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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지키려면 성경말씀을 따르는 보수주의자가 돼야 합니다” – 원성웅 목사

진정한 신앙개혁을 소망하는 원성웅 목사 (옥토교회)

원성웅 목사 (옥토교회)

290호 / 사람풍경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가 이전의 모습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 방역 당국의 강력한 모임 제재로 인해 한번 느슨해진 신앙생활을 다시 복원할 힘이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의 예배에 대해 명령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며 정부는 교회에 방역을 협조해달라고만 말해야 한다는 예배지침을 제시, 주목을 받은 목회자가 있었다. 덕분에 많은 비난과 조롱 섞인 이야기를 듣기도 했던 원성웅 목사(옥토교회)를 만나, 못다한 이야기와 그의 신앙세계 속으로 들어가본다.

– 목사님은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셨습니까?

“저는 예수를 믿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경상남도 산청의 불교와 유교, 샤머니즘을 믿었고, 할머니는 절에도 다니고 집에서 고사도 지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이사를 통해 서울에 와서, 아펜젤러가 만든 배재중학교에서 꿈을 키우면서 기독학생이 됐습니다. 그래도 신학대에 갈 생각은 못했습니다. 법대에 가서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12월 예비고사를 치른 후 회심하는 경험을 갖게 됐습니다.”

– 아,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네요.

“먼저는 배재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채플 통해 좋은 말씀을 많이 들은 것도 배경이 됐습니다. 아펜젤러가 학교를 세우고 성경 번역을 위해 목포로 내려가다가 해난 사고로 소천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실 이분은 수영을 잘했는데, 조난 사고에서 일행 두 사람을 구하러 내려갔다가 살아 나올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게 어떤 것인 줄 보게 됐습니다. 아펜젤러의 이런 모습을 들으면서 영향을 받았어요. 또 애국심과 신앙심으로 고등학생 때, 농번기에 전기도 안들어오는 농촌에 가서 봉사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이런 마음을 억제하고 ‘법대에 가서 고시를 패스하고 정치를 하자. 남자로서 그런 야망도 있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재수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예비고사가 끝나고 회심을 했어요. 내가 갈 길은 무엇일까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 앞에서 소명을 깨닫고 신학을 하기로 결단하게 됐죠. 이후 신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온 가족이 저를 따라 교회에 나오게 됐어요. 또 구약학 교수님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삶 통해 영향

– 교회는 어떻게 개척하시게 됐나요?

“공군 군목으로 복역한 이후 3년 간 부목사로 교회를 섬겼어요. 이후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마음을 바꿔주셔서 개척을 하게 됐습니다. 1987년도에 개척할 당시에는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어요. 저와 아내 모두 믿음의 1세대고, 하나님 앞에 더 많이 헌신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그렇게 작은 처소를 얻어서 교인 1명으로 옥토교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 코로나 때,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요?

“코로나 사태가 비상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정부가 점점 일방적이고 무리한 조치를 내리더군요.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정부가 비대면 예배만 허용하면서, 20명 미만의 영상 촬영팀만이 예배당 안에 있도록 했어요. 예배당 좌석수가 만 석이 넘는 초대형 교회이든, 십여 명이 모이는 아주 작은 교회이든지 예배인원은 오직 19명까지만 허용됐어요. 게다가 공무원으로 사찰단을 꾸리고 그 숫자가 넘은 교회를 고발하고 벌금을 물리고, 예배당 폐쇄 공고를 붙였어요. 또 교회가 코로나 방역에 큰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도 끊이지 않았어요.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교회 예배에 참여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확인했죠. 이런 조치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유난히 개신교회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편파적이었어요. 교회들은 처음에는 전염병 확산을 막고 위기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방역지침에 적극 협조하는 분위기였고, 수천, 수만 명이 모이던 교회의 집회도 영상 예배로 대체하고, 일부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길거리에 나서서 전도지 대신 마스크를 나눠주며 “교회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하기까지 했어요. 저도 처음에는 방역 당국의 지침에 따라 협조하며 속히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기도하며 기다렸어요. 그러나 당국자들은 한국교회의 협조와 순응을 교회의 ‘복종’인 줄 알고 교회를 ‘동네북’처럼 때리고 비난하며, 코로나 사태 악화를 교회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언사를 서슴없이 했어요. 나는 당시 기독교 대한 감리회 서울연회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목사들과 평신도 지도자들로부터 “이럴 때 예배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가?”라는 걱정스런 질문을 받아왔어요. 코로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교회에 대한 대면 예배 금지 조치가 일시적이지 않고 계속 이어질 기미를 보일 때, 심사숙고 끝에 감리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보내는 예배지침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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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와 인도 선교를 후원하는 음악축제. 제공: 원성웅 목사

코로나 시기, 교회의 예배지침 발표

– 예배지침은 어떤 내용이었나요?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경배할 분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배를 드려라, 드리지 말라 명령하실 분은 오직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우리 주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이죠. 방역 당국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신앙과 믿음에 대해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고, 다만 ‘방역에 협조해 달라.’고만 말해야 한다. 그러니 정부 당국자들은 교회를 ‘문제 집단’ 정도로 경시하는 어투로 ‘예배당 문을 닫으라.’는 권한 밖의 명령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죠.”

당시 발표된 예배지침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됐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 서울연회는 1) 2020년 9월 20일 주일부터 서울연회 모든 교회들이 예배를 정상적으로 드릴 것이며, 이때부터 발생하는 법적인 책임은 개교회가 홀로 떠맡지 않고 감리교회가 공동으로 책임지며 대처할 것이다. 2) 만약에 어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인해서 확진자가 발생되었을 경우에는 잠시 그 교회의 예배당 문을 닫고, 방역을 한 후에 다시 예배를 드리면 된다. 3) 벌금이나 구상권 청구가 오더라도 감리교단이 법적으로 공동 대처할 계획이다. 4) 각 교회들이 신중하고 지혜롭게 회중 예배를 드리되, 혹시라도 위험할 수 있으니 전염병의 방역을 위해 띄워 앉기와 마스크 쓰기, 열 체크와 손 씻기 등의 모든 준칙을 지키고, 자신의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은 분만 자택에서 영상 예배로 드리면서 경건하고 거룩한 공동체의 예배를 회복하시기 바란다.

– 당시로서는 강력한 내용이군요.

“감독 서신이 발표된 지 하루도 안 돼서 다양한 반응들이 나타났습니다. 악의적인 욕설과 비방 문자와 글들이 포털사이트에 셀 수 없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 예배 회복을 위한 감독 서신을 발표한 것에 대해 정말 잘했다며 용기를 북돋우는 글과 전화, 문자들이 초교파적으로 쇄도했습니다. 또 기독언론에서 우리 교회 예배를 취재하고 설교를 녹화 편집해서 전국에 배포하면서 항간에 들끓은 오해들을 잠식시키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기독교회의 예배에 대한 정부 당국자들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예배지침이 내려오기 전에, 교단 대표들에게 협의를 하여 수위조절을 하는 태도를 보였어요. 그러고 3년이 지나서야 교회 예배에 대한 제재가 다 풀렸습니다.”

– 이렇게 강력한 대응을 할 수 있던 목사님이 그동안 어떤 활동들을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교회 일치를 주장하는 에큐메니컬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세계교회협의회)와 관계하면서 WCC의 각국 지부인 NCC(National Council of Churchers, 각국교회협의회)와도 협력했습니다. 진보적 입장에서 산업 선교, 도시 교회 활동도 했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그들과 같이 가면 안된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말씀 중심의 삶 통해

– 그렇게 깨닫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제가 개척교회를 시작한 게 36년 전입니다. 1987년과 1990년도 사이에 전 정권 퇴진에 제가 앞장서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면서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경건과 개인 윤리 생활에서 이율배반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교회를 진정으로 지키려면 이들과 같이 가면 안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이후부터 십자가 복음을 붙잡고 목회에만 전념하게 됐습니다.

또 제가 유학을 포기하고 국내에서 구약 박사학위를 받은 후 신학교 강의를 많이 했습니다. 강의와 목회를 하면서 선교에 대한 사명도 받았습니다. 감리교 안에서 선교국 위원장을 섬기면서 선교에 많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옹호하고, 여러 반(反)성경적 악법들이 발의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악법에 대응하기 위해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진평연)’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동성애 퀴어행사를 반대하는 ‘거룩한 방파제 통합 국민대회’의 공동 대표로도 활동했죠. 서울시 기독교 연합회 회장도 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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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 안수 40년 감사 때 찍은 사진. 제공: 원성웅 목사

– 신앙에 많은 변화가 있으셨군요.

“제가 목회를 하면 할수록 진보적 입장에 서면 교회가 약해지고 공산, 사회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성경말씀에 순종하는 보수적 입장에 서야겠다는 결론이 났던 것이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인권이라는 개념은 사실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함무라비 법전보다 인권에 대해 상세하게 만들어진 게 구약 모세오경의 법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자유, 해방, 노예 해방에 대해 나왔습니다. 신명기에서는 안식일을 말씀하시며 휴식과 쉼을 말씀하십니다. 나그네나 동물도 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성경에 나와 있죠. 노예 매매법이라는 악법을 유럽에서 금지시켰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으로 노예들이 자유 시민이 됐고, 마틴 루터 킹 목사도 흑인이나 황인, 백인이 손잡고 같이 사는 세상을 주장하면서 흑인 인권이 회복됐죠. 이 모든 것은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진보측에서 주장하는 인권은 성경과 반대됩니다. 그 뿌리가 막시즘에서 나왔기 때문이죠. 레위기나 바울서신, 창세기 등 성경적 바탕에서 보면 동성애를 하나님이 혐오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것을 왜 아름답다고 하고, 왜 인권이라고 포장할까요? 그들은 무신론에 네오 막시즘, 문화 막시즘, 68혁명 사상에서 비롯된 주장을 하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이것은 사상의 문제이고, 교회와 가정을 파괴하는 악마의 흐름이라고 바라보게 됐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겠다고 하셨는데, 지금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영적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290호에 게재>

동성애 등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는 것 막아야

–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은퇴 후 계획이 있으신지요?

“목회를 잘했던 분들도 은퇴를 할 때 모습을 보면, 후임을 정하는 문제, 사택 준비 등으로 시험에 드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목회를 잘 했는데도 나가실 때 불편하게 나가는 분들이 꽤 있어요. 우리도 큰 교회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잘 왔고, 은혜스럽게 잘 마치고 후배들에게 모범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은퇴를 하면서 사택을 소유하지 않겠다고 교회에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지금 와서 욕심부릴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의 결단을 듣고 감리교단의 몇몇 교회들이 목사님 은퇴 후 사택에 살다가 30년안에 반환하도록 하거나 우리 교회처럼 사택은 교회 소유로 하고 목사님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만 이용하시도록 하자는 움직임들이 있다고 합니다. 은퇴이후에는 교회를 지원하고, 후임 목회자를 돕고 선교도 나가고, 여러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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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토교회의 기도탑. 제공: 옥토교회

–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제목 말씀해주세요.

“우리가 은퇴 이후에도 10년 정도 활동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후배들과 교회를 돕고 선교를 위해 돕고 후배들 앞에서 좋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한국교회 이미지를 다시 회복시키고, 하나님이 우리나라와 세계 복음화를 위해 저를 쓰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믿음의 1세대이자 개척자들입니다. 믿음이 없는 집안에서 자라서 믿음 없는 가족들에게 믿음을 전하기 위한 에너지가 많이 소비됐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큰 사이즈를 주장하기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가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도움을 안 받는 것을 선택한 것이죠. 우리에게 부족한 면이 많았지만, 하나님이 기도해서 채워주시는 걸 누구보다 많이 체험하면서 간증도 많습니다. 지금은 기도의 명문 가문을 세우자는 소원이 있습니다. 인도 뭄바이에서 복음을 들고 빈민선교에 인생을 바치고 있는 아들 원정하 선교사 가족과,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아버지의 목회를 돕고 있는 딸 원정인 집사 가족으로 대를 이어 믿음의 명문가문을 세워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복음기도신문]

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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