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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쿰바야 ‘주님 이 곳에 오소서’

▲ 사진: Sincerely-Media on Unsplash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교인들은 스킷 드라마, 찬양, 율동을 준비해서 경연을 벌이는데, 일등 상품이 무려 쌀 한 가마니!!! 다. 그 외 각종 식자재와 기름, 설탕 등 귀한 부식들이 상품으로 걸려있다.

모든 교인에게 성탄 선물을 나눠 주기 위해 마련한 장이다. 리더 선교사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교인들이 그 사랑을 동네방네 떠들고 자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해마다 선물을 준비하신다고 한다.

교인들의 경연을 볼 생각에 신이 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단기 선교로 방문한 한국팀도 경연에 참여하기로 했다면서 당연히 나도 함께해야 한다는 거였다. 현지인들의 경연에 굳이 우리까지? 의아했다.

그런데 의아해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미 팀원들은 무엇을 공연할까? 고민하고 결정하고 소품을 챙기고 대오를 맞추고 있었다.

선교는 많이 다녔지만 내가 공연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연은 재능 있는 청년들의 몫이지 내가 할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꼼짝없이 함께 참가해야 할 상황이었다.

한국팀이 준비한 무대는 ‘쿰바야(kumbaya)’라는 흑인 영가에서 제목을 딴 한국 찬양과 율동이었다.

쿰바야(kumbaya)라는 흑인 영가의 가사는 미국 캐롤라이나 해안의 흑인들이 즐겨 사용했던 걸러어(Guller)로 쓰였다고 하는데,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아프리카 흑인들이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발음한 콩글리시다.

원래 영어 가사인 come by here를 자신들의 귀에 들리는 대로 kumbaya로 발음한 것이니, 쿰바야의 본래의 뜻은 ‘주님 이곳에 오소서’가 되는 셈이다.

성탄 예배에 딱 맞춤인 제목의 찬양과 율동이었지만, 내키지 않은 마음 때문에 은혜로 다가오지 않았다.

몸치. 박치의 나에게는 너무 고역이었고, 순종이라는 핑계로 몰아붙이는 분위기도 싫었다. 더 싫은 건, 이 싫은 감정이 나를 죄책감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 내가 죽자. 내가 죽어서 주님의 영광이 되면….’ 이라고 나를 설득해 보아도, 이다지도 못하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주님의 영광이 될까? 싶었다.

공연의 부담감 때문에 성탄 예배의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게 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싫은 마음이 내려지지 않았다.

기쁨으로 순종하기 위해 처절할 정도로 몸부림쳤다. 누가 보면 십자가 지고 순교하러 가는 줄 알겠지만,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향적인 나에게는 어쩌면 사활이 걸린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신이 났다. 이왕 경연에 참가하는데 일등을 해야 한다!! 며 결의까지 다진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매일같이 기름 부으심의 은혜를 구하며 마음을 다지고 있는 나의 고군분투를 아는지 모르는지 팀원들은 그냥 무대에 오르는 건 너무 평범하니 특별한 무대 의상을 준비하자고 한다.

‘아니 아프리카에서 동양인인 우리가 평범하다고? 그냥 존재만으로 독특한데 무슨 튀는 의상을!!’

겨우 마음을 잡고 무대에 오를 준비가 되어있는 나의 앞에 팀원 한 명이 몸빼바지를 갖고 온다. 티셔츠를 몸빼바지 안에 넣으라고 한다.

온 천하에 드러내야 할 나의 뱃살과 작은 몸빼바지를 잡아먹은 나의 똥꼬는 그 누구에게도 배려받지 못했다.

더 고역인 것은 도수가 없는 선글라스를 낀 탓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을 견디기 위해 잔뜩 긴장한 나의 온몸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워지면서 땀이 비 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아기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가 모인 축제의 자리인데,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껏 기뻐하고 누릴 수가 없단 말인가?

“예수님 축하해요. 이 땅에 오셔서 정말 감사해요. 사랑해요.”

나도 이렇게 마음껏 축하하면서 ‘쿰바야’라는 기쁨의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왜 내 속에는 내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

머릿속은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 대한 책망으로 복잡하고, 겉으로는 만천하에 드러난 나의 뱃살과 바지를 먹은 똥꼬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눈앞은 흐릿하고, 온몸은 땀범벅이라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보였다.

모든 이들이 일어나서 우리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나의 어떠함 따위는 이미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의 뱃살과 바지를 먹은 똥꼬 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창피했다.
겨우 공연을 끝냈는데, 사람들이 앙코르를 외친다.
‘뭐라고? 앙코르? 우린 공연을 한 게 아니고 경연을 한 거라고!!’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아예 쿰바야 노래도 가르쳐주고 율동도 가르쳐 달라고 한다.

미처 뭐라고 할 겨를도 없이 나는 다시 무대에 올랐다. 다시 음악이 들려오자 예배당에 모인 전부가 환호했다.

kumbaya!!
come by here
주님 이곳에 오소서
쿰바야 쿰바야 헤이헤이
우리는 왕의 자녀 사랑받는 어린양.
끝까지 찾으시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우리는 왕의 자녀 두려움 전혀 없네
날마다 순종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리
오예요~ 춤을 추며 오예요 ~주를 찬양
아빠 아버지의 크신 사랑 다 함께 찬양

경연과 경품은 이미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예배당의 모든 이들이 쿰바야 한 곡으로 한 시간을 넘게 춤을 추며 기뻐 찬양을 드리며 온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무너졌다. 너희 부족 우리 부족의 경계도 무너졌다. 한국, 시에라리온의 경계도 무너졌다. 화려한 악기들도, 전문적인 콘티도, 찬양 인도자도 없고, 음정 박자가 틀려도 아무 문제 없고, 뱃살과 바지 먹은 똥꼬 따위 전혀 상관없는.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면서 쿰바야를 부르고 춤을 추며 예배드렸다. 내가 그렇게 하기 싫었던 율동으로, 내가 정말 보이기 싫은 모습으로 말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나의 마음도 무너졌다.

이제야 come by here. 주님 이곳에 오소서. 가 고백이 된다.

“예수님 생일 축하드려요. 감사해요. 이 땅에 태어나주셔서.

이렇게 우리의 기쁨이 되어주셔서.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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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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