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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나를 진정 사랑한다면 지금부터 예수를 믿어주시오”

사진: Ernesto Alvarez on Unsplash

[정전협정 70주년 특별기획]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5)

1951년 2월 15일경 우리 중대는 다시 총공격에 돌입했다. 이 작전에서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삼척을 탈환하고 약간의 시가전을 치르며 적군을 완전히 물리쳤다.

다음날 강원도 양양에 무혈입성하고 오색리 주정골 계곡에서 515고지를 탈환한 후 전방진지를 구축했다. 그때 1연대 의무중대는 오색 약수터를 중심으로 야전용 텐트를 치고 야영 생활을 했다. 당시 이인식 상사는 교육을 받기 위해 후방에 있었다.

부대의 북진이 장기화되면서 오색 약숫물로 밥을 지어 먹으면 몸에 좋다하여 매일 새벽 3시경이면 중대장 연락병은 물론 소대장 연락병들까지 5~6명이 약수터에 내려가 항고에 가득 밥을 지어 직속 상관들에게 드렸다. 다 익은 약수밥은 노랑색과 파랑색이 섞여 연두 빛이 났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람들은 몸에 좋다면 무조건 먹으려는 습관이 있어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오색 약수터를 찾게 됐다. 게다가 중대장님이 내게 베푼 사랑이 어찌나 고마운지 나도 일구월심 중대장님을 정성으로 보필하리라 명심했다.

어느 날 정 상사로부터 중대장이 나를 찾는다는 전갈이 와서 중대장님을 찾아갔다. 조 중사는 이 양이 보고 싶지 않느냐면서 2일간의 외박을 허락하셨다. 마음이 설렜다. 바로 그날 정 상사는 육군본부에 파견 명령이 하달됐다.

그 당시엔 전시 중이어서 외출병도 무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철모에 배낭을 짊어지고 칼빈 소총에 무장을 하고 날아가듯이 주정골을 내려와 이 양 집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이양 집은 이미 불에 타버렸고 집터 위에 삼각형 함석을 씌워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했다. 내가 밖에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안에 계십니까?”

잠시 후 이 양의 부모님들이 문을 열며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조 하사!” 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자, 나의 손을 맞잡고 기뻐하셨다. 그런데 이 양이 보이지 않았다. 물어보니 헌병대에 또 불려 갈까봐 강릉에 피난 중인 작은 아버지댁으로 피신시켰다는 것이다.

과거 인공시대 때 학생 대대장이었던 것을 운운하면서 사상적 조사가 필요하다며 구실삼아 호출해 간 적이 있어 미리 대피했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오히려 이 양은 아군이 진격하면서 학생 대대장을 맡아 전방 장병에게 위문을 다니곤 했는데 무슨 사상적 조사를 한다는 건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당시 양양 사회에서는 이 양의 작은아버지가 일등갑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제가 강릉에 가서 이 양을 데려오겠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헌병 검문소에서 전용차를 이용해 강릉으로 갔다. 강릉 작은 아버지댁에 도착해 이 양을 찾았더니 조금 전에 HID 군속으로 있는 사촌 오빠(이용길, 2010년 미국에서 작고)가 이 양을 군복으로 갈아입혀 양양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곧바로 돌아서서 전용차를 타고 100리길 양양으로 되돌아와 마침내 이 양과 극적인 재회를 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같은 방에서 장래를 설계하며 단꿈을 꾸었다. 이 양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집안은 불심이 대단한 가정이었다. 밥을 지을 때마다 공양미를 떼어 놓고 보름이 지나면 절에서 그 공양미를 가져간다고 했다. 8남매를 키우다가 슬하에 외동딸 하나만을 지키고 사시는 부모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절로 이해됐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따라 사탕 얻어먹는 재미로 교회에 간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때까지 예수님을 믿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목사님만은 거룩한 분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목사님은 거짓말을 절대로 안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이 양에게 어떠한 난관이 오더라도 목숨을 걸고 나를 배신하지 말라며 한 가지 약속을 주문했다.

“나를 진정 사랑한다면 지금부터 예수를 믿어주시오.”

그 부탁이 너무 간절해 보였는지 이 양은 내 손을 잡고 그 약속을 지키겠노라 굳게 언약 했다. 단꿈은 그렇게 빨리 지나고 날이 밝았다. 아침 새벽부터 아버님과 어머님이 부엌에서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부대로 돌아가려고 준비 중인데 어머님께서 인절미 떡을 만들어 배낭에 사각형으로 꼭 맞게 잘라 넣어주셨다.

그리고 큼직한 문어 한 마리를 삶아 별도로 포장해 중대장님과 정 상사에게 전해 달라고 하셨다. 피난 중 너무 신세를 많이 졌다면서 따로 선물을 준비한 거라고 하셨다. 아버님께서는 나 혼자 무거워 가져갈 수 없으니 사촌 오빠와 함께 가라고 하셔서 그와 같이 부대가 주둔한 오색리를 향해 출발했다.

오색리 2km를 앞둔 ‘빨딱 고개’에 이를 때쯤 의무 부대원들과 전방부대원들까지 내려오면서 나에게 빨리 양양 쪽으로 후퇴하라고 소리쳤다. 정신없이 후방으로 달려가다가 병사에게 영문을 물어봤다. 우리 3중대가 인민군에게 포위됐다는 것이다. 아마 그때 나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장병들과 함께 후퇴했으면 앞으로 닥칠 화를 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간 나는 중대장 곁으로 가야 한다고 결심하고 사촌 처남이 지고 온 문어 보따리를 내 배낭 위에 메고 지정골을 지나 고지를 향해 올라갔다. 도중에 인민군의 사격을 받았지만 칼빈 총으로 응사하면서 부대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올라갔다. 그 와중에 문어 보따리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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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학 | 1934~2013. 충남 단양 생(生). 학도병으로 6.25전쟁 참전. 삼미그룹 총무과장 정년퇴직. 서울 노원구 국가유공자수훈회 사무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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