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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양 칼럼] 문동환·함석헌·오강남, 대속 신앙을 부정한 기독교인(2)

사진: Christi Marcheschi on unsplash

눈먼 기독교(46)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하며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거부한 자답게 문동환 목사는 예수의 대속 역시 부정한다. 그에게 예수는 세상의 잘못된 바벨탑 문화에서 사람들을 탈출시키고자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분이었지, 결코 인류의 죗값을 대신 담당하신 성자(聖子) 하나님이 아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해하신 하느님은 아버지와 같으신 분으로 우리가 돌아서면 두 팔을 벌리고 안아주시는 분이라고 보셨다. 예수님의 피 공로로 죄를 사하시는 옹졸하신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1]

문 목사는 예수의 피 값으로 인류를 속죄하시는 하나님을 옹졸하신 분으로 묘사한다. 예수의 ‘돌아온 탕자’ 비유 중에 나오는 인자하신 아버지, 과거의 허물과 잘못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받아 주시는 그 아버지가 곧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성경을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취한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공통점이지만, 그는 지금 예수가 심판자로 묘사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에 문 목사는 후대의 기록자들이 잘못된 관점에서 하나님을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묘사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반드시 받아 주시는 분이다. 맞다. 그런데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예수 십자가 보혈의 죄 씻는 권세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오는 것이 아닌가? 예수의 보혈 없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말인가?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초보 중의 초보가 아닌가?

문동환 목사처럼 기독교의 정통적인 대속관을 거부한 사람 중에 함석헌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에게서[2] 많은 영향을 받은 함석헌은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는[3] 수용했지만, 그의 속죄관은 거부했다. 우치무라는 보수적인 대속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나, 함석헌은 사람들이 자유인으로서 각자 죄의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다. 함석헌의 말을 살펴보자.

내 자신이 자주적 인격을 가지고 있는 한, 어떻게 역사화된 예수를 내 믿음의 목적으로 삼고 그저 ‘주님, 주님!’ 하고만 부르겠습니까? 어떻게 자주적 인격을 가진 도덕적 인간의 속죄가 이런 식으로 가능하겠습니까?[4]

물론 함석헌은 기독교의 대속 신앙만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부인한 인물이다. 그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신을 믿는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나는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정신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영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역사의 예수 안에도 있었고, 나 자신 속에도 살아 있습니다.[5]

결국 함석헌이 받아들인 예수는 성경이 말한 예수가 아니라 박애주의자들과 합리주의자들이 말한 예수였다. 그 예수는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인물이기는 하지만 인류를 위해 속죄 사역을 감당하신 구원자는 아니었다.

함석헌처럼, 예수를 경배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닮음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를 주장한 이로서 오강남 교수가 있다. 재캐나다 종교학자인 오강남은 『예수는 없다』,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같은 저서들을 통해 비성경적인 기독교관을 우리나라 전역에 퍼뜨리고 있다. 그에게 예수는 단지 깨달음을 얻은 한 인간일 뿐이다. 즉, 예수는 그냥 또 다른 부처인 것이다. 당연히 그는 복음서의 모든 내용을 부정하며, 자유주의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분리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를 믿지 말고 예수를 따르십시오. 교리에 얽매이지 말고 예수의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는 그의 사상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미 다른 무신론적 기독교인들이 지난 세기부터 줄기차게 내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지금 캐나다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곳곳에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6] 이제 이런 식으로 자유주의가 퍼져나가면, 머잖아 그의 용어대로 ‘성불(成佛)하신 예수님’이 기독론의 핵심이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 하겠는가?[7]


[1] 문동환, 『바벨탑과 떠돌이』, 삼인, 242-243쪽

[2] 『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나』라는 책으로 유명한 근대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다. 복음주의 에 입각한 신앙을 견지했으나, 무교회주의를 주장함으로써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 정책을 반대하였으며, “조선은 하루 속히 일본을 이기는 기독교 국가가 돼라”고 조선인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김교신, 송두용, 함석헌은 일본에서 우치무라에게서 배웠고, 귀국 후에 함께 「성서조선」이라는 기독교 월간지를 발행하였다.

[3] Non-church movement, 조직화된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이른바 교회주의에 저항하는 신학사상

[4] 김성수, 『함석헌 평전』, 삼인, 169쪽

[5] 앞의 책 171쪽

[6] 예를 들어, 진보적 기독교 매체인 「뉴스앤조이」는 오 교수의 『예수는 없다』를 직간접으로 홍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뉴스앤조이」는 그 책을 읽은 순복음교회 교인 성소은 씨가 결국 불교도로 개종하여 참선을 통해 진정한 안식을 얻었다는 기사를 크게 싣기도 했다. 「뉴스앤조이」는 언론으로서 그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나, 신학적으로는 위험한 선에 다다랐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는 「뉴스앤조이」의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이 점을 동일하게 말한 바가 있다.

[7]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를 반박하기 위해 저술된 이국진 목사의 『예수는 있다』는 오 교수의 논리와 주장이 오류가 많음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 (1) 오 교수는 논증적 주제를 다루면서 논리를 사용하기보다는 예화를 사용한다. 이는 논리로써 설명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오 교수는 권위에 의한 논증을 자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기적이나 동정녀 탄생, 부활을 믿지 않는다. 후진국에서나 그런 터무니없는 일들을 믿는다”라는 식이다. (3) 오 교수는 부재(不在)에 의한 논증을 자주 사용한다. ‘증거가 없다’(the absence of evidence)는 것은 ‘없다는 증거’(the evidence of absence)가 아닌데도 오 교수는 너무도 쉽게 이 논증에 의존하고 있다. (4) 오 교수는 유사(類似)에 의한 동일 논증을 사용한다. 구약성경에 있는 천사, 부활, 최후 심판, 낙원의 개념이 조로아스터교에도 비슷하게 등장하므로 구약성경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결론 내린다. 비슷한 몇 개의 개념보다 전혀 다른 수백 개의 개념을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유대교가 더 먼저 아닐까? (5) 오 교수는 21세기의 시대정신에 따라 다원주의적 태도가 옳고 배타주의적 태도는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방법론보다 중요한 것은 전달 내용의 참 거짓 여부 아닌가? (6) 오 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불리한 객관적 자료는 의도적으로 제외한다. 예를 들어, 여리고 성(城)의 고고학적 자료와 신약성경 사본 자료를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사용한다. – 이국진, 『예수는 있다』, 국제제자훈련원, 18,19,20,43,73,96쪽 수정, 발췌, 인용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Park Sun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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