민들을 상상합니다. 그들은 오늘의 행운에 기뻐하며, 비로소 절제회 전도팩을 열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만화 전도 책자는 그 집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그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거처에서, 만화 전도 책자는 그들이 소유한 거의 유일한 책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 의해 읽히는 중이겠지요. 그리고 때가 차면, 그중 누군가는 영혼의 눈을 떠서 그들의 창조자를 바라볼 것입니다. 그 소망을 품고, 계속해서 전진하며 나누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복음기도신문]
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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