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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피난길, 사랑하는 이와 기약 없는 이별

▲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피난 행렬. 사진: 유튜브 채널 올드튜브 캡처

[정전협정 70주년 특별기획]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3)

다음 날 이 상사가 내게 찾아와 큰소리로 말했다. “야, 이 양이 보통내기가 아니야.” 편지를 전했는데 내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그냥 되돌려 보냈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실망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속이 뒤집히는 배신감도 나의 전신을 누르는 듯했다. 그러나 순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니야, 내가 이렇게 약해서야 되겠나, 내가 누군데’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2~3일이 경과한 어느 날 밤 당돌하게 권총을 가슴에 품고 내심 나를 믿어준다 생각한 이 양 옆집 양숙 엄마에게 달려갔다. 물론 양숙 엄마도 내가 이 양을 사랑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양숙 엄마가 이 양 부모님들이 우리들의 장래를 승낙해 줄 것을 곁에서 돕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터었다. 나는 권총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아줌마, 만약 이 양이 나의 청혼을 거부한다면 이 한 목숨…” 하면서 아무 죄도 없는 양숙 엄마를 붙들고 협박성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내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까봐 겁먹은 양숙 엄마는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조 하사, 흥분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요.”

필경 옆집 이 양의 부모를 만나러 간 것이 틀림없었다. 잠시 후 양숙 엄마가 돌아왔다. 이 양 부모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나를 일으켜 세우며 이 양 부모를 만나러 가잔다. 나는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양숙 엄마와 함께 안방에 들어가 끓어 앉았다. 이 양 아버님은 일체 말이 없고 어머님이 말문을 여셨다.

“여보게 이 사람아, 아직 앞길이 창창한 어린 총각이 이 전쟁판에 결혼을 재촉하는가. 일선에서 매일 앰블런스에 사상자를 실어 나르는데…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거든 그 때 이야기하세.”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에 우리의 결혼을 누가 보장하겠는가. 옆에 앉은 양숙 엄마가 입이 닳도록 나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진정을 시켰다. 전쟁이 끝나서 보겠다는 부모님의 실오라기 같은 언약에 미련을 두고 총총히 이 양 집을 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결심한 것을 포기한 적이 결코 없다고 혼자 되뇌면서 뚜벅뚜벅 남대천 다리를 건너왔다.

우리 부대가 이곳에 주둔하기 전 보병 18연대(백골부대) 1개 대대가 양양 시내에 주둔했었는데 군인들이 총각이라고 행세하면서 많은 처녀들에게 결혼을 약속하는 바람에 처녀들은 그 말을 믿고 순결을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혼자로 밝혀져 떠난 군인들은 소식조차 없고 결국 많은 처녀들이 유린만 당한 꼴이 되었다. 이러한 소문이 좁은 양양 바닥에 퍼졌으니 어찌 부모님인들 걱정이 안 되셨겠나… 세월이 약이라고 느껴졌다.

이 상사는 계속 남대천을 오가며 옥례양과 장래를 약속하고 목하 열애 중이었다. 며칠 후 이 상사가 내게 와서 이 양의 부모님을 만났는데 전시 중에 결혼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어머님은 ‘조 하사를 내심 좋아하는 눈치더라’며 너무 낙심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했다. 어느 정도 진정됐다 싶으면 이 상사가 또 내 맘에 불을 붙이곤 했다. 미련은 남았지만 “형님 고맙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하면서도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1951년 1월경이다. 향로봉 전투에서 적군에게 다시 밀려 작전상 후퇴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즉각 부대에 비상이 걸렸다. 이 상사가 급히 내게 오더니 전방주력부대가 남대천을 건너오면 양양 시내의 관공서는 물론 민가를 모두 불태우고 다리를 폭파하라는 작전명령이 하달됐다는 소식을 정두현 상사가 알려줬다고 했다. 자신은 양양 시내에 들어가 애인 가족과 이 양의 가족을 데리고 오겠다며 남대천 다리를 향해 달려갔다. 나중에 이 상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이 상사가 옥례 양과 이 양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들은 피난을 떠난 후였단다. 이 상사는 이웃 주민으로부터 그들이 이틀분의 식량만 챙겨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 긴박한 와중에도 그들을 만난 이 상사는 이 양을 다그치며 말했다고 한다.

“조 하사가 너 때문에 고민하여 실신할 지경에 있어 딱해 못 보겠다. 지금 당장 편지 한 장만 써다오.”라고 주문했더니 수첩을 찢어 편지를 써줬다며 내게 전했다. 나보다 그가 더 몸이 단 모양이었다.

이 상사는 그들에게 다리가 폭파되기 전에 자신을 믿고 속히 남쪽으로 피난하라고 권유했단다. 절박한 마음에 나도 중대장에게 이 양의 가족들이 피난하는 것을 돕고 싶다 했더니 쾌히 승낙하면서 옆에 있는 정 상사에게 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정 상사가 금일봉을 내게 주면서 이 양 가족의 피난을 돕고 오라고 허락했다.

나는 권총을 메고 남대천 다리에 미리 도착하여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시내에는 건물들이 불타올라 불길이 사방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다리 위를 구름처럼 건너오는데 드디어 이 상사가 나타나고 두 가족들이 뒤를 이어 건너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상사는 김 양의 식구들과 조금 앞서 걸어가고 나는 이 양 가족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너무 멀리 따라갈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잠시 길 옆에 앉아 “부디 안전하게 피난하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두 분이 내 손을 꼭 잡으며 “조 하사, 몸조심하고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세.”라고 당부했다. 나는 정 상사가 준비해 준 돈 봉투를 이 양에게 전하며 이것은 중대장님이 부모님 모시고 피난 잘 하시라는 선물이라며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 상사는 어디까지 따라갔는지 알 수 없다. 직책상 계속 따라갈 수 없던 나는 약 12km를 따라가다 일단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부대로 돌아와야만 했다. 멀리 사라지는 행렬에서 손을 흔드는 이 양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본 중대장이 웃으면서 물었다. “조 하사, 너 울었냐?” 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한데 정 상사도 한 마디 거든다. “그런데 이 상사는 어디까지 간거야?” 미량 고개 쪽으로 갔는데 곧 돌아올 것이라고 대답했다. 정 상사는 씨익 웃으면서 “아주 따라가서 살라고 하지.”라고 말했다.

다시 그 시절을 회상해 봐도 정 상사는 도대체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여자에겐 도무지 관심이 없는 목석같은 사나이였다. 오로지 결백하고 강인한 진정한 군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말은 없지만 그는 인정 많은 인물로 부대 내에선 선망의 대상인 상사였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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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학 | 1934~2013. 충남 단양 생(生). 학도병으로 6.25전쟁 참전. 삼미그룹 총무과장 정년퇴직. 서울 노원구 국가유공자수훈회 사무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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