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유전자 편집, 우리가 열망해야 하는 기술인가? (2)

사진: 유튜브 채널 The Economist 캡처

한국청년생명윤리학회가 지난 9월 23일 ‘유전자 편집’이라는 주제로 제2회 생명윤리 콜로키움을 진행했다. 이날 나눠진 발제 중 배진우 학생이 발표한 ‘유전자 편집기술, 우리가 열망해야 하는 기술인가?’의 내용을 2회로 나눠 연재한다. <편집자>

3. 배아 편집 자체를 하면 안 되는 이유들

1) 안전성

먼저 안전성입니다. 편집의 안전성을 보장 하지 못합니다. 발표 시작할 때, 허젠쿠이의 배아편집 사례를 말씀드렸습니다. 이 사례의 경우 안전성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더 자세히 왜 안전하지 않은지 설명드리겠습니다.

첫째, 오프타겟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특정 염기서열을 자르고 원하는 염기서열의 DNA를 집어넣는다고 할 때, 이 유전자 가위가 타겟 부위를 잘 못 자르게 될 수도 있으며, 타겟 부위를 잘 자른다고 할 경우에도 사실 ‘어느’ 유전자든 편집됐을 때, 예기치 못한 연쇄 반응이나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둘째, 단백질- 단백질 결합 네트워크 문제입니다. 10조 개에 달하는 인체세포에는 단백질과 단백질의 결합으로 구성된 네트워크, RNA, 그 밖에 여러 생물 분자의 상호작용이 방대하게 얽혀있고, 세포 내부는 사방으로 연결된 중심부와 소포, 세포막, 분자 수준의 장치들로 꽉 채워져있는데 어떻게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2만 개가 넘는 단백질 하나하나가 적개는 수 십 개, 많게는 수 백 개에 달하는 다른 단백질과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린, 이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를 편집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예측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배아편집은 생식세포 편집이기에 다음세대의 유전자 구성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방금 말씀드린 이러한 치명적인 유전자 손실이 다음 세대에 전달이 된다면 상당히 끔찍합니다. 배아편집은 인간에게 있어 득이 아닌 굉장한 실이 될 것입니다.

2) 배아 살해

배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편집을 시행하게 될 때에 유전자 편집의 조작 실수로 조작하려는 배아 자체를 파괴할 수 도 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격입니다. 허젠쿠이 사례로 설명하면, HIV로부터 안전한 아이를 만들려 시도하다가 그 배아, 사람, 즉 이 아이 자체를 죽게 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배아 편집을 해야할까요?

3) 양육의 의미를 오염

부모가 자신의 아이의 형질에 대하여 우연성을 제거하고 프로그래밍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연성을 제거하고 출생의 신비를 정복하려는 욕구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규범이 지배하는 사회적 관행인 양육의 의미를 오염시킵니다. 신학자 ‘윌리엄 메이’에 따르면 부모의 사랑은 ‘받아들이는 사랑’과 ‘변화시키는 사랑’ 2가지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맞춤아기 설계는 받아들이는 사랑은 배제하고, 변화시키는 사랑이 극대화된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지만, 공부를 잘 하지 못하더라도, 또는 눈동자가 부모가 원하는 파란색이 아니더라도,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납할 줄 아는 ‘받아들이는 사랑’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유전자편집은 부모가 ‘받아들이는 사랑’을 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4) 계급의 발생

편집을 못한 자가 불리해집니다. 계급화가 발생할 것입니다. 배아편집은 불평등과 차별을 초래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평등을 얻기 위해 끝없는 투쟁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지금은 그러한 투쟁의 결과로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린 신분제 폐지, 종교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기회의 평등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아편집은 안전성도 보장되지 않았거니와,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인류 유전자 풀 전체를 평균 상향화시켜 유전자 편집기술로 계속해서 더 강화하고자 하는 강화경쟁이 과열되게 할 것 입니다. 유전자 편집을 통해, 우성이 된 적격자와 돈이 없어 편집을 하지 못한 열성 즉, 부적격자로 계급이 나뉘어 갈등을 빚을 것입니다. 배아 편집을 한다면 우리 인류는 어렵게 얻은 평등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배아편집은 득이 아니라 실이 될 것입니다.

5) 말씀의 근거

하나님의 주권 침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 가축,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 다스릴 대상에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을 다스릴 자, 디자인 할 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근거로 볼 때, 사람이 사람을 조작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권한 밖의 행위가 됩니다. 따라서 유전자편집은 하나님의 법을 벗어난 행위로써 죄가 됩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생명주권, 창조 주권을 인정한다면 유전자편집을 통한 맞춤아기 설계를 무조건 반대해야만 합니다.

4. 우린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가야하는가?

지금까지 유전자 편집윤리, 특별히 배아편집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정립하고 행동해야 할까요?

배아 편집이 윤리적, 과학적, 신학적인 모든 측면에서 잘못되었음을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인간을 더 완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완전하지 않고, 서로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있는 재능과 한계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에게 연약함이 있지만, 감당해주고 서로 사랑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우린 잘하는 것도 있고 잘하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고전 12장 27-30절을 보면,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한 지체에게 모든 은사를 주시지 않았고 나누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25-26절 말씀을 따라, 서로가 서로를 돕고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최고 걸작품입니다.

저는 명문대를 진학하지 못하고, 똑똑하거나 탁월하지 않아서 제가 쓸모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점이 낮게 나오거나 토익 시험 점수가 낮게 나오는 날엔 지금도 그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늘 저에게 계획이 있다고 하시며 다르게 보셨고, 지금 이 자리에서도 저를 쓰고 계시며, 캠퍼스에서도 예수님을 전하는 자로 쓰고 계시는 등 저를 걸작품으로 보시며 오히려 22절 말씀에서 보다시피 더 요긴하게 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우리는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가진 자입니다.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해도 단 한 사람도 그냥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잣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편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성품에 근거하여 치료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근본인 유전자를 뒤바꿔 버리려는 시도는 인간으로서 피조물로서 주제넘은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유전자 편집을 이용한 배아 편집을 반대하며, 서로에게 있는 재능과 한계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유전자 편집 기술! 아직 미지의 영역인 부분이 많지만, 적어도 유전자 편집을 통한 배아편집은 반대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완전하지 않고 불완전하지만, 서로에게 있는 재능과 한계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생학적 사고를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완벽할 수 없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연약함이 있지만, 서로 서로 감당해주고 협력하고 도와주고 서로 사랑하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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