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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칼럼] 판단 잘하는 것이 은사인줄 알았습니다

사진: Anuja Tilj on unsplash

골로새서 2장 4절을 봤습니다. 교묘한 말은 간교한 말과 같은 뜻입니다. 교묘한 말을 많이 들으면 고집스러워집니다. 사랑이 식어가는 것이 뚜렷해집니다. 판단이 날카로워지고 세련됩니다.

누군가 저를 비판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비판이 교묘하다면, 옳은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목숨으로 살 수 있다고 그럴듯하게 속일 것입니다. 이런 것 갖춰지면 좋은 것이고 행복한 것이라고 교묘하게 속일 것입니다. 교묘한 말을 할 때 하늘에서 기쁨이 쏟아져 내립니까? 그래서 서로 사랑스러워집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비판은 원래 그렇습니다. 오히려 고집스러워집니다. 오히려 사랑이 떠나갑니다. 비판은 비판을 낳습니다. 스스로 잘 알아듣기를 축복합니다. 그 비판의 내용이 정말 하나님의 마음이라면,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실제로 기도가 됩니다. 이 지혜가 열려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비판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선을 넘어 오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누구보다 잘 압니다. 믿음의 선을 넘어 오는 것을 제가 드러내놓고 말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천 번도 깨졌을 것입니다. 사랑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늘의 뜻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러 갑니다. 기도가 진짜라는 것을 압니다. 누군가 선을 넘어오는 사람이 보이면 기도합니다. 그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밀려오면 아픔이 느껴집니다. 주님이 걱정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 십자가의 삶을 나타내 보이시옵소서.” 지혜로운 마음은 그래서 속이 가벼워집니다. 그때 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마음을 받으셔야 하는데, 하나님 어떻게 합니까!” 믿음이 실제가 되면 판단쟁이가 바뀝니다.

목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 자리가 판단하는 자리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판단이 잘 되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것이 은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판단하는 사람이 왕이다!’ 그냥 무릎이 후들거렸습니다.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왕의 자리에 가 있었습니다. 판단할 때마다, 그것은 교묘한 짓이었고 사탄의 간교한 지혜였습니다. 그것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옥으로 가고 있는 저를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날마다 판단이 되살아나는지!

그래서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날마다 죽노라’는 바울의 고백은 실제입니다. 옳으니까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마음이 지혜로우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말이 다릅니다. 말이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환경과 조건에 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속이 바뀐 인생입니다. 날마다 십자가에서 연합함으로 십자가 생활화를 해야 합니다.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가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마음을 지키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담겨지라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새기라고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생명을 두십니다. 생명은 목숨과 다른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생명은 갈수록 풍성해집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 3:3)

하나님 안에 감춰진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습니다. 생명이 우리 마음에 들어온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과 호흡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 생명은 지켜져야 합니다.

사탄이 간교하다고 했습니다. 역방향으로 지혜로운 것입니다. 사탄이 왜 하와를 택했을까요?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고요? 사탄은 하와를 먼저 유혹했습니다. 하와의 속에 밑그림이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와는 선악과를 보고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밑그림에 그것이 있었습니다. 사탄은 하와 마음에 있는 그것을 톡 건드린 것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삶에 대한 어떤 밑그림이 있을 때에도 톡 건드릴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그것을 유혹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은퇴한 뒤 퇴직금을 사기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평소에 돈에 대한 밑그림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십자가에서 연합해 죽어야 합니다. 밑그림을 내어 던지고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는 은혜가 새롭게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에필로그

사회 갈등 지수 순위가 나왔는데 한국이 압도적으로 1위입니다. 항목이 28개인데 16개 항목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기록했습니다. 지역간, 세대간, 남녀간, 학력간, 있고 없고의 갈등, 이념의 갈등 등등. 한국이 압도적 1위입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경기도 일산만 보더라도 크리스천 인구가 40%입니다. 그런 일산에서 갈등이 있다면 우리의 문제입니다. 갈등은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한국의 크리스천이 1/3입니다. 우리가 돌이키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비판의 물결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생명이 아니라 거역이 들어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무 아파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순종의 전문가 수준의 기름부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마음이 지혜로우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두 명의 정탐꾼과 같은 그런 인생이 나라고! 마음이 바뀌면 속이 바뀌고 언어가 바뀌고 가치가 바뀌고 방향성이 바뀝니다. 십자가에서 날마다 죽노라 고백했던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 생활화로 날마다 나 죽고 예수로 살아, 나를 통해 예수님께서 하시는 역사가 평생 깊이 스며들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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