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GTK 칼럼] 순결과 양심(12): 신자의 영적 싸움

사진: Unsplash의 Caleb Lumingkit

로마서 8장 12, 13절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12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어서 13절에서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하고 있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영적인 면에서 ‘산 자’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 몸의 행실을 죽이고 육신의 아말렉과 싸우는 것, 그리고 이 일을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은 신자라면 피할 수 없는 영적 전쟁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바울은 6장에서 죄에 대한 승리를 선포한 후, 7장에서 죄와의 끊임없는 싸움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8장에서는 그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경험과 승리 후에 맛보는 안정된 상태의 양심에 대해 설명한다. 바울은 이것이 구원받고 죄에 대해 승리한 자들의 삶에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신자는 흠정역(the King James) 성경의 “죄를 죽이는”(mortifying sin)이라는 표현처럼 끊임없이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들이다. 신자의 삶의 특징은 몸의 행실 즉, 죄를 죽이는 것이다. 참된 신자는 자신을 높이기 위해 아각을 살려준 사울 왕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대신 망설임 없이 아각을 죽인 선지자 사무엘처럼 행동한다. 육은 길들일 수 있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육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다. 당신은 “이 정도는 사소한 것이니 문제 될 리 없어.”라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적들을 멸절하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육의 행실을 온전히 죽이라고 말한다.

주님도 종종 이런 확고한 태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런 말씀 중의 하나가 마태복음 5장 29절과 30절에 기록되어 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실제로 몸을 훼손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육체의 소욕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신자의 삶 속에는 다스려야 할 죄가 있을 수 있으며, 바울은 로마서에서 죄를 죽이라고 말할 때 근본적으로 같은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죄의 유혹에서 즉시 벗어날 거라고 약속하지 않았다. 그는 한 번의 위대한 승리 후 육신의 아말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사는 날 동안에는 육신과의 싸움이 끊이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바울은 또한 이 싸움이,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후, 흔히 이야기하는 두 번째 축복의 경험이나 일시적인 성화의 경험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수동적인 접근방식, 예컨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싸우시도록 해야 해. 내가 할 일은 뒤로 물러서 있는 거야. 이 싸움은 나의 싸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싸우셔야 할 싸움이야.”라는 자세를 취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강단 설교 후 재헌신이나 재성화로의 초청에 응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하지 않았다.

바울의 말에 따르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본문에 사용된 동사의 시제가 보여주듯이, 평생 동안, 끊임없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싸움은 그때 그때 떠오르는 죄를 죽이고 그것으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진행형이며 몸의 행실을 끊임없이 억제해야 하는 싸움이다.

이는 어떤 육체적인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관념적인 것도 아니다. 나는 자신의 죄를 억제하기 위해 작은 바늘들로 가득한 벨트를 차고 다니며 자기 육체를 스스로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고통이 아니다. 나는 가톨릭 교회의 역사에서 날카로운 못이나 돌들을 신발 속에 넣고 다니며 죄를 억제해보려고 고행을 감수했던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것 역시 바울이 말하는 것과 관계가 없다. 그는 자기 몸을 스스로 학대하거나, 수도승처럼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다.

외적으로 자기를 정죄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오히려 성령의 능력으로 이 싸움에서 죄를 죽이고, 분쇄하고, 힘을 잃게 만들고, 그 영향력을 제거함으로써 평강과 기쁨, 쉼, 안전과 확신 그리고 소망을 가져오는 깨끗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죄를 죽이거나 억제하는 것은 죄악된 옛 습관을 버리고, 경건한 새 습관을 기르는 것과 관계가 있다. 적극적으로 경건한 습관을 기르고, 경건치 못한 이전의 습관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부단히 헌신하여 싸워야 할 끊임없는 전쟁이다. [복음기도신문]

원문: http://www.gty.org/Blog/B120726/taking-sin-seriously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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