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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전도하지 않는 세 가지 이유

사진: Unsplash의 Nico Smit

세속 시대에 복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쉽지 않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들 너무 바쁘다거나, 심각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애초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가 아니라 어색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침묵하는 이유에 관해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뭐가 나올까? 

뭔가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의 하나는 애초에 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침묵하는 데에는 세 가지 공통되는 이유가 있다.

1. 맥락을 무시한다. 

지금은 탈 기독교 시대이다.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에 관해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쉽게 가정해서는 안 된다. 이웃이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방식에 동참하기 위해서라도 주의 깊게 잘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오해를 사거나 완전히 거부당할 용어를 사용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거기에는 심지어 성경의 용어까지 포함되어 있다. 

•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좋은 소식이지만, 하나님의 본질(또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쓴다면 의미 없는 말로 전락한다. 

• “당신은 죄인입니다.” 사실이지만, 죄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죄에 대해 그다지 나쁘게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당신은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이 말도 사실이지만,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 “성경에 따르면요….” 훌륭한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꺼내려면 조건이 있다. 성경이 구식, 가부장적 동화 모음집으로 치부되지 않는 경우이다. 

복음을 멋있게 치장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해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주변 문화를 연구하는 목적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배적인 가치관과 희망, 두려움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복음이 그들이 갖고 있는 가장 깊은 갈망을 충족시키고 또 가장 소중히 여기는 우상까지 전복시킬 수 있을까?

오늘과 같은 문화 환경 속에서 효과를 높이려면 질문에 능숙해야 한다. 전도하는 핵심 목표가 단지 당신의 말을 듣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런데도 오로지 전문 성경 용어로만 나열하는 데 그친다면, 회의론자들은 기껏해야 혼란에 빠지거나 최악에는 도망가 버릴 것이다. 그러나 목표가 효과를 높이는 것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해하기 위해서 듣고 또 이해받기 위해서 말하게 된다. 더불어서 당신과 똑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이웃이 곧 듣게 될 최고의 소식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도록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유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전도는 단지 허공을 때릴 뿐이다. 

2. 사랑하는 데에 실패한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편지했다.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을 사모하여,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줄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살전 2:8)

잃어버린 자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영적 미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는 메시지도 들리지 않는다. 신뢰는 필수이며, 당신이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느끼도록 하는 기본이다. 사랑에 실패하는 순간 복음 전파가 허사가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도인을 향한 그들의 마음도 완고해질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을 향한 전도의 문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결코 실질적 전략의 범주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사랑이야말로 당신이 고백하는 바로 그 하나님을 당신이 진짜 알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가장 확실한 리트머스 종이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단언한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고전 13:1-3)

당신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전도자일 수도 있다. 또 회심자도 적지 않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이 부족하다면, 당신은 단지 “요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위험과 이해관계는 없다.

제대로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가 잘 들어주는 것이다. 경청은 단지 힘든 시기를 겪는 연인에게만 해당하는 조언이 아니다. 그건 감성 지능의 기초 중 기초이다. 경청과 사랑받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흡사해서 사람들 대부분이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성경이 무어라고 하는가?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약 1:19) 권고한다. 하지만 이 말씀을 무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하는 데에 바빠서 상대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위험까지 무릅쓰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여전히 길을 잃었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는 것처럼 상대에게 말해야 한다. 지금은 분노의 시대이다. 문화를 역행하는 사랑의 말투가 없다면 복음이라는 반문화적인 메시지도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 

3. 두려움에 굴복한다.

전도하기를 꺼리는 진짜 이유 중 하나가 두려움이라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어쩌면 그건 어색한 상호작용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또 노골적인 거부나 당혹감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회의론자의 반대에 대응할 준비가 되지 않다는 두려움일 수도 있다. 두려운 이유는 수없이 많다. 

두려움 중 일부는 소심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두려움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복음 전파의 기회를 낭비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러나 전도는 복잡하지 않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시간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복음을 제대로 나누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완벽한” 상태가 되어서 전도하는 날은 아예 꿈꾸지도 말라. 그런 날은 없다.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영혼을 붙잡고 관리하겠다고 결심하라. 

언제가 될지 몰라도 그 순간이 오면, 당신은 갑자기 대화의 방향을 영적인 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육체적으로는 괴로울 것이다. 뱃속이 울렁거릴 수도 있다. 그건 정상이다. 맥박이 마구 뛸 수도 있다. 그것도 정상이다. 목소리가 떨릴 수도 있다. 이제 당신은 진정한 복음 전파자의 세계로 들어왔다. 환영한다. 기억해야 한다. 이런 불쾌한 감정이 결코 도망치라는 신호이거나 다음으로 미루라는 신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반대로 지금 당장 두려움을 정면으로 직면하고 전쟁을 선포해야 할 바로 그 순간이다. “그래, 두려움아, 너는 실재하고 또 강력하지. 하지만 넌 전능하지 않아. 넌 나를 지배하지 못해. 나는 너에게 굴복하지 않을 거야. 나는 오로지 왕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볼 거야. 지금 나는 그분께 기대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겠어.” 

당신이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지금 한번 상상해 보라. 당신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이 두려움에 얼어붙었다면 당신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 사람이, ‘주님, 저는 아닙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사람이 아직 준비가 안 됐고, 게다가 환경도 이상적이지 않아서 당신이 복음을 듣지 못했더라면,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권고하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위대하시며 동시에 선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복음서를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말씀의 하나를 선포하신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눅 12:32).

감을 잡았는가? 목자. 아버지. 왕. 하나의 작은 구절, 그러나 세 개의 거대한 진리.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시는 목자이시며,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는 아버지이시며,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왕이시다. 

이천 년 전, 목자이신 왕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되셨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 23:1)라는 구절만큼이나 위로가 되는 게 있다. 바로 “어린양이 나의 목자이시다”(계 7:17)라는 약속이다. 영광으로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확신을 우리에게 주셨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전도가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복음기도신문]

Matt Smethurst, Before You Share Your Faith: Five Ways to Be Evangelism Ready (10Publishing, 2022)에서 간추린 글입니다.

원제: 3 Reasons We Avoid Evangelism 

맷 스메서스트 Matt Smethurst | 리치먼드에 있는 River City Baptist 교회의 담임목사이다. Before You Share Your Faith: Five Ways To Be Evangelism Ready(2022)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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