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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이스라엘의 9/11: 도덕적 명확성이 필요한 때

[뉴스쏙] 이스라엘 "가자지구 지상전 수만 명 투입… 2006년 이후 최대 규모 침공" 사진: 유튜브 채널 연합뉴스TV 영상 캡처

지난 토요일, 가자 지구에 본부를 두고 이란의 자금 지원을 받는 이슬람 테러 단체 하마스가 육해공 전반에 걸쳐서 이스라엘 남부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 이스라엘인 900명이 사망했고, 2400명이 다쳤으며, 수백 명이 인질로 잡혔다.

소셜 미디어에 등장하는 사진과 영상은 참혹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음악 축제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지붕으로 아이들을 탈출시키던 아버지가 살해당했다. 테러리스트가 픽업트럭에 벌거벗은 여자를 태우고 행진하고 나이 든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총을 들고 하마스 군인과 함께 포즈를 취하도록 강요당한다. 다섯 살과 세 살 먹은 두 딸을 둔 젊은 여성이 인질로 잡혀갔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겪은 심리적 피해를 미국의 9/11 테러에 비유했다. 이는 홀로코스트 이후 하루 만에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유대인 대량 학살이며, 앞으로 이스라엘 사회를 심오한 방식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라는 맥락에서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견해와 상관없이,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도덕적으로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도덕적 명확성의 가능성

죄 많은 세상에서 갈등하는 양쪽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는 건 당연하다. 한쪽을 비난하는 사람은 당장에 내로남불이라는 반박에 직면할 것이다. “웃기고 있네. 이건 어떤데? 너희가 저지르는 잔혹한 짓은 뭐가 다른데?”

우리는 팔레스타인 국민을 향한 이스라엘의 행동이 항상 흠잡을 데 없이 정당한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지금 상황에서 이 글을 쓰는 우리 두 사람은 친이스라엘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이스라엘 정부나 군대가 출범부터 오늘날까지 취한 모든 행동을 은폐하자는 건 아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좌절, 고통, 슬픔을 보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를 포함해서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포함하여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의 명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양쪽 모두에게 다 피할 수 없는 범죄가 있다고 해서 항상 도덕적 안개가 생기는 건 아니다. 때때로 안개가 걷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이라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주저 없이 비난해야 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도 모호함 없이 단호하게 비난해야 하는 유사한 범죄 행위의 명백한 사례이다.

기독교적으로 올바른 식별은 행동의 성격과 목적을 모두 다 살펴야 한다. 하마스가 단순히 민간인 인질을 잡았다면 그 행위는 자체로 악하다(성경은 납치를 금지한다). 그러나 납치의 목적에는 틀림없이 어느 정도 군사적 정당성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름 가능하다. 과거에도 인질을 팔레스타인 포로와 교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마스는 단순히 인질을 잡은 것이 아니었다. 군사 작전은 애초에 민간인을 살해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 민간인 희생자는 군사 목표물에 대한 공격으로 인한 부수적 피해가 아니었다. 민간인 자신이 표적이었다. 이 학살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성경적 정당성도 찾을 수 없다.

도덕적 명확성의 유익

정치적으로 분열된 교회를 목회해 본 사람이라면 정치적 문제에 관해서라면 균형의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그러다 보니 문제의 양면을 제시하는 데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는 어느 한쪽만 주장하는 것을 명백한 목회적 실수처럼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덕적 명확성이 정당화되면, 큰 이점이 따라온다.

1. 도덕적 명확성의 일반적인 이점

진 엘쉬타인(Jean Bethke Elshtain)의 관찰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우발적인 사망과 고의적인 살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형사사법제도는 붕괴할 것이다. 만약에 전투원 살해와 평화로운 민간인을 겨냥한 살해 의도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실상 도덕적 허무주의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한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동일한 회색 음영으로 전락한다. 그 결과 우리는 정치적 그리고 도덕적 태도를 보이는 데 도움이 되는 구별을 전혀 할 수 없게 된다.

이 방식에 근거해서 방향을 잡으면 우리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신뢰해야 할지 쉽게 알 수 있다. 카타르 외무부 등 일부 외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국민의 권리를 지속해서 침해하는 정책을 확대하는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부 아랍국을 포함한 다른 정부들은 이스라엘을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종류의 가면을 벗기는 것은 외교 정책에 관여하거나 중동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유용하다.

현재 갈등에 대한 도덕적 명확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제 발생할지도 모를, 미국과 좀 더 밀접한 사건에 대비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분별력을 발휘함으로 우리는 미래에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더 잘 갖추게 된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도덕적 통찰력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당시에 증거가 모호하다고만 생각하던 나치즘의 가면 아래 숨은 공포를 똑똑히 보게 만들었다. 그의 강력한 도덕적 비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도 꼭 알아야 할 사건에 대해서 분명하게 분별함으로 본회퍼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하자.

2. 도덕적 명확성의 구체적인 이점

도덕적 명확성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명령을 만들어 낸다. 비정치적인 예를 들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악한 자를 그들 중에서 쫓아내라”(고전 5:13)고 요구했다. 구절 속 문제의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었고(1절), 그로 인해서 그는 지역 교회에서 파문되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명확성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데에 필요한 명령을 내린다. 일요일 뉴욕시에서 열린 친팔레스타인 집회에서 행진 참가자들은 “사람들이 점거되면 저항은 정당하다”고 외쳤다. 그리스도인은 방어할 능력이 없는 민간인을 향한 고의적인 학살을 옹호하는 그러한 종류의 집회(또는 그에 상응하는 소셜 미디어 집회)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변호해서는 안 되는 것을 옹호하는 것(살인, 강간, 납치를 “저항”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방식이 아니다.

동시에 도덕적 명료함은 한쪽을 위한 적절한 기도를 하도록 한다. 우리는 하마스의 조속한 패배를 기도해야 한다. 하마스의 살인적인 작전실은 결코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좋은 지도력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양쪽 모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즉, 그들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말이다. 더불어서 그들의 보호와 치유, 위안을 기원하자. 그리고 양국 국경 안에 있는 교회가 성장하도록 기도하자. 우리가 이처럼 양방향을 향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비로소 테러리즘에 빠진 한쪽을 완전히 좌절시키고 패배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더 담대히 간구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  Israel’s 9/11: The Need for Moral Clarity

버나드 하워드 Bernard N. Howard·Ivan Mesa | 버나드 하워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이다. Grace Church Birmingham(Alabama)의 목사이며, 널리 보급된 유월절 자료인 A Short Messianic Haggadah의 저자이다. 이반 미사(PhD candidate,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는 The Gospel Coalition의 편집위원으로 2014년부터 섬기고 있다. Before You Lose Your Faith: Deconstructing Doubt in the Church (2021)의 편집인이며, Faithful Exiles: Finding Hope in a Hostile World (2023)의 공동 편집인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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