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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통신] 강아지도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사진: 민경수

벌써 10월도 중턱에 와 있다. 오늘은 좀 색다른 질문을 던져본다. 삼라만상 동식물들도 창조주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러한 행위를 저들의 예배(?)라고 할 수가 있을까? 혹 질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저들도 할 수가 있다면 말이다. 어깃장부리듯 하는 질문이지만, 피조물들을 창조하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며 말씀하지 않으셨나?

오래전 일이다. 한 선교단체에서 전도에 집중하던 중 다양한 경험을 했다. 어느 날 한 할머니 성도가 늘 함께 생활하고 있는 본인의 예쁜 강아지를 예배당에 데려와서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애완견은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않고 예배자들의 눈동자를 번거롭게 했다.

또 한번은 강아지들만 모이는 ‘축복된 모임’이라고 하며 교회당에 모인 온갖 종류의 크고 작은 개들을 본 적이 있다. 마치 101마리 달마시안이란 영화의 한 장면을 상기시키는 모임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임을 계획하고 초대한 성직자는 이 개들을 능숙하게 다루며 나름 주인과 이 애완견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바로 오늘 우리 예배당에 이런 일이 처음으로 벌어졌다.

이 일의 출발점은 약 2년전 코로나19 팬데믹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부부는 밤 11시를 넘어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템스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저녁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강변 산책로를 거닐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둘만의 음악회를 시작했다. 때 마침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는 듯 우린 기쁨으로 남쪽 방향의 사우스워크 다리 바로 아래의 산책길에서 생각나는대로 함께 찬양을 했다.

이때에 지나가는 여러 사람들이 우리의 찬양에 기쁜 반응을 했다. 그때마다 난 짧은 설교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삶에 도전을 주고자 했다. 그중 한 사람이 강아지를 데리고 사뿐히 거닐면서 우리가 함께 전하던 찬양과 설교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우리에게 다시 연락하고 싶다고 해 전화번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거의 2년이 지나도록 그의 전화는 없었다. 그러나 지난 2달여 전 갑작스레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심방을 요청했다.

그의 숙소에서 우리는 기나긴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픈 생각에 실제로 나쁜 시도까지 해 본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의 심방으로 그는 인생무상 순례길 여정을 송두리째 포기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날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이야기와 함께 그의 결혼과 이혼 생활에서 불거진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의 긴 이야길 들어주며 그에게 대안책을 제안했다. 기도로 그와 함께 문제를 낱낱이 짚어보며 우리 주께 맡기자며 함께 기도를 드렸다.

그후 한 주간이 지나고 그는 다시 전화로 제 2차 심방을 요청했다. 왠일이었을까? 두번째 방문했을 때, 그는 전혀 다른 얼굴색으로 우리를 맞았다. 지난 주간의 심방에서 새 힘을 되찾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새롭게 인생문제 해결책을 찾게됐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 덴마크에서 2-3년간 살고 있을때 한 기독인을 만난 경험을 더듬었다. 그리고 예전에 주님의 부름이 있으면 전도자로도 나서기로 했다는 고백을 했다고 말하며 본인도 놀라워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주께서 지혜를 더하여 주시는 듯했다. 또 그에게 다시 심방할 경우, 더 자상한 목회적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됐다. 또한 그를 바르게 인도하는데는 보다 적극적인 성령님의 도우심의 필요를 느꼈다.

미셜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에게 위로부터 영적 힘의 역할이 보다 더 중요함을 느꼈다. 그와 대화중 성경적 지식도 상당히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다만 결혼생활의 실패로 자신을 미워하며 자신을 이등 시민권자처럼 여기며 살아왔다는 그에게 믿음의 권면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 반가운 얼굴이 교회문을 두드렸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인물이 찾아왔다. 중앙아메리카 출신으로 영국에서 36년, 유럽에서 3년간 살았다는 미셜은 자신의 애완견 미님을 데리고 예배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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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경수

1시간 20분의 오전 예배에서 약 50여분간 필자의 영어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 7살의 강아지 미님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사도행전 1장의 ‘성령과 우리와의 친밀감’을 주제로 설교를 하는 동안 미님은 주인 미셜의 무릎에서 조용하게 잠을 자듯 엎드려 있었다.

필자의 목소리가 큰데도 불구하고, 잠을 자는 그 미님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도 조용하게 있으니, 마치 또 다른 교인이 설교를 잘 듣고 있었던 것처럼 은혜의 시간이었다며 예배를 마치고 다른 성도가 감탄을 마지 않았다.

다시 위 질문을 생각해 본다. 과연 동물들도 저들 모습으로 창조주를 인정하며 대화를 할 수가 있을까? 우리가 기대하는만큼은 아닐지라도 마치 시냇물이, 나무들이 춤을 추며, 새들이 노래하며 찬양한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말이다. 또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런 식물의 생을 생각해본다. 우리 인간과도 비슷하게 땅에 중심을 두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경배하는 우리들처럼 나무들도 가지가 주욱 뻗으며 그 자랑스런 예쁜 잎으로 계절의 옷을 입고, 때로는 든든하며 알알히 맺힌 그 열매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피조물을 향한 창조주가 기대하는 바 대로 저들 나름 예배의 행위로 꽃을 피운다면, 지성으로의 인도함 받은 인간들과 신령한 예배로 신성한 대화(Divine Communication)를 나누는 것을 원하시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온갖 피조물들은 인간으로부터 이름이 명명된 이후, 저들 나름대로의 창조주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순례길로 떠나는 인생은 이성을 통해 본인의 옳고 그른 삶을 이야기하며 용서를 구하여야 하지만 자연 사물들은 주어진 삶으로 만족하면서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기를 요구하신다. 이는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피조물들은 나름 자연적 세상에 주어진 그분의 뜻을 따라 일반 계시적인 삶을 사는 것이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일 것이다.

인간들이 애완동물을 돌보는 삶을 통해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품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으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더 늦어지기 전에 모든 우리 인생들은 구세주 주님을 만나는 순례자가 되길 바래본다. 이 세상은 돌봄의 존재요, 그분은 돌봐야 될 우리를 여전히 찾고 계신 것이다. 아멘!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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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수 | 목사.선교사(본지 영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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