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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치열한 청진전투

사진: Tapio Haaja on unsplash

[정전협정 70주년 특별기획]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0)

우리 부대는 청진을 향해 북진을 계속했다. 경성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후방에 인민군이 나타났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당시 아군은 주변 산속에 숨어있는 패잔병을 소탕하지 않고 매일 도로만 이용해 북진했다. 갑자기 전황이 새로운 양상으로 바뀌게 됐다. 북진하는 1연대 병력 중 제1대대는 남으로 총부리를 겨눠야 했고 후방에서 올라오는 부대는 인민군을 북으로 추격하게 됐다. 따라서 중간에 있는 인민군 패잔병은 대항을 포기한 채 도망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으므로 우리는 많은 인민군을 생포할 수 있었다.

당시 ‘주을’ 온천 부근에 인민군 1개 중대가 포진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우리 3중대가 투입돼 소탕작전을 맡았다. 성공리에 작전을 마치고 온천에서 숙영을 하면서 1개 소대씩 교대로 목욕을 하기로 했다. 중대장과 함께 제일 마지막에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온천장에 총탄이 날아들어 비상이 걸렸다. 상황을 보고하는 정두현 선임하사관이 말했다. 어제 전투에서 쫓겨 도망도 못하고 숨어 있던 패잔병 4명이 온천장 지하실에 은신하였다가 우리 중대원에게 발각되어 도망가면서 따발총을 난사한 것이 온천장 유리창에 맞았다는 것이다. 2명은 생포했는데 2명은 놓쳤다는 보고였다.

당시 생포되는 인민군도 많았지만 도망하는 인민군도 많았다. 역시 패잔병은 초라했다. 두만강이 가까워지면서 후퇴하는 적의 저항이 심해졌다. 우리 부대는 청진 전투에서 적의 완강한 저항을 받았다. 이로 인해 전상자가 속출했고 이 전투에서 함용익 대대장이 전사했다. 화기중대장은 장딴지에 부상을 입어 후방 야전병원으로 후송하려 했으나 그는 “나는 두만강까지 가야 한다.”며 거절했다. 당시 화기중대장은 ‘옥창호’ 대위로 평양 출신으로 기억된다.

청진전투는 3-4개월간 치열하게 지속됐다. 적은 끈질기게 저항했으나 우리 군은 마침내 청진을 탈환했다. 아군은 1950년 12월초 함경북도 나진에 적과 대치 없이 무혈 입성했다. 그러나 그 무렵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승리감에 도취된 까닭인지 아군의 군기는 해이해지고 지휘관이나 병사들의 성적인 욕구와 탐욕에 시동이 걸리는 일들이 잦아졌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건 진리다. 지휘관들은 밤마다 여인 사냥에 정신이 없었다. 정두현 선임하사는 이러한 지휘관들의 행태에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내게 중대장이나 부관의 추한 간음행위에 대해 모르는 척 하라고 주의를 줬다.

정두현 선임하사는 참으로 건전하고 진정한 대한민국의 군인이었다. 상사에게는 절대 복종하고 부하에게는 자상했다. 그는 6.25사변 전에 국방경비대에 자원입대한 황해도 연백 출신의 총각이었다. 내가 부대장 연락병에 보임돼 최전방에서 여러차례 전투에 임할 때마다 최전방에 서지 말고 항상 자기 뒤를 따르라면서 내 생명을 보호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그 당시 국군들의 여인 사냥은 이랬다. 반반한 처녀나 젊은 부인들을 점찍어 사상적 조사를 한다는 구실로 붙잡아 겁탈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나는 나진에서 웃지 못할 사건을 목격했다. 하루는 나진중학교 여선생 두 명이 중대 부관 침실에 입실했는데 그 이튿날 밤엔 중대장과 부관이 서로 합의하여 두 여선생을 서로 바꿔 입실시키는 거였다. 정 하사관이 흥분하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참으로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점점 이러한 상황이 심각해지니 여인 수탈행위가 상부에 알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근엄하고 강인한 명장이셨던 ‘한신’ 연대장의 엄명이 하달됐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인들을 겁탈하는 일이 적발되면 총살하겠다는 엄포였다. 전시에는 연대장에게 총살권한이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대가 북진할 때 그 여선생 두 명을 군복으로 갈아입히고 작업모를 씌우고 회령까지 내가 인솔하였다.

1.4후퇴 때 흥남부두까지 우리와 함께 이동해 수많은 피난민들과 함께 LST 군용선에 승선한 사실을 나중에 확인한 바 있으며, 그 후 그 여인들의 행적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중대장이 그들을 남쪽으로 피난시켜 주기로 약속한 것은 아닐까 짐작하는 바다.

형제보다 진한 우정

예나 지금이나 조직사회에는 허물없이 마음을 주고받는 다정한 친구들이 있게 마련이다.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군대 사회에서 그 우정은 형제보다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나도 군 생활 중에 만난 두세 명의 다정한 친구가 있었다. 상사인 정두현 특무하사와 연대의무중대 선임하사관 일등상사 이인식씨가 그들이다.

정 상사와 이 상사는 국방경비대 동기생이며 정 상사는 황해도 연백 출신이고 이 상사는 충북 음성 출신으로 두 사람은 정말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사석에서 두 분이 나와 함께 자리를 할 때는 서로 동생이라며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나를 무척이나 아껴 주신 분들이다.

정 상사는 내 생명을 지켜준 은인이요, 이 상사는 훗날 내 평생의 동반자가 된 이봉실 권사를 아내로 맺게 해준 장본인이다. 내 인생 여정에 이 두 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총알이 튀는 전쟁 중에도 귀한 만남은 또 있다. 직속 상관인 3중대장과 박종희 대위를 회고해본다.

화기중대장 옥창호 대위와 1중대장 박원빈 대위 그리고 제1대대 보급관 김형욱 중위도 기억하고픈 좋은 친구들이다. 자주 만나지 못해 늘 아쉬워하며 지냈던 세월이다. 부대가 행군할 때 길에서라도 우연히 만나면 네 명이 서로 부둥켜안고 어린아이들처럼 반가워했다. 돌이켜볼수록 그립고 아쉽기만 하다.

직속상관이었던 박종희 대위는 육사 8기생이다. 그는 충북 청주 출신으로 선천적인 무관의 면모를 갖춘 군인이었다. 인정도 많은 그는 1961년 5.16혁명 이후 육군본부에서 정두현 상사와 근무하다가 육군대령으로 예편, 1993년에 별세했다.

화기중대장 옥창호 대위 역시 육사 8기생으로 그는 평양 출신이었다. 평소 성질이 급해 평양사투리로 욕을 잘해 ‘욕창호’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1961년 5.16혁명 때 혁명주체세력으로 분류돼 박정희 장군의 신망을 받아 국가재건최고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대대보급관 김형욱 중위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인물이다. 가끔 중대장이 메모를 써서 보급관에게 전달하면 양키담배 ‘럭키스트라이크’(일명 아까다마)와 카멜(일명 낙타)을 보루(box)로 갖다 주곤 했다. 그는 무척 쾌활한 군인으로 5.16혁명 직후 ‘차지철’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다가 훗날 중앙정보부장에 발탁되기도 한 인물이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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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학 | 1934~2013. 충남 단양 생(生). 학도병으로 6.25전쟁 참전. 삼미그룹 총무과장 정년퇴직. 서울 노원구 국가유공자수훈회 사무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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